경북 봉화에 사는 고등학생 준경(박정민)에겐 꿈이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기차역이 들어서는 것. 외부로 연결된 길은 기찻길이 전부인데도 역이 없어 마을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철길을 걸어야 한다. 왕복 5시간을 들여 영주로 학교를 다니는 준경이 ‘기차역을 만들어달라’는 편지를 청와대에 54번이나 보낸 이유다.
폐역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새 역이 들어설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아는 철도기관사인 아버지(이성민)는 이사를 가자고 한다. 그러나 준경은 자신에게 엄마와도 같은 누나 보경(이수경)과 함께 계속 이 집에서 살고 싶어 한다. 세상물정 모르지만, 수학만은 천재적인 소질을 보이는 준경. 같은 반 친구 라희(임윤아)는 그런 준경에게 매력을 느낀다. 라희의 도움으로 편지를 고쳐 쓰는 준경은 마침내 청와대로부터 역을 세워주겠다는 답장을 받게 된다.
15일 개봉하는 이장훈 감독의 <기적>은 우리나라 최초 민자역사인 봉화 양원역을 모티브로 삼아 순수 천재 소년의 꿈과 가족 간의 사랑을 착한 웃음과 감동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추석 연휴 가족들이 함께 보면 좋을 영화로, 애초 지난 6월 개봉하려다 미뤄진 것이 되레 다행인 듯싶다. 1980년대가 배경인 영화에는 김완선의 ‘기분 좋은 날’을 배경음악으로 카세트테이프, 비디오, 전화기, 우편함 등 소품들이 등장해 중장년 관객들의 추억을 자극한다. 경북 북부의 아름다운 풍광과 “~했니겨” “~했니더” 같은 사투리도 정겹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는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다. 박정민은 산골 소년의 무뚝뚝하면서도 순박한 성정을 익살맞게 연기해냈고, 임윤아는 지고지순하면서도 밝고 명랑한 캐릭터에 맞춤한 캐스팅으로 보인다. 영화 <엑시트>와 더불어 이제 임윤아에게서 ‘소녀시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게 됐다. 이성민은 한번도 곁을 내주지 않지만 자식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는 전형적인 경상도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보경 역을 맡은 이수경은 ‘연기 귀신’이라는 영화계 소문처럼 살뜰하면서도 정겨운 누이의 또렷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지난 1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이장훈 감독은 “라희가 동굴 안에 갇혀 있는 준경을 밖에서 끌어내주는 역할이었다면, 보경은 준경을 안에서 밖으로 밀어주는 역할”이라고 했다.
<기적>이라는 제목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의미와 아울러 기차의 경적 소리를 뜻하는 것도 같다. 영화는 꿈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희망은 기적 소리를 내며 기적처럼 다가온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린 친구들이 꿈을 갖고 도전하고 부딪히고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들한테 무조건 꿈을 가지라고 말하고 어른들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혼자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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