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신체를 점수로 매긴 내용이 가사로 담긴 2PM의 노래 '10점 만점에 10점'. KBS2 화면 갈무리
최근 흥미롭게 읽은 기사 중 맥이 닿는 두건을 소개한다.
문학 작품에서 소위 ‘성패치’를 떼는 문학계의 움직임을 취재한 <한겨레> 기사와 성차별이 담긴 친척 호칭을 바꾸자는 <한국일보> 기사다. 처음 접하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이전에 견줘 한층 더 나아간 지점이 있어서 눈여겨보았다.
<한겨레> 기사는 이런 내용이다. 예전에 나온 문학 작품들을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해 고쳐내는 움직임이 출판계에서 활발하다는 거다. 그때는 맞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틀린 표현들이 수정 대상인데,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남자애가’ ‘여자애가’ 같은 표현이나 체형을 묘사하는 ‘날씬하다’는 표현 등을 삭제하거나 고쳐서 바로잡았다고 한다. 국외 작품도 마찬가지여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같은 고전도 이른바 ‘젠더 개정판’으로 출간된다고 한다. <한국일보> 기사는 성차별적 인식이 반영된 호칭을 알려주었다. ‘친가’ ‘외가’ 같은 것들은 필자도 짐작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도 있었다. ‘장인, 장모’ ‘올케’ ‘처남, 처제’ ‘며느리’ 등의 호칭도 쓰지 말자고 한다.
문득 우리 가요는 어떨지 궁금해져서, 직업 정신으로 몇곡 골라봤다. 먼저 투피엠의 ‘10점 만점에 10점’ 가사를 보자. ‘그녀의 입술은 맛있어서 10점 만점에 10점. 그녀의 멋진 다리도 10점 만점에 10점’이란다. 여자를 훔쳐보면서 신체 곳곳을 품평하고 점수를 매기는 내용이 가사의 전부다. 싸이가 부른 ‘연예인’을 듣다 보면 ‘남자다운 남자는 여자를 잘 갖고 놀아야 한다’는 가사가 나온다. 헉. 태양의 노래 ‘나만 바라봐’는 아예 남자가 여자를 가스라이팅하는 내용이다. ‘내가 바람피워도 너는 절대 피우지 마. 나는 너를 잊어도 넌 나를 잊지 마.’
남자들 노래라서 그렇다고? 3인조 여성 그룹 ‘키스’의 노래 ‘여자이니까’의 노랫말은 이러하다. ‘모든 걸 쉽게 다 주면 금방 싫증 내는 게 남자라 들었어. 틀린 말 같진 않아. 다시는 속지 않으리 마음먹어보지만 또다시 사랑에 무너지는 게 여자야. 너를 욕하면서도 많이 그리울 거야. 사랑이 전부인 나는 여자이니까.’ 남자에게 모든 걸 다 주고 버림받았는데도 여자가 남자를 계속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남녀의 성 역할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고 그것을 당연시한다. 심지어 앞으로도 피해자의 역할을 기꺼이 수행할 거라고 노래한다. 왜? 여자이니까.
“성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친환경을 강조하는 것만큼 당연하다. 그 정도와 속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두 기사에 반대하는 댓글도 많다. 문학 작품이란 그 시대의 문화와 인식을 반영하는 건데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 작품을 다시 쓰는 것이 옳으냐는 주장이다. 이미 익숙해진 호칭의 수백년 전 어원까지 파고드는 건 과도하다고도 한다.
문제적 노랫말에 대해서도 찬반양론이 있겠지. 문학이 그렇듯 노래도 그 시절의 분위기를 반영한 건데 “뭐 어떠냐”는 의견과, “가사를 바꿔 다시 음원을 내달라”는 의견으로 갈릴 것이다. 필자의 의견은? 간단하다. 라디오 피디는 선곡으로 말하면 된다. 저 정도로 노골적인 성차별을 담은 노래는 손이 잘 안 간다. 작년인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10점 만점에 10점’을 틀었다가 가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독자들의 의견이 궁금하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적극 반영하겠다.
요즘 당숙이나 질부라는 호칭을 잘 안 쓰는 것처럼 앞으로 20년쯤 뒤에는 올케나 시누이 같은 표현도 드물어지겠다. 요즘의 혼인율이나 출생률을 보면 정해진 미래 같다. 당장 내 아들만 해도 형제가 없으니 매형도, 제수씨도, 조카도 가질 수 없다. 결혼을 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 만약 외동인 여자와 결혼하면 처제도, 처남도 없다. 그때쯤 되면 명절 스트레스라는 표현도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되려나? 그때쯤 되면 성차별이라는 표현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사라져도 아쉬워하지 않을 것들이 꽤 많다.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시사특공대>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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