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영화 <노회찬 6411> 스틸컷. 명필름 제공
노회찬 의원님께.
생전에 드리지 못한 인사를 올립니다. 전 2003년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시절부터 2011년 진보신당까지 의원님과 함께 당적을 지녔던 평당원입니다. 의원님 측근들과의 인연으로 찾아뵐 수도 있었는데 당성(?)이 투철하지 못해 미룬 일이 후회로 남을 줄 몰랐습니다.
의원님이 떠난 지 올해로 3년입니다. 의원님이 없어서일까요, 세상은 더 나빠진 것만 같습니다. 2년째 이어진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은 생존의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오르기만 하는 집값에 서민들은 밖으로 밖으로 떠밀리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은 절망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살인적인 입시교육에 신음합니다. 자살률과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습니다. 모두 정치가 해결해야 할 일들이지만, 오늘도 정치는 없습니다. 정치가 없는 곳에서 정치인들은 민생과 무관한 말들로 싸우며 허송합니다. 정의당은 거대 양당에 치여 더 왜소해졌고, 168석을 가진 민주당은 무능하기만 합니다. 세상은 늘 같은 자리에서 쓰러지고 있는데,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과 함께 비를 맞던 노회찬은 이제 없습니다.
다큐영화 <노회찬 6411> 스틸컷. 명필름 제공
그래서일 것입니다. 노회찬의 부재를 못 견뎌하는 이들이 당신의 흔적을 모아 다큐영화 <노회찬 6411>을 만든 것은. 유난히 수줍음이 많았다던 당신이 살아 있다면 이러한 작업을 만류했을 테지요. 노회찬이 없는 세상에서 노회찬 다큐를 보는 일은 반가우면서도 쓸쓸합니다.
민환기 감독이 연출한 <노회찬 6411>은 오는 14일에 개봉합니다. 영화 제목은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당시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의원님이 소개한 6411번 버스에서 따왔습니다. 영화에서도 그 명연설은 듣는 이를 울컥하게 합니다. 그날 당신은 서울 구로구 거리공원에서 출발해 강남을 지나 개포주공아파트까지 가는 6411번 버스에 대해 길게 얘기했습니다. 출근하기 위해 새벽 4시 첫차에 오르는 청소노동자들이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었던 것처럼, 그들 곁에 있지 않은 진보정당도 투명정당이었다고 자책했지요.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라고 말할 때, 당신의 목소리는 잠겼습니다. 그로부터 9년이 흘렀지만, 투명인간과 투명정당은 여전히 서로에게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큐영화 <노회찬 6411> 스틸컷. 명필름 제공
다큐멘터리 <노회찬 6411>의 민환기 감독이 지난 29일 오후 6411번 버스의 첫 정류장인 구로구 거리공원 정류장 앞에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정류장 전광판에서 <노회찬 6411> 포스터가 걸려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29일, 민 감독과 구로동 거리공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만났습니다. 멀끔한 새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동네는 가난의 풍경을 지워낸 듯 보였습니다. 이곳에 살던 청소노동자들은 모두 어디로 떠밀려 갔을까요. 그들은 어디서 또 다른 6411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영화에는 11년 전 의원님이 이곳에서 새벽 4시에 첫차를 타는 장면이 나옵니다. 천성이 게으른 전 그저 오후 시간 버스에 겨우 올랐습니다. 손님은 없었습니다. 의원님이 앉았던 맨 뒷자리에 민 감독과 나란히 자리했습니다. 정류장을 떠난 버스는 신도림역으로 향했습니다. 가을비는 그쳤지만 거리는 우울했습니다.
의원님과 개인적 인연은 없다던 민 감독은 심재명 명필름 대표의 제안으로 연출을 맡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는 “다큐를 만드는 내내 ‘내가 이 영화를 만들 자격이 있을까’ 고민스러웠다”며 “최대한 객관적인 태도와 영웅화하지 않는 관점으로 인간 노회찬의 삶을 기록하려 했다”고 했습니다.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는 고교 시절 유신반대 운동을 벌였던 청년 노회찬부터 학생운동을 거쳐 용접공으로 위장 취업한 노동운동가 노회찬, 진보정당 운동의 산파이자 탁월한 입담과 실천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진보정치인 노회찬까지, 생각한 대로 살고자 했던 한 사람의 일대기를 영상자료와 50여명의 관련자 인터뷰로 복원해냈습니다.
다큐영화 <노회찬 6411> 스틸컷. 명필름 제공
민 감독은 “노회찬을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자기 꿈과 이상을, 원칙을 지키며 실현하고자 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며 “자기 사람을 만들기보다 동의하는 이들을 늘려나가며 주장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다”고 했지요. 1997년 대선에서 국민승리21을 지지했고 이후 민주노동당에 가입했지만, 한국 진보정당이 의원님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을 부끄럽게도 전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당대표 선거에서 의원님은 말했습니다. “정파들이 노선을 가지고 싸워도 좋습니다. 다만 우리가 수권 정당이 돼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큰 뜻에서는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밑바닥 현장에서 몸을 갈아본 사람만이 체득할 수 있는 현실감각이 당신에겐 있었습니다. 세상은 변하지 않고 단지 사람만이 변할 뿐이지만, 그런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늘 스스로 머리가 아닌 손발이 되고자 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얘길 나누는 동안 버스는 어느새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민 감독은 영화를 연출하면서 인간 노회찬에 대해 더 애정이 생긴 듯 보였습니다. “삶의 즐거움을 알았던 분이 아닐까 싶어요. 음식, 음악, 여행 등 삶의 즐거운 경험을 주변과 함께 흥미롭게 나누길 바라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양냉면을 좋아하고 첼로 연주가 취미였던 당신이 바라던 세상은 ‘누구나 악기 하나 다룰 수 있는 세상’이었습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울림을 기억합니다. 누구나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세상이라면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점이 이미 해결된 상태일 것이라는 통찰 외에도 이 말은 로맨티스트 노회찬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맛과 멋을 아는 드문 사람.
다큐영화 <노회찬 6411> 스틸컷. 명필름 제공
이 점은 당신의 유머와 해학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원님의 촌철살인 비유는 당신을 반대하는 이에게조차 웃음을 안겼습니다. “엠비시(MBC) <100분 토론>에서 노 의원의 발언에 상대편인 나경원 전 의원마저 웃잖아요. 노 의원의 유머러스한 화술은 적대적인 관계라도 아름다운 룰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죠.” 다큐에는 의원님의 역대급 입담도 고스란합니다. “현 정부의 적폐청산이 보복이라면, 청소는 먼지에 대한 보복이냐”고 하거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대해 검찰이 반대하는 것을 두고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사냐”고 되묻는, 간명하면서도 날카로운 일갈은 진실을 호도하는 요설이 판치는 오늘, 더욱 그리운 대목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이후로 유머를 아는 대중정치인이 사라진 시대, 당신의 빈자리는 너무도 큽니다. 정치가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할 수 없다면, 웃음이라도 줘야 합니다.
신길동 우신초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린 우리는 여의도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옛 민주노동당사가 있던 한양빌딩 앞에서 다큐를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를 만났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은 여의도는 번잡했습니다. 2004년 17대 총선, 이곳 한양빌딩에서 민주노동당은 10석(지역구 2석, 비례 8석)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다큐에서 당신은 한양빌딩에서 국회까지 오는 데는 5분밖에 안 걸리지만, 민주노동당이 국회까지 오는 데는 50년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17년이 지난 지금, 그 영광의 흔적을 찾긴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흘러가고만 있었습니다. 모두 ‘지나간 미래’인 걸까요.
민환기 감독(왼쪽)과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지난 29일 저녁, 국회로 향하는 듯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평소 알고 지내던 방송사 피디가 ‘노회찬 영상자료가 많은데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보는 건 어떠냐’는 말에 제작에 나섰다는 심 대표는 “정책은 없고 네거티브 이슈들이 남발하는 대선 정국을 보면서, 국회의원 임기 동안 120개 법안을 대표 발의한 노 의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며 “노회찬의 말과 행동, 철학과 신념이 지금 현실에서 더 그립고 필요한 이유”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노회찬 6411>이 촌철살인의 언어를 사용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대중정치인 노회찬을 단순히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하는 영화이길 바란다”며 “이 영화를 통해 공감과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대표적 영화제작사인 명필름이 다큐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민 감독이 인터뷰 때 들었던 일화라며 마지막 말을 보탰습니다. “인천지역에서 노동운동할 때 알던 현장 노동자가 암에 걸려 지인분이 노 의원을 찾아왔더래요. ‘이제 너희들은 먹고살 만하니 이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였죠. 그 말을 들은 노 의원이 그가 예상한 금액의 10배의 돈을 건넸대요. 병문안도 가고 그분이 돌아가신 뒤에는 기일에 꼭 찾아오더라는 거예요. 근데 2018년엔 못 왔다고 하더라고요. 본인이 돌아가셔서.”
당신이 떠나던 날, 조승수 전 의원은 다음과 같은 추도사를 남겼습니다. “그는 가고 싶었던 길이, 하고 싶었던 일이 너무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를 원했습니다. 폭염 속에서도 모여든 수만명의 조문 행렬이 의미한 것은 자의도 타의도 아닌 상황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보내는 안타까움 그 자체였습니다.”
하루아침에 세상을 등진 당신을 우리는 안타까워했지만, 정작 저승에서조차 당신은 우리를 안타까워할 것만 같습니다. 부디 저세상에서라도 평안하시길 빕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