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이 생전 쓰고 그린 선화풍의 청산 그림. 단순한 선의 산이 그려진 화면 위에 ‘눈을 씻고 청산을 보게’란 글귀가 쓰여져 있다.
바닷물과 민물이 뒤섞인 물길이 허연 빛을 내며 흐른다.
전남 영산강 하굿둑과 목포 항구 사이의 길쭉한 수로에서 가을 낮 하늘 아래 펼쳐지는 풍경은 아름답고 고즈넉하다. 이 장관을 조망하기에 맞춤한 장소가 목포시 용해동 목포문화예술회관 전시관 앞 방죽이다. 하늘과 바다, 강이 어우러진 대자연의 설치 작품을 보다가 회관 안으로 입장하면 여러 무더기의 그림들이 기다린다. 2층으로 올라가면 전시방 안에 법정 스님이 붓질한 그림과 글씨들이 걸려 있다. ‘눈을 씻고 청산을 보게’라고 쓰고 간결한 선으로 그린 청산도 족자 한점에 시선이 간다. 칼칼한 획으로 역브이(V)자 모양의 산 세개와 해를 뜻하는 점 하나 뚝 찍어넣었다. 진한 먹으로 일곱자로 써내려간 ‘차나 마시고 가게’란 글씨….
전통 무늬와 현대적 여인상, 누드상이 녹아있는 고 황창배 작가의 1987년작 수묵화 <무제>.
법정의 선화들을 필두로 별의별 그림들이 넘쳐난다. 생전 전위파로 이름 날린 고 황창배(1947~2001)의 난만한 수묵화가 눈길을 끌어당긴다. 비질 소리가 들리는 김승영의 설치영상물 <쓸다>와 ‘철인’ 작가 이재삼의 가로 9m 넘는 극사실 목탄화, 서구 작가 쿤 판덴브룩의 섬약한 푸른 추상화 <블루리듬> 등 역작들이 잇따라 나타난다. 요즘 미술품 경매에서 억대를 넘어간다는 인기 작가 우국원씨의 팝아트풍 작품도 끼어들었다. 1~3층 전시장 난간에는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작가가 설치한 대형 동영상 패널 작품도 세로로 놓여 있다.
영산강 하굿둑에서 목포항으로 흐르는 하구 수로의 가을 녘 포구 풍경.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국립목포해양문화재연구소다.
좀처럼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이 전시판은 지난 1일 개막한 2회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의 본전시다. 먹으로 그리는 전통 그림에 기반을 둔 한국 수묵회화의 큰 잔치를 내걸고 2018년 출범한 행사다. 올해는 이건수 기획자가 감독을 맡고 5명의 다른 기획자들이 협업해 목포 문화예술회관, 유달초등학교 등 목포 시내 3개 전시장과 소치기념관 등 진도의 3개 전시장에 차렸다. 고루한 전통 수묵회화의 굴레를 벗어나 다채색 회화와 부조, 설치작품 등 동시대 현대미술 영역까지 확대하려는 기획진의 의지가 서로 이질적인 작품들의 혼합과 공명을 낳는다. 대가들이 남긴 수묵화 수작들을 감상하는 여정에 국내 비엔날레에서 종종 일어나는 콘텐츠의 혼돈과 모순이 약방 감초처럼 끼어드는 모양새의 작품 마당이다. 31일까지.
목포/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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