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연극배우인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는 아내 오토(기리시마 레이카)와 원만한 가정생활을 유지하고 있지만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다. 20년 전, 4살 된 딸을 잃었던 것. 그 일로 배우 생활을 접은 오토에겐 새로운 습관이 생긴다. 남편과 섹스 도중에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 들려주는 것. 다음날 가후쿠가 이를 복기해 들려주자 오토는 이를 각본으로 써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게 된다. 이후에도 오토는 가후쿠와의 관계 중 떠오르는 이야기들로 대본을 써 인기 작가가 된다.
모든 것이 안정적이던 어느 날, 예정에 없던 스케줄 변경으로 집에 들른 가후쿠는 오토의 외도 장면을 목격한다. 자신의 연극 공연 때 오토가 데리고 온 다카쓰키(오카다 마사키)를 내연남으로 의심하는 가후쿠. 그러나 오토를 잃고 싶지 않았던 그는 끝내 아내의 외도를 모른 척한다. 알고 보니 아내는 그동안 새 작품이 제작될 때마다 배우들과 외도를 벌여왔던 것. “저녁에 할 얘기가 있다”는 오토의 말에 일부러 집에 가지 않고 서성이다 늦게 귀가한 가후쿠는 오토가 돌연사한 것을 발견한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2년 뒤. 안톤 체호프의 희비극 <바냐 아저씨> 연출을 위해 히로시마로 가는 가후쿠. 그곳에서 죽은 딸이 살아 있다면 같은 또래였을 20대 여성을 알게 되면서 내면의 깊숙한 슬픔을 들여다보게 된다.
지난 6일 개막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 <드라이브 마이 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후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인 하마구치 류스케의 작품이다. 이 영화로 올해 제74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그는 또 다른 영화 <우연과 상상>으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기도 했다. 2014년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3명의 한국 배우가 조연으로 나와 한국어로 연기하고 운전기사가 한국 마트에서 장을 보는 등 한국 관객이 반가워할 만한 장면도 여럿이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7일 저녁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이뤄진 하마구치 감독과의 ‘스페셜 토크’에서 봉준호 감독은 “하마구치 감독의 오랜 팬으로서 반갑다”며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이 자동차 신이다. 감독으로서 촬영상 어려움이 많은 장면인데 어떻게 찍었냐”고 첫 질문을 건넸다. 하마구치 감독은 “그린스크린 등을 쓰지 않고 이동하는 자동차 느낌을 주기 위해 그대로 촬영했다”며 “배우들의 감정을 가까이에서 느끼기 위해 자동차 트렁크에 숨어서 촬영했다”고 웃으며 답했다. 이에 봉 감독이 “감독의 노동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트렁크에 있으면 힘들었을 텐데 차멀미는 안 했냐”고 묻자, 하마구치 감독은 “트렁크 안에서 모니터를 보니까 어질어질했다”고 했다. 봉 감독이 “<드라이브 마이 카>에 나오는 자동차 신이 스승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자동차 신과 너무 다르다”고 하자, 하마구치 감독은 “구로사와 감독은 따라 할 수 없는 감독이라서 일부러 흉내 내지 않으려 했다”고 했다.
앞서 “<기생충>을 보고 영화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며 극찬한 바 있는 하마구치 감독에게 봉 감독은 “송강호 배우가 최근 연락해와 ‘하마구치 감독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하더라”며 “송강호씨가 칸영화제 심사위원으로서 이 작품을 좋아했다”고 했다.
부산/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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