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동안 <씨네21>에 ‘정훈이 만화’를 연재한 정훈이 작가와 그의 그림들. <한겨레> 자료사진, <씨네21> 제공
대학 시절, 영화 주간지 <씨네21>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그 재미의 가운데에 연재물인 ‘정훈이 만화’가 있었다. 기사와 평론이 내뿜던 문장의 화사함에 주눅 들 때마다, 유머러스한 ‘정훈이 만화’는 그 특유의 ‘천재적 찌질함’으로 독자들을 매료했다. ‘정훈이 만화’를 보기 위해 <씨네21>을 구독한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이유다.
그런 정훈이(49)가 <씨네21>을 떠났다. ‘정훈이 만화’는 지난해 송년호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첫 연재인 1995년부터 2020년까지 25년의 세월이었다. 연재가 끝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은 옛 독자는 생각했다. 익살맞던 캐릭터 ‘남기남’ ‘씨네박’과 이별이라니. 이제 <씨네21>과 독자들도 약간은 쓸쓸하겠다.
2007년 1월2일치 <씨네21>에 실린 ‘정훈이 만화’(‘<수면의 과학> 수면은 잠이 아니라 과학입니다’). <씨네21> 제공
‘정훈이 만화’를 그리워하는 이들과 아직 그의 만화에 입덕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뜻깊은 전시가 마련됐다. 지난달 14일부터 내년 3월20일까지 서울 상암동 한국영화박물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시 ‘정훈이 만화, 영화와 뒹굴뒹굴 25년’은, 지난 4반세기 동안 한국 영화팬들을 웃기고 울린 ‘정훈이표’ 해학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다. 전시장에 종종 출몰한다는 정훈이 작가를 지난달 24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미련이 남은 애독자의 애간장을 녹이듯 자신의 만화 속 캐릭터들처럼 유쾌하고 푸근했다.
때로 운명은 우연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1995년, 젊은 만화가 정훈이는 제2회 <영챔프> 신인만화 공모전에서 입상한 뒤 <씨네21>과 인터뷰했다. “당시 오은하 기자가 인터뷰했는데 ‘혹시 영화 패러디를 만화로 그려볼 생각 없냐’고 하더라고요. 샘플 삼아 보냈는데 그게 실렸죠. 그렇게 인연이 시작돼 25년이 됐네요. <씨네21>과 거의 인생을 같이해왔죠.(웃음)”
2004년 2월10일치 <씨네21>에 실린 ‘정훈이 만화’(‘<올드보이> 이유도 모른 채 감금된 남기남’). <씨네21> 제공
최장수 연재 코너가 될 줄 몰랐다는 그는 연재 초기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연재 초반에는 마감 2~3일 전에 우편으로 원고를 보냈어요. 경남 창원에 살 때였는데 마감이 늦어 벽돌만한 외장하드를 들고 비행기를 타고 사무실에 간 적도 있어요. 사무실에서도 담배 많이 피우고 맥주캔도 쌓여 있었고.(웃음) 마감 끝나고 같이 회식도 갔어요. 재밌었죠. 지금은 대구 사는데 인터넷으로 원고 보내니까 담당자 얼굴을 볼 일도 없죠.”
당시 <씨네21>과 이웃해 있던 <한겨레21> 기자들과도 무람없이 어울리던 때였지만, 사실 그는 마감이 늦어 담당 기자의 피를 말린 필자였다. “<씨네21> 마감 꼴찌는 저와 편집장의 글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엔 ‘정훈이 만화’가 일찍 들어오면 편집장들이 초조해하곤 했대요.(웃음) 평기자 중엔 최보은 기자가 마감 경쟁자였어요. 사무실에 가면 마감 못 한 기자들이 당황해서 놀라던 모습이 기억나요. ‘어, 왔냐? 조금만 더 늦게 오지’ 하는.(웃음)”
‘정훈이 만화’에서 찌질하면서도 야비한 캐릭터로 희화화되던 허문영 전 편집장. <씨네21> 제공
물론 당하고만 있을 기자들이 아니었다. 마감 늦는 필자들에게 쓰는 ‘마감일 앞당겨서 알려주기’ 신공이 그것. “또 마감이 늦어 담당 기자에게 직접 원고 주면서 ‘미안하다’고 밥 사줬어요. 근데 디자이너가 ‘왜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마감 이틀이나 남았는데’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영화 내용에 영향받을 수 있어 영화를 보지 않고 관련 정보만으로 만화를 그렸다는 그는, 아이디어를 찾는 별다른 방법은 없다고 했다. “강태공이 낚싯대 드리우듯 그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린 적이 많아요. ‘이번에는 대어 낚아야지 마음먹는다고 뜻대로 되지 않잖아요. 불현듯 떠올라서 다 그려놓은 그림을 고친 적도 많아요. 저보다 더 진보적인 아내가 아이디어를 많이 줬어요.”
그가 25년 동안 마감을 펑크 낸 건 딱 두번이다. 한번은 너무 더워 한겨레신문사 근처 에어컨이 있던 선배 사무실에서 작업하다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아침이었다는. 닦달부터 걱정까지 수십통의 음성과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고. 두번째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 “마감날 아침에 ‘도저히 코미디를 그릴 수 없다’고 말씀드렸죠. 담당자가 쿨하게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이준익 감독의 <동주> 개봉에 맞춰 2016년 3월10일치에 연재된 만화(‘<동주> 자화상’). <씨네21> 제공
마감으로 속을 썩였지만, 그는 역대 <씨네21> 편집장들이 애정하는 필자였다. ‘정훈이 만화’에서 찌질하면서도 야비한 캐릭터로 희화화되던 허문영 전 편집장은, 전시를 주최한 한국영화박물관과의 영상 인터뷰에서 “정훈이는 제가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서도 “누구나 다 동의하겠지만 전 정훈이를 천재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찌질함과 야비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그것을 통해 웃음을 만들어낸 다음 화해에 이르게 만드는 위대한 코미디 작가”라고 극찬했다. 정훈이 작가가 동철이 형이라고 부르는 남동철 전 편집장은 “마감이 너무 늦는 정훈이를 ‘어떻게 응징하나’ 고민하다가도 막상 도착한 만화를 보고 나면 ‘기대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냈네!’ 하면서 이후 마감 독촉을 주저하게 됐다”고 했다.
실제 ‘정훈이 만화’를 보면 편집장들의 평가가 과찬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남기남 캐릭터가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최민식)처럼 감금된 상태에서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나오는 뉴스를 보며 “히히~ 여기는 감금실인데”라고 말장난하는 장면이나, “매일 먹고, 자고, 티브이(TV) 보고, 참 좋다. 취업도 안 되는데 말이야”라고 너스레 떠는 내용의 만화(‘<올드보이> 이유도 모른 채 감금된 남기남’, 2004년 2월10일치)는, 유머와 함께 세태에 대한 풍자로 화제가 됐다. 또 오랜만에 밤을 새워 시험시간에 졸고 지하철에서 자는 행위를 ‘몰아서 자든 나눠서 자든’ 수면 총량은 변함없는 ‘질량 불변의 법칙’이라고 하거나, 점점 수면의 고수가 되면 ‘직립 수면’이 가능해진다며 이것을 찰스 다윈의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농치는 만화(<수면의 과학> ‘수면은 잠이 아니라 과학입니다’, 2007년 1월2일치)는, 위트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걸작이다.
한국영화박물관 기획전시 ‘정훈이 만화, 영화와 뒹굴뒹굴 25년’ 전시실 모습.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그렇다고 ‘정훈이 만화’가 적 없는 착한 유머에만 머물렀던 건 아니다. 2013년 1월16일치에 연재된 만화(‘<클라우드 아틀라스> 세상은 돌고 돈다’)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사이다의 쾌감을 안기기도 했다. 조선시대 원년, 이씨 성의 명박왕이 즉위했는데 축성에 재능이 있어 불도자(不道者)라는 별호를 얻었다며 고소영(高所嶺)을 좌보로 삼고 강부자(江富子)를 우보로 삼았다거나, 즉위 4년 궁에 상서롭지 않은 꽃이 피었는데 이름이 민영화(民營花)라고 하는 장면 등은 촌철살인의 희열을 선사한 것이다. <나쁜 녀석들: 더 무비>를 패러디하면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의 허점을 뼈 때리게 비꼰 것도 그였다.
전시실에 정훈이 작가의 작업 테이블이 그림으로 재현돼 있는 모습. 작가의 작업 과정을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무엇보다 ‘정훈이 만화’를 잊을 수 없는 것은, 이 만화가 드러내는 약한 사람들에 대한 안쓰러운 애정 때문이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 개봉에 맞춰 2016년 3월10일치에 연재된 만화(‘자화상’)는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먹고살기 위해 편의점을 차린 점장의 시점으로 열심히 일하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서민들의 삶을 윤동주 시 ‘자화상’에 빗대 절묘하게 담아냈다. 숨진 아내를 찾아 나선 치매 할아버지의 슬픈 이야기를 그린 만화(<나를 찾아줘> ‘아내가 사라졌다’, 2014년 11월13일치)의 감동도 압권이었다. “정훈이 만화는 패러디가 가지고 있는 경쾌한 유머 정신 밑에 굉장한 연민이 있다. 유머와 연민의 결합을 통해 항복하게 만드는, 반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힘이 있다”는 허 전 편집장의 말은 이 만화의 남다른 성취를 가늠하게 해준다.
한국영화박물관 기획전시 ‘정훈이 만화, 영화와 뒹굴뒹굴 25년’ 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20대에 시작해 50대에 가까워지면서 예전만큼의 자신감도 없고 노파심이나 자기검열도 심해져 연재를 마치게 됐다”는 그는 “연재는 끝났지만 남기남이나 씨네박 같은 캐릭터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거”라며 “당분간은 <국방일보>에 연재 중인 ‘임진왜란 무명열전’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따스한 유머가 그립다면, ‘정훈이 만화’와 뒹굴거릴 일이다. 관람 문의 (02)3153-2072.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