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태흥영화사 설립자. <한겨레> 자료 사진.
<서편제> <태백산맥> <춘향뎐> 등을 제작한 한국 영화계의 거목 이태원 태흥영화사 전 대표가 24일 별세했다. 향년 83.
태흥영화사 관계자는 이 대표가 이날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세브란스병원에서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지난해 5월 낙상사고를 당해 약 1년 7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고인은 1938년 평양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전쟁 때 가족과 헤어지면서 어려움 속에 성장했다. 중학교 졸업 후 부산에서 상경한 뒤 1959년 우연히 만난 무역업자가 영화제작을 권유하면서 고인의 첫 영화 <유정천리>가 탄생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1973년 인수한 의정부 소재 빌딩에 있던 극장을 운영하게 되면서 다시 한번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고 경기·강원 지역의 영화 배급을 시작했다. 건설회사와 미군 군납업체를 운영하며 번 돈으로 1983년 태흥영화사를 설립한 그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어우동> <뽕> 등 성인 에로영화를 주로 제작했다. 이후 그는 첫사랑 영화의 전범으로 불린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이규형 감독을 발굴한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 신인배우들의 등용문이 된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1990) 등 흥행작을 잇따라 탄생시키며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당시 그는 흥행성만이 아닌 작품성에도 눈길을 주던 보기 드문 제작자이기도 했다.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와 <서편제>(1993)를 비롯해 <태백산맥>(1994), <춘향뎐>(2000), <취화선>(2002) 등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들의 제작에도 앞장선 것. 특히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을 원작으로 한 <태맥산맥>은, 제작 단계부터 보수세력의 거센 반대에 직면했고 정부가 제작 금지를 통보하는 등 우여곡절 속에서도 그가 끝내 영화화를 관철시킨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그는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1991)과 <화엄경>(1993) 같은 도전적인 소재의 영화 제작에도 관여하면서 한국영화계의 대표적인 제작자로 이름을 날렸다.
젊은 시절 서울 명동 건달패에도 몸담기도 했던 그는, 자신의 삶을 극화한 <하류인생>(2004) 이후 제작 일선에서 손을 뗐다. 지난 2012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다시 영화를 제작할 생각은 없다. 이제 나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한 바 있다. 이어 “‘난 예술가가 아니고 영화 장사꾼’이라고 말해왔다. 돈이 남아야 다른 영화에 또 돈을 보탤 수 있었으니까. 영화는 미친 사람들이 하는 거다. 자기가 좋아서 죽기 살기로 하는 놈이 이기는 거다. 진심을 다해, 거짓 없이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작자로서 지론을 밝히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이한숙(84)씨와 아들 철승·효승·지승(영화감독)씨와 딸 선희씨 등이 있다. 빈소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발인은 26일 오전 10시다. (02)2227-7500.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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