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연출 아쉽지만…삶의 장소로 들여다본 ‘지리산’의 특별함

등록 2021-11-05 19:33수정 2021-11-06 14:23

[황진미의 TV새로고침] tvN ‘지리산’

<지리산>(티브이엔)은 국립공원 레인저들의 활약을 미스터리한 사건들 속에 녹여낸 드라마다. 300억원이 넘는 제작비에 <시그널> <킹덤>의 김은희 작가와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의 이응복 연출이 만났다. 톱스타 전지현, 주지훈의 캐스팅까지! 그런데 4회가 방송된 지금, 평이 엇갈린다. 먼저 폭우로 계곡물이 불어나고 암석이 굴러떨어지는 장면 등의 시지( CG·컴퓨터그래픽) 가 도마에 올랐다 . 올로케이션 작품이 아닌 이상 , 크로마키 촬영과 시지는 불가피하다 . 문제는 이탈리아에 가지 않고도 이탈리아 풍광을 완벽 재현한 <빈센조> 시지로 높아진 시청자의 눈에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더욱 짜증을 돋운 것은 과도한 간접광고(PPL)다. 등산복 등 아웃도어 브랜드가 전면에 노출되는 건 양해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가맹점이 70㎞나 떨어져 있는 브랜드의 샌드위치를 지리산 숙소에서 생활하는 이가 먹는 장면은 어이없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연출과 편집이 산만해서 몰입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또한 인물들 간의 중요한 소통도구인 돌무덤 표식이 썩 와닿지 않는 것도 흠결이다.

이런 모든 비판을 인정하더라도 드라마가 지닌 매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일단 산과 레인저라는 소재가 신선하다. 여기에 사회적·역사적 장소로서의 지리산을 고찰하게 만드는 매회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또한 그런 에피소드들을 종축으로 엮는 주인공들의 미스터리한 서사가 긴장감을 자아낸다. 추리물과 심령물을 오가는 분위기가 괴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현실과 판타지를 절묘하게 섞는 것이 김은희 작가 특유의 세계이고, 특히나 지리산이 ‘이승과 저승 사이 그 경계에 있는 땅’이라는 말을 받아들인다면 썩 잘 어울린다. 다만 횡축과 종축이 잘 붙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데, 이것 역시 주연배우의 존재감이 허다한 구멍을 메워주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기에는 무리가 없다.

드라마는 시종 산을 보여준다. 도시민들에게 병풍처럼 펼쳐진 지리산의 산세와 아름드리나무를 보는 것만으로 눈호강이다. 산악인들을 그린 재난 영화나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풍광이 아니던가. 드라마는 산을 그저 경치로 소비하지 않는다. 산의 지질과 식생을 짚어주기도 하고, 산과 밀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기도 한다. 레인저라는 직업이 드라마에서 조명된 것도 처음이다. 산에서 조난이 어떻게 일어나며, 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대중문화에서 조명한 적이 없다. 산과 얽힌 사람들, 무속인이나 땅꾼 같은 사람들은 친근하면서 생소하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 가 산이고 전 국민이 아웃도어를 입고 다니며 , 마음만 먹으면 산에 오를 수 있다 . 하지만 산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특히 지리산처럼 넓고 깊으며,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곳은 더욱 예사롭지가 않다. 동학, 일제강점기, 빨치산 같은 역사성은 차치하더라도, 집중호우로 인한 떼죽음은 물론이고, 갖가지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산에 올라 빽빽한 소나무 군락지에서 길을 잃거나 독버섯을 잘못 먹거나 뱀에 물리거나 낭떠러지에서 추락하거나 자살을 하는 등 여러 이유로 목숨을 잃는다. 만약 이런 산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이를 사고나 자살로 위장하는 일이 있다면 그럴듯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착안한 드라마는 꽤 특이한 전개를 보인다 . 지리산 레인저인 주인공들의 활약을 보여주던 드라마는 1회 마지막에 2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이들이 휠체어 장애인과 코마 환자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 후 드라마는 2년의 시간을 오가며, 지리산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죽음과 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 드라마는 현재의 장면에서 살인자 혹은 유령처럼 보이던 존재가 혼수상태에 빠진 현조의 ‘ 생령 ’ 임을 일찌감치 밝히며 , 그와 이강이 힘을 합쳐 막고자 하는 연쇄살인을 꽤 박진감 있게 펼쳐놓는다 .

드라마가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작업이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알 수 없다 . 하지만 그와 별도로 칭찬하고픈 미덕이 있다 . 첫째는 드라마의 시선이다 . 2 회에서 소나무를 불법 채취하는 장면을 보라 . 마치 살인사건이라도 찍는 양 화면에 기괴함이 가득하다 . 인간들이 노송을 밧줄에 묶어 납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던가 . 이는 지리산의 동식물을 인간처럼 귀하게 여기는 산신의 시각인 양 느껴진다 .

둘째 장애인을 재현하는 방식이다 . 지리산을 날다람쥐처럼 뛰어다니던 이강이 장애인이 되어서 돌아왔을 때 , 레인저로서 역할이 끝난 것으로 생각한 이도 많았으리라 . 그러나 그는 낙담하여 아무것도 못 하는 비운의 존재로 남지 않는다 . 본부에 앉아 추리와 통찰로 사람을 살리고 ,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의 역할을 계속한다 . 드라마는 장애를 무능이나 불행으로 등치시키지 않는다 .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뿐이요 , 장애를 덜 느끼도록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필요할 뿐이다 .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 적응과 공존의 대상임을 드라마는 장애인이 된 씩씩한 주인공을 통해 자연스럽게 납득시킨다

극적인 장소를 찾아 <남극일기>를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추상적인 극점에 사로잡히지 않고, 역사적인 상징에 함몰되지 않고, 구체적인 삶의 장소로서 지리산을 자연사적으로, 풍물지적으로 탐구하는 자세로 현재를 조명하는 이 드라마가 부디 성공하길 기원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