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 작가가 지난 26일 하멜 일행이 한양 체류기간에 근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희궁 숭정전 앞에서 위드 코로나 시대 하멜의 회복탄력성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아 많은 이들에게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최근 출간한 <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황소자리)에 대한 손관승 작가의 ‘사용설명서’다. ‘하멜에게 배우는 혁신과 회복탄력성’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가 2013년 아이엠비시(iMBC)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고 펴낸 5번째 책이다.
유럽·조선역사·와인 등 다양한 주제로 인문학적 글쓰기와 강연을 해오던 그에게 코로나 팬데믹은 고통의 시기였다. 코로나 초기였던 2020년 초 거의 모든 강연이 취소돼 집필과 강연으로 생활해오던 그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이런 그에게 네덜란드 선원 헨드릭 하멜(1630~1692) 이야기는 큰 위안과 함께 회복탄력성을 갖게 해주었단다. 1653~1666년 13년 동안 조선에 억류된 하멜에게서 ‘역경에 굴하지 않고 극복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하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포도주였다. 작년 초 강연이 끊긴 상황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불현듯, “포도주가 최초로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언제일까”라는 의문이 생겼다고 한다.
조사 결과 그날은 바로 1653년 8월16일이다. 하멜을 태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배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떠나 대만으로 향하다, 제주도 해안에 난파된 날이다. 총 64명 선원 중 살아남은 36명은 자신들을 붙잡기 위해 출동한 조선 병사들에게 포도주를 건넸다. 적의가 없음을 보이려는 이들의 ‘포도주 선물’에 조선 병사들은 소주 ‘아락’을 건네는 것으로 화답했다. 조선에 처음 온 포도주가 이방인과 조선 사람을 이어주는 구실을 한 것이다.
하멜의 조선 생활은 제주도→한양→전남 강진→전남 여수로 옮겨다니며 13년 28일 동안 이어졌다. 1654년 6월 제주에서 한양으로 옮겨온 하멜 일행은 당시 북벌을 꿈꾸었던 효종에 의해 훈련도감에 배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하멜 일행은 1656년 3월 다시 전남 강진으로 쫓겨났다. 하멜은 결국 1666년 9월 여수에서 통나무로 깎아 만든 배를 타고 탈출한다.
작가는 “지난해 초 하멜의 발자취를 찾아 제주·강진·여수 등을 답사하면서, 강진 군영마을에서 빗살무늬로 된 성벽을 보았다. 그것이 하멜 일행이 쌓은 네덜란드 축성 방식인 ‘헤링본(청어뼈)’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고 집필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멜 일행이 저 성벽을 쌓으면서 미래가 안보이는 암담한 시간을 이겨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멜 이야기가 코로나에 지친 현시대 한국인들에게도 많은 울림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고 덧붙였다.
손 작가는 실제로 하멜 일행은 때로는 네덜란드의 앞선 포병기술을 조선에 전파하고, 청어 저장법 등 혁신적 방식을 소개했으며, 식량난이 심할 때는 불가의 탁발방식을 배워 굶주림을 모면하는 등 “혁신과 회복탄력성으로 암울한 시기를 극복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하멜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인문학 여행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김보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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