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에 엄마와 딸로 출연하는 배우 강부자(오른쪽)와 윤유선이 9일 낮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시시(ECC)삼성홀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아아~, 친정엄마….” 강부자는 말을 잇지 못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와 친정엄마의 차이는 뭘까요?”라는 기자의 물음에 나온 반응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윤유선이 말했다. “친정엄마는, 철들고 나서야 엄마에게서 느껴지는 애틋함 같아요.” 두 사람의 표현이야 달랐지만, ‘친정엄마’라는 단어는 뭉클함과 애틋함으로 다가왔다.
9일 낮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이시시(ECC)삼성홀에서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을 연습하던 두 배우를 만났다. 말기 암 환자인 딸이 생의 마지막 2박3일을 친정엄마와 함께 보내는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다.
연극을 준비하면서 ‘엄마와 딸’이 생각나는지 물었다. “제 휴대전화엔 지금은 48살인 우리 딸이 태어났을 때 찍은 사진이 있거든요. 사진을 볼 때마다 지금도 ‘아빠 엄마를 어떻게 알고 태어났니’라고 말해요. 이 작품 속에서도 ‘내 딸로 태어나줘 고마웠다. 네가 허락만 한다면 나는 또 너를 내 딸로 낳고 싶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보람된 일은 너를 내 딸로 낳은 거란다’라는 대사가 있어요. 이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강부자)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 연습 장면. 아이스타미디어컴퍼니 제공
“저는 엄마 아빠 두분 다 돌아가셨어요. 돌아갈 친정이 없잖아요. 연극 연습하면서 ‘옛날에 엄마한테 맘껏 투정 부리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못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해요.” 윤유선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엄마 얘기하다 보니) 갑자기 그러네요. 저 진짜 눈물 안 흘리는데…”라며 눈물을 닦았다.
강부자가 윤유선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친정엄마와 딸은 정말 눈물 없이 얘기하기 힘든 사이예요.” 그러곤 말을 이었다. “누구는 이 연극을 ‘신파연극’이라고 해요. 근데요, 태어나는 것 자체가 신파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신파예요. 셰익스피어 연극에도 신파가 있어요. 왜 한국 연극, 우리네 핏줄 얘기, 우리네 가족 얘기를 하면 신파라고 그럴까요? 살아가는 게 다 신파라고 생각해요.”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에 엄마와 딸로 출연하는 배우 강부자(오른쪽)와 윤유선이 9일 낮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시시(ECC)삼성홀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강부자와 윤유선은 1977년 드라마 <청실홍실>(동양방송)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강부자는 할머니, 윤유선은 손녀로 나왔다. 둘은 1980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연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도 같이 출연했다. 강부자는 스칼렛 오하라의 유모, 윤유선은 스칼렛의 딸 역할을 했다. “저는 유지인이 스칼렛을 한 것만 기억이 났는데, 유선이가 얘기해줘 그때 기억이 되살아났죠.”(강부자)
강부자는 “예의가 바르고 착해 어려서부터 며느리로 점찍었을 만큼 아끼던 유선이를 연극 무대에서 딸로 만나게 돼 기쁘다”고 했다. 윤유선은 “아이 둘 키우는 엄마가 되어 강부자 선생님과 엄마와 딸로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춘 계기는 뭘까? 강부자의 얘기. “우리 딸이 유선이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엄마, 올케언니 나왔네’라고 농담 삼아 그래요.(웃음) 연극에서 딸 역할을 맡을 사람을 찾느라 고민했는데, 딸이 ‘엄마, 유선이 언니한테 얘기해봐’ 하더라고요.”
윤유선이 이어받았다. “선생님이 저에게 전화를 주셨어요. 정말 고마웠죠. 처음으로 ‘같이하자’고 말씀해주신 거니까요. 진작 같이했어도 좋았을 텐데, 인연이 안 닿았던 거죠.” 다시 강부자가 이었다. “그동안 텔레비전에서 열심히 내공을 쌓고, 열심히 연기를 수련하고 나서 둘이 이번에 만나게 된 거죠.”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 공연 장면. 아이스타미디어컴퍼니 제공
강부자는 2009년 초연 이후 12년 동안 이 연극에서 친정엄마 역을 맡았다. 그동안 관객 반응이 어땠는지 물었다. “많이 우세요. 처음 이해랑예술극장에서 시작할 땐 연극이 끝나면 바닥이 하얬어요. 눈물 닦은 휴지로 가득 찬 거였죠. 처음엔 모녀가 주로 오셨는데, 시간이 갈수록 모자, 부부, 고부, 부자, 애인도 많이 오세요.”
제일 슬픈 장면은 무엇일까? “하이라이트는 연극 마지막이죠.”(강부자) “그때는 연기하는 저도 눈물을 참기가 너무 힘들어요. 할 때마다 힘들어요.” 다시 윤유선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 포스터. 아이스타미디어컴퍼니 제공
관객에게 이 연극은 어떻게 다가올까? “세련된 엄마, 부자 엄마만 나오는 그런 연극이 아니에요. 그야말로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의 엄마와 딸, 가족 얘기를 다룬 연극이죠.”(강부자)
“엄마는 딸을 사랑하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자신을 떠올려볼 것 같아요. 딸은 엄마에게 잘하지 못한 걸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 같아요. 그러면서 위로와 공감이 될 거예요.”(윤유선)
4년 만에 서울 무대에 오르는 <친정엄마와 2박3일>은 12~28일 이화여대 이시시삼성홀에서 펼쳐진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