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이건희 기증관’ 정체성을 찾아라

등록 2021-11-10 18:17수정 2021-11-11 02:39

전시관 직제 편제 등 이견 분분
문체부–서울시는 송현동 터 협약
황희 문체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10일 오전 서울 공예박물관에서 이건희 기증관 업무협약식을 마친 뒤 경내 교육동 전망대에 올라가 협약문서를 들고 취재진 앞에 섰다. 이들 뒤로 전날 이건희 기증관 건립 터로 확정된 송현동 땅이 펼쳐져 있다.
황희 문체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10일 오전 서울 공예박물관에서 이건희 기증관 업무협약식을 마친 뒤 경내 교육동 전망대에 올라가 협약문서를 들고 취재진 앞에 섰다. 이들 뒤로 전날 이건희 기증관 건립 터로 확정된 송현동 땅이 펼쳐져 있다.

“오늘은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대역사의 화룡점정을 찍었어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취재진 앞에서 웃으며 덕담을 건넸다. 10일 오전 11시40분, 두 사람은 서울 종로구 안국동 서울공예미술관 교육동 옥상 전망대에 협약문서를 나눠 들고 나타났다. 전망대 너머로 멀리 북악산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송현동 땅의 노랗고 벌건 단풍 숲 정경이 드넓게 펼쳐졌다. 홀가분한 표정으로 풍경을 내려다본 황 장관과 오 시장은 조금 전 교육동 4층 강당에서 이건희 기증관 송현동 건립을 위한 문체부-서울시 업무협약에 서명한 참이었다.

지난 4월 삼성가 유족들이 기증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미술품 컬렉션을 상설 전시할 기증관으로 송현동이 확정됐다고 전날 문체부가 발표한 데 이어 그 후속조치로 시와 함께 건립 사업을 공동추진하기 위한 공식 절차가 시작됐음을 알린 것이다. 이날 전망대 회동 못지않게 주목받은 건 송현동 터를 확정 지은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의 김영나 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이 함께 배석해 던진 발언이었다. 김 위원장은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독립된 기관으로 학예실과 수장고 등 별개의 편제와 시설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황 장관도 “기증관은 그동안 갈라졌던 박물관과 미술관의 경계를 아우른 융복합 박물관으로 자리할 것”이라며 “미술관 박물관 내부에서 합의된 사안”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10일 오전 문체부와 서울시의 이건희 기증관 업무협약식을 마치고 서울공예박물관 전망대에 나란히 선 오세훈 시장과 김영나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장, 황희 문체부 장관.
10일 오전 문체부와 서울시의 이건희 기증관 업무협약식을 마치고 서울공예박물관 전망대에 나란히 선 오세훈 시장과 김영나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장, 황희 문체부 장관.

정말 이들의 말이 맞는 것일까.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와 작품 관리를 책임지는 내부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아니다”라거나 “상부에서 실제 실무를 잘 모르고 나온 말”이라고 했다.

송현동 건립이 확정된 이건희 기증관의 성격과 편제를 둘러싼 논란이 벌써 가중될 조짐이다. 설계공모를 짜기도 전에 문체부와 산하 국립 전시기관이 기증관 성격과 조직 구성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면서 갈등이 빚어지는 양상이 감지된다.

가장 뜨거운 쟁점은 기증관의 정체성이다. 문체부는 9일 내놓은 송현동 건립 보도자료에서 새 기증관 성격을 ‘기증품을 소장·전시하면서 동서양과 시대, 분야 경계를 넘어서는 융·복합 문화 활동의 중심 공간’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내부 학예직들은 대부분 상반되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유족들이 두 국립기관을 지정해 기증한 만큼 컬렉션은 당연히 두 기관에 영구등록돼 적을 두는 것이고, 따로 떼어내 다시 합치는 건 기증 취지에 어긋난다는 반박의 의견들이다. 박물관과 미술관 내부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문체부가 구상하는 ‘수장고+전시장+학예실’ 진용의 융합형 기증관은 사실상 국립미술관 박물관과 별개의 시설이다. 새 직제를 만들어야 하고, 기존 두 기관의 전시시설과 맞먹거나 더 클 수 있는 별개 수장시설까지 지어야 하는 난점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간부급 관계자는 “우리 관에서는 기증관이 서울관에 가까운 만큼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설정하고 미술관 박물관에 적을 둔 컬렉션을 분기별로 순환해 선보이는 상설 전시관 개념이 현실적이라는 의견을 냈으나 문체부 쪽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한 중견 학예사도 “이미 유족이 소장처를 정해 기증한 유물, 작품들을 다시 떼어 신설기관 소장처로 귀속시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기증관 시설 건립 과정에서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본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황희 문체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10일 오전 서울 공예박물관에서 이건희 기증관 건립을 위한 업무 협약식에서 협약을 맺은 뒤 관련 문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황희 문체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10일 오전 서울 공예박물관에서 이건희 기증관 건립을 위한 업무 협약식에서 협약을 맺은 뒤 관련 문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송현동 땅 전체 면적(3만 7141㎡)의 4분의 1가량인 기증관 면적(9787㎡)과 용량이 대형 수장고를 수용하기엔 버겁다는 지적도 있다. 국립미술관의 한 관계자는 “역사문화지구여서 고층화가 안 되는데 2만3000점의 컬렉션 수장고까지 들이면 건물 절반 이상 채울 공산이 크다. 대중의 전시 관람 향유란 목표에 충실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기증관 명칭의 경우 지금의 ‘이건희 기증관’이라는 가칭이 리움 국립분관처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체부도 좀 더 확산성이 있는 명칭으로 바꾸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이와 관련해 박물관과 미술관 내부에서는 송현동이나 국립미술관, 국립박물관의 분관 혹은 별관 형식의 이름을 짓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가 나온다. 명칭부터 독립 기관 추진과 배치되는 셈이어서 문체부 쪽과 어떻게 조율을 할지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한편, 문체부는 지난 7월 기증관 후보지가 송현동과 용산으로 확정되기 전 치열한 유치 활동을 펼쳤던 전국 지자체들의 반발을 고려해 ‘네트워크 뮤지엄’ 개념을 도입하겠다는 복안도 함께 밝혔다. 광주 아시아문화전당과 대구 시내 옛 경북도청 건물, 창원 등에 거점 전시시설을 정해 주기적으로 순회 전시를 열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이 시설들에는 어떤 식의 기관 성격을 규정하고 운영 방안을 도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아 또 다른 논란과 혼선이 예상된다.

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