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공포는 인간을 광기로 이끈다. 두려움으로 이성을 잃은 인간은 자기보존을 위해 폭력과 배제를 일삼는다. 어쩌면 문명은 공포라는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공포는 문명을 집어삼키고 이내 지옥을 만든다.
19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연상호 감독의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은, 지옥이 저승 아닌 이승에서 인간의 공포로 인해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 감독과 최규석 웹툰 작가가 함께 작업한 동명 웹툰이 원작으로, 지옥의 사자들이 사람들에게 지옥행을 선고한 뒤 목숨을 앗아가는 초자연적 현상이 발생하자 신흥 사이비 종교단체 새진리회가 발흥하게 되면서 어느새 지옥으로 변해버린 세상을 다룬 6부작 드라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대낮의 서울 시내에서 한 청년이 기괴한 존재들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다. 불에 탄 듯 검게 그을린 주검 건너편에서 새진리회는 집회를 연다. 의장인 정진수(유아인)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비슷한 죽음을 예로 들며 “죽음을 맞이한 이들 모두가 죄인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는 신이 인간들에게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지옥의 모습”이라며 “신의 의도는 ‘너희는 더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라 설교한다.
수많은 목격자들이 찍은 영상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사람들은 공포감에 휩싸인다. 새진리회 교리가 사람들의 불안감을 파고들던 때, 지옥행 선고를 받은 한 여성의 죽음이 새진리회에 의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새진리회에 대한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을 갖게 되고, 교세는 급격하게 확장된다. 이윽고 ‘화살촉’이라는 새진리회 광신도들은 지옥행이 선고된 이들이나 변호사 민혜진(김현주) 같은 새진리회 반대자들을 죄인으로 간주해 폭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유튜브 방송을 통해 광기 어린 어조로 타인의 죽음을 조롱하며 신의 대변자를 자처한다. 공권력조차 이들의 협조자로 전락하고 사회는 환난의 생지옥이 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실사판 <지옥>은 동명 웹툰이 가지고 있던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를 고스란히 화면으로 옮겨 놓았다. 검은 연기를 흩날리는 거구의 사자들은 만화처럼 그로테스크하게 묘사된다. 배우들의 캐스팅도 만화 캐릭터와 닮은꼴이다. 무엇보다 정진수를 연기한 유아인은 만화 속 유약하면서도 어딘가 미스터리한 인물의 현현처럼 보인다. 원작과 견주며 봐도 좋을 듯하다.
지난 16일 오전 화상으로 이뤄진 <지옥> 제작발표회에서 연 감독은 유아인 캐스팅과 관련한 비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출연 제안 이후 유아인이 며칠 동안 답이 없자 연 감독은 꿈까지 꿨다고 한다. “꿈을 꿨는데 ‘여보세요, 유아인인데요, 저 할게요’ 하더라고요. 그러곤 깼는데 꿈이었어요. 눈물이 한방울 흘렀는데 그때 (유아인이) 하기로 연락이 와 그 자리에서 2m 점프를 해 ‘야호!’ 외쳤죠.” 함께 자리한 유아인은 며칠 답이 없던 이유에 대해 “출연료 협상도 해야 했다”고 농담으로 응수했다. 그는 “사실 대본도 보기 전에 출연을 결심할 작품은 반평생 만나기 어렵다”며 “<지옥>이 그런 작품이었다. 몇가지 키워드만 들었는데도 하고픈 끌림이 확 들었다”고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이전 연출작 <부산행>(2016)의 호러와, 각본으로 참여한 <방법: 재차의>(2021)의 ‘오컬트’(초자연적 현상)를 합쳐놓은 듯한 <지옥>은, 연 감독의 세계관이 집대성된 작품이다. 특히 재난 상황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야만성과 사이비 종교의 폐해를 다룬다는 점에서, 앞서 연출한 애니메이션 <서울역>(2016)과 <사이비>(2013)가 오버랩된다. 결국 진정으로 공포스러운 것은, 좀비나 괴물,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 그 자체다.
다만 목숨을 앗아가는 사자들의 모습이 마블 <어벤져스> 시리즈의 악당 ‘타노스’를 연상케 하면서 공포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데다, 이들을 그린 컴퓨터그래픽도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점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박정민, 양익준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의 호연을 바탕으로 새로운 소재를 몰입감 있게 전개한 <지옥>이, 전세계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오징어 게임>의 영광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지난 16일 열린 <지옥> 제작발표회에서 연상호 감독(왼쪽 셋째)과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