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 듀오 유리상자가 김민기 헌정앨범 <‘아침이슬’ 50년 김민기에게 헌정하다>에 들어가는 ‘늙은 군인의 노래’를 녹음하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다락방에서 보물상자를 발견한 뒤 흥미진진하게 그 안을 들여다보는 기분으로 민기 형의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유리상자)
“선배님들과 함께해서 영광입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새로운 버전으로 편곡될 곡들을 상상하니 웅장함이 더해졌네요!”(알리)
오는 1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아침이슬 50주년 콘서트 김민기 트리뷰트 위드 오케스트라’ 무대에 오르는 가수 유리상자와 알리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김민기를 기억하고 공연을 기대했다.
앞서 이들은 지난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9월22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아침이슬 50주년 기념 헌정 콘서트 ‘김민기 트리뷰트’ 본공연 무대에 오른 바 있다. 최근 각기 따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물었더니 신기하게도 이들은 같은 장면을 얘기했다.
가수 알리가 김민기 헌정앨범 <‘아침이슬’ 50년 김민기에게 헌정하다>에 들어가는 ‘상록수’를 녹음하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본공연을 앞두고 열린 리허설에서였다. 출연 가수 전원이 합창하는 ‘아침이슬’ 전주가 흘렀다. 첫 소절은 알리의 몫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대 위 가수 모두가 빵 터졌다. “긴 밤 지새우고”가 아니라 “저 들에 푸르른”이 나왔기 때문이다. 유리상자는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 알리씨가 리허설 때 긴장해서 그런지, 대박 큰 실수를 했어요”라며 웃었다. 알리도 “‘상록수’에 너무 심취해 있어서 그랬나봐요. 게다가 실수한 걸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장필순 선배님께서 이야기해주셔서 그제야 알았어요”라며 웃었다.
유리상자와 알리의 추억을 하나로 엮은 ‘아침이슬’은 1971년 나온 앨범 <김민기>에 실리면서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이에 가수 35명이 지난 7월 김민기에게 헌정하는 앨범 <‘아침이슬’ 50년 김민기에게 헌정하다>를 발표했다. 이후 수원에서 콘서트를 연 데 이어 이번에 서울에서 콘서트를 또 연다. 이번에는 최영선이 지휘하는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도 함께한다.
유리상자는 헌정 음반에서 부른 ‘늙은 군인의 노래’를 공연에서 선보인다. 김민기가 군 복무 시절 정년퇴직을 앞둔 선임하사의 술자리 푸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만들어 선물한 노래다. 양희은의 음반에 실렸으나 “군 사기를 저하시킨다”며 금지곡이 됐고 앨범도 판매 금지됐다. 1980년 이후 ‘군인’ 대신 부르는 사람에 따라 ‘투사’ ‘교사’ ‘농민’ ‘노동자’ 등으로 다양하게 바뀌어 불렸다.
유리상자는 어떻게 부를까? “원곡이 행진곡 느낌이긴 한데 유리상자 색깔을 입히지 않을 수가 없으니 조금 더 부드럽게 불렀어요. 굉장히 숭고한 노래의 그 분위기를 크게 다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유리상자는 김민기가 운영하는 대학로 소극장 학전에서 데뷔했다. “‘우리가 진짜 가수가 됐구나’ 하고 실감한 게 바로 학전에서 처음 공연했을 때였어요. 공연 준비를 하면서도 관객이 오실까 하고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런데 자리가 부족해 무대 바로 앞 바닥에까지 앉아 공연을 보실 정도로 많이 찾아주셨어요. 25년 동안 가수로 활동하면서 가장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순간이었죠.”
다락방에서 찾은 보물상자는 어떤 의미일까? “민기 형이, 당신이 만든 노래 에피소드 얘기를 해주실 때 다락방에서 찾은 보물상자를 보듯 흥미진진하게 들었죠. 예를 들면 ‘상록수’라는 노래가 사실은 결혼식 축가로 만든 노래였다든지, 그런 얘기였어요. 민기 형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 노래가) 대중에게 다가가는 걸 보며 민기 형도 신기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고 하셨죠.”
김민기는 서정적인 노래를 많이 만들었지만, 엄혹한 독재시대 아래서 그 노래들은 저항의 노래, 민중의 노래가 됐다. 김민기는 보통 사람이 누려야 할 삶과 자유를 얘기했지만, 독재정권은 그걸 싫어했다.
유리상자가 말했듯이 공장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만든 ‘상록수’를 헌정 음반에서는 알리가 불렀다. 이 곡은 1978년 양희은의 음반에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는 골프 선수 박세리의 물속 맨발 샷 영상과 함께 외환위기를 함께 헤쳐가자는 메시지를 담은 공익광고 노래로 방송을 타기도 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때는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홍보 영상에서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불렀다.
이처럼 ‘상록수’는 김민기·양희은·김대중·노무현·박세리 등 여러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다. 알리에게 이 노래를 부를 때 누구 이미지가 떠올랐는지 물었다.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었지만, 알리는 멋진 답을 내놓았다. “‘상록수’를 부를 때 텅 빈 객석에서 노래하는 제 모습을 생각했어요. 코로나로 한창 힘들 때여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노래가 저에게 큰 버팀목이 돼주었죠.”
알리는 ‘상록수’를 부를 때 평소와 달리 유독 목소리에 힘을 빼고 노래한다. 이유가 뭘까? “‘상록수’를 노래할 때 나비효과로 번지는 그런 상상을 했어요. 작은 날갯짓이 변화를 가져오잖아요. 힘을 빼는 게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걸 계속 느껴요.” 하지만 노래의 클라이맥스인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에서는 알리 특유의 폭발적인 가창력을 느낄 수 있다. 이번 무대에서 들을 수 있다.
‘아침이슬 50주년 콘서트 김민기 트리뷰트 위드 오케스트라’ 공연 포스터. 엔터프로 제공
가수 박학기가 총감독을 맡은 이번 공연에는 유리상자와 알리 말고도 작곡가 김형석, 권진원,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이은미, 이적, 장필순, 한영애 등이 참여한다. 12일 오후 2시와 7시 두차례 열리며, 예매는 인터파크(tickets.interpark.com)와 롯데콘서트홀 누리집(lotteconcerthall.com)에서 할 수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