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부를 판 남자>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시리아 난민 샘 알리(야흐야 마하이니)는 갤러리에서 관람객인 척 음식을 먹다 전시 기획자인 소라야(모니카 벨루치)에게 발각돼 망신당한다. 이 모습을 본 세계적 예술가 제프리(쿤 더바우)가 샘에게 다가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등에 타투로 그림을 그려 살아 있는 예술품을 만들겠다며 샘의 등을 빌려달라는 것. 제프리는 거액을 주겠다는 말과 함께 난민은 국경 간 이동이 불가능하지만 예술품은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옛 연인이 벨기에에 체류 중인 것을 안 샘은 그를 만나기 위해 계약서에 서명한다.
샘의 등에 어느 나라든 입국할 수 있는 비자(사증)를 문신으로 새긴 제프리는 난민 문제를 폭로하며 예술의 위대함을 논한다. 살아 있는 사람의 등을 이용한 제프리의 작품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다. 돈 많고 교양이 넘치는 부자들이 예술품이 돼서야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게 된 샘을 보기 위해 줄을 선다. 인권단체들은 난민을 착취하는 예술이라며 반대 시위를 벌이지만, 샘은 특급 호텔에서 캐비어를 먹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기꺼워한다. 그러나 이런 만족과 무관하게 그의 등은 경매에 내걸리고 사물로 관리된 샘은 예술품에 딸린 부속품에 불과하다. 옛 연인과 함께 지낼 수도, 가족을 만날 수도 없던 그는 자신이 내준 것이 등짝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창틀 속 샘의 모습, 자신의 등을 액자에 비춰보는 장면 등을 통해 난민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샘의 처지를 은유한다. 그는 프레임을 벗어날 수 있을까.
영화 <피부를 판 남자>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16일 개봉하는 카우사르 벤 하니야 감독의 <피부를 판 남자>는, 예술품보다 못한 난민의 처지를 통해 인간 존엄성과 예술의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지난해 이탈리아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오리존티 남우주연상, 에디포레상을 수상하며 자본주의의 상품화를 날카롭게 풍자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적 예술가 빔 델보예가 팀이란 남자 등에 타투 작업을 하고 살아 있는 예술품으로 전시한 뒤, 사후에 그 피부를 액자에 보관하는 내용의 계약을 맺은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튀니지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한 카우사르 감독은, 첫 장편영화 <뷰티 앤 더 독스>로 2017년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며 유럽 영화계에 얼굴을 알린 바 있다.
영화 <피부를 판 남자> 스틸컷. 판씨네마 제공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91%를 달성한 <피부를 판 남자>는, 유럽의 영화 제작자 필리프 로지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으로도 화제가 됐다. 필리프 로지는 영국 좌파 감독인 켄 로치의 두번째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와 함께 2019년 작품 <미안해요, 리키>를 제작한 인물. 그는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티탄>과 감독상 수상작인 레오스 카락스의 <아네트>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통쾌한 반전이 인상적인 이 영화는 전설적인 배우 모니카 벨루치의 신작으로도 눈길을 끈다. 모니카 벨루치의 오랜 팬으로 함께 작업할 기회를 바라던 감독은 그에게 샘 알리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소라야 역으로 러브콜을 보내 캐스팅에 성공했다. 단번에 캐릭터 특성을 파악한 모니카 벨루치는 감독과 한 미팅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캐릭터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제안하는 등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