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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데뷔 50년 ‘화수’ 조영남 “삼팔광땡처럼 사는 난 재미스트야”

등록 2021-12-24 04:59수정 2021-12-25 13:48

데뷔 50돌 기념 노래 ‘삼팔광땡’ 발표
가사에 이미자·패티김·조용필·나훈아 등장
“윤여정 아카데미 수상 당시 발언으로 죽다 살아나”
조영남이 19일 자신의 집 피아노 앞에서 얘기를 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조영남이 19일 자신의 집 피아노 앞에서 얘기를 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가수 조영남(75)이 지난 15일 데뷔 50주년 기념 앨범을 냈다. 그는 1968년 번안곡 ‘딜라일라’로 데뷔했으니 정확히는 올해 53주년이다. “50주년 놓고 정기수(소속사 대표)와 싸웠어요. ‘그거 붙여야 하냐. 늙어 보인다’며 빼라고 했지. 근데 정 사장님이 계속 붙여야 한다고 해서 그냥 한 거지, 뭐.”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서 만난 조영남은 14곡을 담은 앨범을 소개했다. 타이틀곡은 ‘삼팔광땡’. 컨트리와 트로트를 섞어놓은 느낌이 난다. 삼팔광땡(작사·작곡 한빈·정기수)은 화투 ‘섰다판’에서 최고의 패.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을 삼팔광땡으로 표현했다.

앨범엔 ‘내 인생 삼팔광땡’이란 곡도 있다. 같은 멜로디에 조영남이 자기 얘기를 가사로 넣어 부른 노래다. ‘손들어봐라 나와보아라/ 이미자와 노래해본 사람/ 손들어봐라 덤벼보아라/ 패티김과 노래해본 사람’ 하는 식이다. 2절에는 조용필과 나훈아도 등장한다. 언뜻 자기 자랑 같지만 곱씹어보면 그렇지 않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조용필이 트렌디한 신곡 ‘바운스’를, 나훈아가 ‘테스형!’을 발표한 것에 대한 부러움을 조영남식 표현으로 돌려 말한 것이다.

조영남 데뷔 50주년 기념 앨범. 샾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영남 데뷔 50주년 기념 앨범. 샾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영남은 노래 가사에 나오지 않은 남진 얘기부터 했다. “얼마 전 예능프로그램(<신발 벗고 돌싱포맨>)에서 나훈아와 숙명의 라이벌인 남진과 얘기했는데, 남진이 50주년 앨범 얘기를 듣고 ‘왜 내 이름은 빠졌냐’고 따졌어요. 방송에선 얘기를 못 했는데 ‘너는 아직도 방송에 나오잖아. 그러면 됐지’라고 말해주려고 했었죠. 허허.”

‘내 인생 삼팔광땡’ 가사에 나오는 가수들과는 호흡이 잘 맞았을까? “다 호흡이 잘 맞았지. 이미자 누님과는 ‘백치 아다다’, 패티김 누님과는 ‘우리 사랑’, 나훈아와는 ‘사랑’을 불렀고, 조용필과는 수도 없이 많은 노래를 불렀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같지 못 부른 게 좀 아쉽네.”

이미자와 패티김에 대해서는 좀 더 얘기했다. “이미자와 패티김 두 누님이 아주 까다롭잖아요. 이 까다로운 두 분이 ‘누님’이라고 부르는 걸 허용해준 가수가 나뿐이야. 왜 허용한 줄 알아요? 둘 다 똑같이 ‘걔(조영남)는 노래를 잘해서 괜찮아’라고 했다니까.”

조영남이 19일 자신의 집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 정혁준 기자
조영남이 19일 자신의 집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 정혁준 기자
50여년 전 조영남은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영국 가수 톰 존스의 ‘딜라일라’를 번안한 곡으로 하룻밤 새 유명해졌다.

“세시봉 단골인 라디오 피디가 앨범 하나를 주면서 번안해 불러보라고 했어요. 처음엔 ‘별 희한한 노래가 다 있네’라고 생각했어. 그땐 젊었으니까 하룻밤 만에 번역해서 다음 날 라디오에서 불렀지. 그게 터졌어.”

1968년 당시 트로트 일색이던 가요계에서 조영남은 색다른 노래를 쩌렁쩌렁한 성량으로 선보였다. “일본식 뽕짝 일색이던 당시 그 노래를 불렀으니까 난리가 났지. 애들부터 할아버지까지 모르는 이가 없었어요. 지금 아이돌 스타보다 더 인기 있었다니까.”

조영남 데뷔 앨범 <조영남의 내 사랑 딜라일라>. 지구레코드사 제공
조영남 데뷔 앨범 <조영남의 내 사랑 딜라일라>. 지구레코드사 제공
성악을 전공한 그가 성악 발성으로 불렀기에 더 파격적이었을 터다. 그는 그해 11월 <조영남의 내 사랑 딜라일라> 앨범을 내며 데뷔했다. 그 뒤 <쇼쇼쇼>(TBC)에 출연해 얼굴을 알리면서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걷는다. “내가 얼굴이 그렇게 잘생긴 게 아니잖아. 가수와 배우는 얼굴이 어느 정도 돼야 하잖아요. 가수는 꿈도 못 꿨는데, 그 노래로 가수가 된 거였지.”

조영남은 작사·작곡에선 뛰어난 작품을 선보이지 못했지만, 노래 하나는 잘 부른다는 평을 받아왔다. 그는 노래를 하다 엇박자나 음을 바꾸는 기교를 잘 선보인다. “나는 노래를 똑같이 안 불러요. ‘삼팔광땡’도 부를 때마다 다 달라요. 음악이라는 게 신이 인간에게 자유롭게 유쾌하게 살라고 준 선물이잖아. 노래를 똑같이 악보대로만 부르면 무슨 재미가 있어요. 감정에 충실해야지. 노래는 연주가 아니라, 공연이야.”

하지만 모든 게 그의 의도대로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조영남은 2007년 7월 우리나라와 우즈베키스탄 축구 친선경기에서 애국가를 자신의 스타일대로 불렀다가 논란이 일었다. “맨날 똑같은 애국가를 새롭게 불렀는데, 그때도 욕 많이 먹었지.”

노래만큼 작사·작곡 실력은 못 미치는 게 아닌지 물었다. 그는 솔직했다. “이전엔 가수는 노래만 잘 부르면 된다고 생각했지. 내가 성악을 해서 그럴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작사·작곡 좀 해둘 걸 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조영남은 노래, 그림, 방송 진행, 라디오 디제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가 <체험 삶의 현장> <지금은 라디오 시대> 등 방송에 자주 나오다 보니 가수보다 방송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조영남이 19일 자신의 집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조영남이 19일 자신의 집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그는 ‘그림 대작 사건’으로 5년가량 방송에 나가지 못했다. 2016년 사기죄로 기소된 뒤 1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 지난해 2심과 3심에선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노래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수를 은퇴했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아티스트한테 은퇴가 어딨어. 노래 안 부르고 싶으면 안 부르는 거지. 은퇴라고 한 적 없어요. ‘딜라일라’ 부를 때 ‘이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데뷔한 게 아니잖아. 맥아더 장군이 말한 것처럼 죽는 게 아니고 사라지는 거지.”

조영남의 호는 ‘화수’다. ‘화가와 가수’라는 뜻이란다. 이번에 낸 앨범 표지도 구스타프 클림트의 ‘포옹’에 화투를 덧입힌 그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팝아트에 관심이 있다가, 입체파에 관심이 있다가, 지금은 클림트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 클림트가 금색으로 화려함을 표현했는데, 나는 화투로 화려함을 표현했어. 아름다우니까 그림이 좋잖아.”

그림은 언제부터 그린 걸까? “군대에 있을 때 김민기가 ‘아침이슬’을 부르는 걸 봤어. 노래를 멋지게 했어요.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동숭동(당시 서울대 캠퍼스)에 있던 미대를 찾아가서 김민기를 만났지. 김민기가 미대 교수님들을 소개해줬어. 교수님들이 내 그림을 보고 난 뒤 ‘음악 하지 말고 그림 그려라’고 했다니까. 그 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

조영남이 19일 자신의 집에서 자신이 초창기에 그린 유화를 선보이고 있다. 정혁준 기자
조영남이 19일 자신의 집에서 자신이 초창기에 그린 유화를 선보이고 있다. 정혁준 기자
조영남은 처음엔 시골 풍경이나 청계천 풍경을 유화로 그렸다. 화투 그림은 언제부터일까? “미국에 있을 때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에 가끔 갔어. 그때 본 게 팝아트야. 앤디 워홀이 그때 떴잖아. ‘나도 따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미국에서 플로리다에 살았는데, 한국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화투를 치는 거예요. 의사도 치고, 회사원도 치고. ‘아, 이거다’ 했지. 앤디 워홀이 ‘콜라병’이라면, 조영남은 ‘화투’다. 그 뒤 주야장천 화투만 그렸지.”

그는 화투를 다르게 생각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화투에 그림이 있는 걸 몰라. 그냥 화투만 치지. 화투를 치는데도 화투 안에 있는 그림을 못 봐. 오히려 숫자만 보지. 나는 화투를 못 쳐요. 그렇지만 화투에 있는 그림을 본 거야. 무릎을 딱 쳤지. 화투를 그림으로 그려 예술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깜짝 놀랐지.”

조영남이 19일 자신의 집에서 자신이 쓴 책을 그린 그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조영남이 19일 자신의 집에서 자신이 쓴 책을 그린 그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그는 1983년 첫 책 <조영남 양심학>을 낸 뒤 지난해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까지 줄잡아 책 20권을 냈다. 책을 이렇게 많이 쓴 이유는 무엇일까? “첫 책을 낸 뒤 계속 쓰게 됐지. 근데 내가 첫 책은 어떻게 쓰게 된 거지?”라고 되물었다. 본인도 궁금해서 그랬는지 첫 책을 낸 출판사(평민사) 사장이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설 <인간시장> 저자인 김홍신 전 국회의원이었다.

조영남이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어, 김 전 의원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영남이 형이 출판사에 가끔 놀러 왔잖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너무 재미가 있었어. 가수가 재주가 한둘이 아니었어요. ‘조영남은 진짜 천재다’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얘기를 책으로 쓰라고 해서 책으로 낸 거였지.”

그림, 음악, 글쓰기 가운데 가장 어려운 건 뭘까? “힘든 건 없어요. 다만 차이가 있지. 음악은 규율이 있잖아. 악보가 있고, 지휘자도 있고. 그런 물리적인 제약을 받으면서 해야 하잖아. 미술은 정반대야. 캔버스에 그냥 100% 자유롭게 그리면 돼. 난 자유가 많은 쪽에 흥미를 느끼는 편이지.”

조영남이 19일 자신의 집에서 화투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정혁준 기자
조영남이 19일 자신의 집에서 화투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정혁준 기자
배우 윤여정 얘기를 물어볼까 말까 고민하다 물었다. “윤여정이 아카데미상 탄 날 기자들한테 전화 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어. ‘축하합니다’로 끝내면 기자들이 쓸 게 없잖아. 그래서 미국식 유머로 우아한 복수라고 한 거였지. 그 말 하고 난 뒤 죽다 살아났어.”

그 말에 미안하다고 말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사과할 게 있으면 사과해야지 뭐. 하여튼 헤어지고 나서는 죄의식 갖고 살고 있어. 헤어질 때 애들 생각 왜 안 했는지…. 애들한테 정말 미안하고.”

그렇게 인터뷰는 2시간을 훌쩍 넘겼다. 마지막으로 조영남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재미스트’야. 재미없는 일은 안 하는 성격이에요. 재미있게 살고 싶고, 재미있게 살려고 해. 이번 앨범도 재미있게 만들었고, 재미있게 공연할 거야.”

그랬다. 조영남은 문제적인 가수인 동시에 자유로운 영혼이면서 ‘재미스트’였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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