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포크 가수 양병집.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오늘 같은 날 비나 오구려/ 때 묻은 내 몸뚱이를 씻어주시게/ 비나 오구려 오늘 같은 날/ 지저분한 저 길거리를 씻어주시게’(양병집 ‘오늘 같은 날’)
1세대 포크 가수 양병집(본명 양준집)이 24일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숨진 채 뒤늦게 발견됐다. 향년 70. 고인은 1970년대 활동했던 김민기·한대수와 함께 ‘3대 저항가수’로 불렸다.
25일 가요계에 따르면 양병집은 친분이 있던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와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약속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카페 주인이 112에 신고했고, 경찰이 자택에서 고인을 발견했다.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음악의 꿈을 좇아 서라벌예대 음대 작곡과에 입학했지만, 부친 반대로 음악학도의 길을 접고 증권사에 입사했다. 고인은 증권사 입사 1년여 만인 1972년 한 포크 경연대회에 동생 양경집의 이름으로 참가해 3위로 입상했다. 그때 부른 노래가 밥 딜런의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잇’에 직접 노랫말을 붙인 그의 대표곡 ‘역’(逆)이었다. 이 노래는 김광석이 1996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리메이크했다.
양병집이라는 이름은 이 대회 시상식에서 나왔다. 주최 쪽이 그의 이름을 ‘양병집’으로 잘못 불렀는데, 이를 계기로 그가 예명으로 정했다고 한다.
고인은 1974년 1집 <넋두리>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 앨범엔 미국 민요 ‘윕 포 제이미’를 개사한 ‘잃어버린 전설’이 실렸다. 이 노래는 월남 파병, 민주화 항쟁, 산업 전선에서 쓰러져간 젊은이를 애도하는 메시지가 담겼다. 이 앨범에 실린 또 다른 노래인 ‘서울 하늘 1’는 ‘나도 돈 좀 벌고 싶어서/ 나도 출세 좀 하고 싶어서/ 일자리를 찾아봤으나 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는 가사로 당시 사회상을 꼬집었다.
그의 데뷔앨범은 시대 상황을 풍자하는 노랫말 때문에 박정희 정권이 ‘불온 음반’으로 분류해 발매 3개월 만에 전량 회수 조처됐다.
그는 현실을 비꼬는 노랫말을 저항의 상징인 포크에 실어 불렀다. 이 때문에 고인은 독재정권 아래서 어려움을 겪고 가수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이에 1980년대 초 서울 이화여대 근처에 음악 카페 모노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곳은 밴드 들국화가 결성을 도모한 곳이기도 하다.
이후 고인은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떠났다가 1999년 한국으로 돌아왔고, 2005년에는 7집 <페이드 어웨이>, 2013년에는 8집 <에고&로고스>를 발표했다.
2016년에는 들국화 원년 멤버인 기타리스트 조덕환과의 협업 곡을 담은 새 앨범 ‘흔치 않은 노래들’을 내는 등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고인은 지난달 말 자신의 음악 여정을 풀어낸 자전적 소설 <밥 딜런을 만난 사나이>를 펴내기도 했다.
정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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