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웨어 스페셜>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두 저소득층 가구를 통해 유럽 복지시스템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영화 두 편이 잇따라 관객을 만난다.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노웨어 스페셜>과 아나 로샤 감독의 <리슨>. 각각 실화에서 영감을 얻거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두 영화는 영국 입양제도의 명암을 비추며 원치 않는 상황에서 헤어질 위기에 처한 가족의 비극을 응시한다.
29일 개봉하는 <노웨어 스페셜>은 입양을 앞둔 부자의 이별 이야기다. 34살의 창문 청소부 존(제임스 노턴)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4살짜리 아들 마이클(대니얼 러몬트)에게 또 다른 부모를 찾아주려 입양 희망 가족들을 만나지만, 확신은 서지 않고 병세는 점점 악화된다. 입양 전 과정에 관여하는 복지당국은 아빠인 존에게 훗날 아들의 기억을 위해 추억상자를 만들라고 할 정도로 세심하지만, 입양을 결심할수록 더 짙어져가는 아빠의 애착에 대해선 사무적으로 대한다.
영화 <노웨어 스페셜>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스틸 라이프>(2013)로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한 이탈리아 출신 파솔리니 감독은, 글렌 클로스 주연의 <비너스>, 아카데미 시상식 4개 부문 후보에 오른 <풀 몬티>, 로버트 패틴슨과 우마 서먼 주연의 <벨아미> 등의 제작자로도 유명하다. <스틸 라이프>는 배우 원빈이 직접 국내 리메이크 판권을 구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노웨어 스페셜>의 각본·제작·연출을 맡은 파솔리니 감독은 “불치병에 걸린 아버지가 죽기 전 갓난아기 아들을 위해 새 가족을 찾는다는 기사를 읽자마자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이 영화가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나 다르덴 형제의 작품처럼 미묘하고 조용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보여주길 바랐다”고 했다.
아빠 존 역은 <작은 아씨들> <미스터 존스>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영국 배우 제임스 노턴이 맡았다. 대니얼 크레이그를 잇는 7대 007 후보에 올랐을 정도로 인기 상승 중이다. 4살짜리 아들 역은 신인 아역배우 대니얼 러몬트가 맡아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 배경인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지역 출신으로,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됐다.
영화 <노웨어 스페셜>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노웨어 스페셜>에선 시한부 아버지가 직접 입양 가정 선택에 참여하는 특수한 상황이 추가됐지만, 원래 영국 입양제도는 부모가 부재하거나 부모와 분리해 양육할 경우 기관에서 아이들의 입양 가정을 선정한다. 아이들을 대신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시스템이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리슨>이 그런 경우다.
포르투갈 이민자인 벨라(루시아 모니스)는 남편, 삼남매와 런던 교외에 살고 있다.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벨라는 청각장애가 있는 어린 딸 루(메이지 슬라이)와 젖먹이 막내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상점에서 빵을 훔쳐 아이들을 먹인 벨라는 루를 학교에 데려다준다. 하필 루의 보청기가 고장난 그날, 등에서 멍 자국이 발견되고, 복지 공무원과 함께 출동한 경찰은 아이들을 ‘보호’한다며 삼남매를 부모와 분리한다.
아이들을 다시 만났지만 모국어인 포르투갈어 대신 영어로만 아이들과 대화해야 하고, 루와의 수화조차 금지된다. 아동학대자로 간주된 부모의 항변은 무시된다. 루의 멍 자국이 희귀병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지만 입양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국가가 부모 자격을 박탈하고 가족 의사와 무관하게 분리해 강제 입양하는 영화 속 영국은, 아동학대에 제대로 개입하지 못하는 우리 현실에서 대안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듣는다’(Listen)는 뜻의 제목과 달리 벨라 가족의 실직과 가난에는 귀 기울이지 않던 복지당국이 매뉴얼에 따른 관료적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모든 제도가 완벽할 수 없음을 방증한다.
지적장애 아빠의 양육 분투기인 <아이 엠 샘>(2002)과 켄 로치 감독의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가 겹쳐지는 <리슨>은 포르투갈 출신으로 런던에 살던 아나 로샤 감독이 우연히 강제 입양 사례를 듣고 연출한 작품이다. <러브 액츄얼리>(2003)에서 제이미(콜린 퍼스)의 원고를 건지기 위해 연못에 뛰어들던 오렐리아 역으로 얼굴이 알려진 루시아 모니스가 엄마 벨라 역을 맡았다. <아이 엠 샘>에서 아역을 연기했던 어릴 적 다코타 패닝을 연상케 하는 루 역의 메이지 슬라이는 실제 청각장애 배우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