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르포] 너무 야하면 어떡하지?…야했냐고?…차라리 TV가 더 야해
지난 11일 저녁 서울 강남구 리츠 칼튼 호텔에서 세계적인 성인잡지의 한국인 모델 선발대회가 열렸다. 이름하여 ‘2006 한국 플레이보이모델 선발대회’. 1등인 플레이보이걸로 선발되면 월드컵 특집인 <플레이보이> 6월호를 통해 플레이보이 모델로 데뷔하게 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플레이보이지의 모델을, 그것도 도심 한 복판 별 다섯개짜리 호텔에서 공개적으로 뽑는다고? 바짝 긴장한 채 취재에 나섰으나 결론부터 말해 막상 선발대회 현장은 그 ‘야함’이 ‘플레이보이’라는 이름이 주는 기대치(?)에 많이 못 미쳤다. 아니, 그게 아니라 최근 10여년 사이에 기는 플레이보이지 위를 날아다니는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고) 신문과 방송이 그 기대치를 높여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플레이보이모델 선발대회가 초라해보일 정도로 한국의 성인문화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니, 그건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충격 없어서 충격… 이런 ‘충격없음에 대한 충격’은 공식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시작됐다. 사회자인 방송인 강병규, 수퍼엘리트모델 김소연의 소개에 따라 참가자 17명이 식전행사인 군무를 추기 위해 떼로 몰려나왔다. 플레이보이걸의 상징인 ‘바니’(토끼)가 새겨진 흰색 배꼽티와 청바지를 맞춰입은 후보들이 너댓명의 남자들과 함께 떼춤을 추기 시작했다. 흐느적 거리는 웨이브, ‘시작은 좀 식상하군’ 싶었다. 남자들과 짝을 이룬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커플 댄스가 이어졌다. ‘음…2단계, 아직 공중파 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보다 덜하군, 다음 단계가 나오겠지’ 했다. 다시 웨이브, ‘뜸을 너무 들이는 걸?’하고 지루해하는 사이, 군무는 뜸만 들이다 끝이 났다. 뜸만 들이다…끝 났다 하지만 아직 본 대회가 남아 있었다. 다른 미인대회에서는 볼 수 없던 란제리 패션쇼 심사가 시작됐다. ‘헉! 저 망사 팬티 안에 덧입은 흰 팬티는 뭐지? 이거 플레이보이모델 선발대회 맞아?’ 케이블 텔레비전 홈쇼핑 채널에서 란제리를 팔 때마다 나오는 모델들의 노출 수위보다 낮으면 낮았지 결코 높지 않았다. 실제로 대회장의 많은 관객들이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수영복 심사도 있었지만 수영복과 모델들의 포즈는 해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신문이 대서특필하는 수퍼엘리트모델 선발대회의 ‘도발’을 따라가지 못했다. 물론 “후보 중 가장 완벽한 에스라인”이라거나 “아임 소 크레이지 섹시, 룩 앳 미, 필 미” 같은 ‘도발적으로 보이기 위한’ 자기소개가 잇따랐다. 야했느냐고? 그럴 때마다 객석에서 적잖이 폭소가 터져나왔다는 설명으로 답을 대신한다.
참가자들의 태도는 거리낌이 없었다. 1위로 뽑힌 이파니(19)씨는 수상 뒤 전화통화에서 “솔직히 창피한 것 하나도 없고, 수상을 계기로 성실하고 멋진 모델이나 배우, 가수가 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아버지는 내 수상소감이 실린 기사를 가지고 다니시며 친지들한테 열심히 자랑하시는 중이고, 인터넷 기사에 달린 나에 대한 악플은 부러우니까 단 것이라 생각한다”는 경쾌한 답변도 내놨다. 아임 소 섹시…푸하하… 다른 참가자들의 면면도 예사롭지 않다. ‘미스코리아 대구미’ 타이틀을 자랑하는 참가자도 있었고, 2위인 전지은(19)씨는 수퍼엘리트모델 본선 진출 경력이 있다. 이밖에 전직 경호원을 비롯해 모델부터 대학생, 회사원, 심지어 아이 엄마에 이르기까지 200여명이 참가신청서를 제출했다. 대회 뒤 스포츠신문과 인터넷매체를 중심으로 수상자 소감과 대회 이모저모가 기사화됐다. ‘섹시한 몸짓’, ‘당당한 포즈’ 처럼 의례적인 스케치 기사들이 주류를 이뤘지만, “2% 부족했다”는 비판에서부터 “음지에 있던 성인문화의 양지화”라는 긍정적인 분석까지 엇갈리는 평가들도 있었다. ‘충격없음에 대한 충격’을 제대로 받고 나니, 이런 반응들을 향해 “이번 대회가 2% 부족한 게 아니라 인터넷과 신문 방송이 98% 넘치는 것”이라거나 “이미 양지화된 지 너무 오래라 식상하다”고 딴죽을 거는 건 ‘꼰대’짓이 될 터. 페미니즘 잡지 <이프>의 편집위원이기도 한 작가 김신명숙씨의 지혜를 빌렸다. 플레이걸 정도는 뽑아야? “성상품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플레이보이라는 명성도 인터넷에 밀린지 오래다. 대회 개최의 옳고 그름을 떠나 플레이보이모델 선발대회라는 것 자체가 낙후된 느낌이고, 그래서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플레이걸 모델 정도는 뽑아야 상품화가 되지 않을까?”라는 쿨한 답변이 돌아왔다. 글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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