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틸컷. 월트디즈니코리아 제공
할리우드의 두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두 편이 12일 나란히 개봉된다.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하우스 오브 구찌>로 맞붙게 된 두 걸출한 감독은, 화려한 영상과 감각적인 연출을 경쟁적으로 뽐내며 자신의 건재를 세상에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첫 뮤지컬 영화다. 자신을 가둔 환경과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마리아(레이철 제글러)와 토니(앤설 엘고트)의 사랑과 용기를 그린 작품. 1957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지금까지 상연되는 동명의 메가히트 뮤지컬이 원작이다.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틸컷. 월트디즈니코리아 제공
195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뉴욕에 정착한 푸에르토리코인 마리아는 댄스파티에서 토니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두 사람에겐 백인과 히스패닉의 갈등이라는 장벽이 놓여 있다. 동생 마리아의 교제를 극력 저지하는 오빠는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패거리 ‘샤크파’의 우두머리였고, 토니의 사랑에 반대하는 친구는 백인 패거리 ‘제트파’ 두목. 두 집단의 반목을 조정하려는 두 사람의 시도가 좌절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 속 스페인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자막을 넣지 않은 스필버그의 의도적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소통되지 않는 두 집단의 답답한 현실을 실감하게 해준다.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틸컷. 월트디즈니코리아 제공
뮤지컬 영화답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역동적인 군무 장면과 환상적인 음악으로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특히 뉴욕 할렘가에 수십명이 쏟아져 나오며 춤추고 노래하는 오프닝 장면과 샤크파와 제트파가 여성들과 함께 춤으로 대결하는 댄스파티 군무 장면은 생동하는 젊음의 에너지로 관객들을 심폐소생시킨다. 스필버그의 연출력에 아카데미 촬영상 2회 수상자인 촬영감독 야누시 카민스키, 토니상 안무상 수상자 저스틴 펙, 엘에이(LA) 필하모닉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합세해 또 하나의 역작이 탄생했다.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틸컷. 월트디즈니코리아 제공
최근 <씨네21>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뤄진 윤제균 감독과의 대담에서 스필버그 감독은 뮤지컬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언제나 내 최고의 뮤지컬이었다. 나는 항상 춤과 음악과 연기가 함께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사랑은 언제나 의미 있는 주제이며, 분열 또한 오늘날 중요한 주제다. 지금이 이 이야기를 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그는 “실제처럼 보이게 찍는 것을 촬영 원칙으로 삼아 영화의 실외 장면은 모두 실외에서 촬영했다”며 뉴욕 브루클린과 맨해튼, 브로드웨이를 오가며 이뤄진 로케이션 촬영 비하인드를 전했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컷.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사랑과 용기에 관한 슬프도록 아름다운 세레나데라면, 리들리 스콧의 <하우스 오브 구찌>는 사랑과 욕망에 대한 적나라한 르포르타주다. 매거진 편집장으로 이탈리아 패션 산업을 취재해온 작가 사라 게이 포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패션 명가인 구치(구찌) 가문의 성공과 몰락을 다룬 실화 소재 드라마다.
댄스파티에 참석한 파트리치아(레이디 가가)는 그곳에서 구치가의 가업을 잇기보다 변호사가 꿈인 마우리치오(애덤 드라이버)를 우연히 만난다. 이윽고 파트리치아의 유혹에 넘어간 마우리치오는 아버지 로돌포(제러미 아이언스)의 반대에도 결혼을 강행한다. 구치 가업을 이어가던 알도(알 파치노)는 무능한 아들인 파올로(재러드 레토)보다 조카인 마우리치오를 후계자로 점찍는다. 로돌포의 죽음 이후 파트리치아는 심령술사인 티나(살마 하이에크)의 도움을 받아 어리숙한 남편을 조종해 알도와 파올로의 지분을 빼앗으며 가업을 차지한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컷.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컷.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압도적인 캐스팅을 자랑하는 이 영화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파트리치아 역의 레이디 가가다. 이탈리아 북부 출신인 파트리치아의 억양을 6개월 동안 연습했다는 그는, 사랑에 빠진 여인부터 탐욕에 눈먼 악녀까지 다면적인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소화해냈다. 이 작품을 통해 리들리 스콧과 처음으로 만났다는 알 파치노의 연기는 그 자체로 명품이고, 매번 6시간 분장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지워낸 재러드 레토의 ‘웃픈’ 파올로 연기도 압권이다.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스틸컷.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매력적인 구치 패밀리의 스타일링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카를 라거펠트, 베르사체, 톰 포드 등의 패션쇼 장면들은 세계 패션의 중심인 이탈리아 패션계의 고급스러움과 아름다움을 스크린에 그대로 재현해냈다. 리들리 스콧과 함께 일해온 잰티 예이츠가 선보인 의상 디자인들은 사치스러우면서도 우아한 명품 구치의 세계를 전시한다.
영화의 결말처럼, 1921년 구초 구치가 설립한 패션 가문 구치는 1990년대 초반 바레인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가 지분 전체를 인수하면서 창업주인 구치 가족과 무관한 회사가 됐다. 1999년 명품 브랜드 기업 케링이 인수한 뒤, 2019년 매출액에서 샤넬을 제치고 루이뷔통에 이어 업계 2위가 됐다. 영화에 등장한 알도는 아버지 구초 구치의 이름을 따 두개의 지(G)가 반대로 교차된 지금의 로고를 만들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