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와 카카오는 한국과 일본에 이어 미국에서도 웹툰 시장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네이버와 카카오가 선보인 주요 웹툰들. 네이버·카카오 제공
<디피>(D.P.) <지옥> <닥터 브레인> <연모> <술꾼도시여자들> <이태원 클라쓰> <경이로운 소문> <스위트 홈> <유미의 세포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지상파·종합편성채널에서 시리즈나 드라마로 제작된 프로그램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원작이 웹툰이다.
이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디피>는 <오징어 게임>을 제치고 미국 <뉴욕 타임스>가 지난해 연말 뽑은 ‘2021년 국제 부문 최고 드라마 시리즈 톱10’에 선정됐다. <닥터 브레인>은 애플티브이플러스를 통해 100개국 이상에 선보였다. <유미의 세포들>은 유럽·북미·동남아시아 등 세계 160여개국에 방영됐다.
이들 드라마가 이렇게 흥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탄탄한 원작 웹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웹툰은 세계적 흥행을 가져오고 있는 케이콘텐츠의 저수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케이(K)웹툰은 콘텐츠 제국이라고 알려진 미국에 깃발을 꽂으려 하고 있다. 그 선봉에는 두 맞수 기업이 있다. 이들은 국내에 이어 일본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고, 이젠 미국에서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이 도전하고 응전하는 현장을 찾았다.
네이버 웹툰 미국 서비스 누리집. 네이버 웹툰 제공
지난해 11월24일(현지시각) 저녁 6시 미국 로스앤젤레스,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둔 날. 이신옥 네이버 웹툰 미국 콘텐츠 총괄 리더를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총괄 리더는 웹툰 불모지인 미국에서 도전한 얘기를 꺼내놓았다. “네이버를 모르는 미국인이 많았다. 3년간 웹툰 작가를 모으는 데 노력을 기울였는데, ‘사기꾼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2003년부터 웹툰 서비스를 한 ‘다음’은 강풀의 <순정만화>, 윤태호의 <미생> 등 작가주의 웹툰이 큰 인기를 끌며 웹툰 명가로 불렸다. 2005년 뒤늦게 웹툰 서비스에 들어간 네이버는 포털 1위 점유율을 바탕으로 물량 공세를 펴 작품 수를 급속히 늘리면서 순위를 뒤집어버렸다. 다음과 카카오가 통합한 뒤에도 웹툰 시장에선 네이버 독주 체제가 공고화됐다.
이후 네이버는 일본에도 진출해 ‘라인망가’라는 서비스로 일본 웹툰 시장 1위에 올랐다. 일본에서 후발 주자인 카카오도 국내 웹툰 <이태원 클라쓰> <나 혼자만 레벨업>을 서비스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2020년 하반기부터 매출에서 네이버를 따돌리고 있다.
한국·일본에 이어 이젠 미국이 결전의 장이 됐다. 카카오는 일본에 이어 미국에서 도전장을 냈다. 2014년 미국에 진출한 네이버, 2020년 타파스를 인수하며 한발 늦게 미국에 진입한 카카오는 미국 웹툰 시장을 놓고 서로 다른 전략을 쓰고 있다. 네이버는 본사 차원에서 직접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방법으로 나가고 있다. 인수합병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카카오는 북미 시장에서도 타파스미디어를 인수하며 네이버에 도전장을 냈다. 타파스는 201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설립된 북미 최초의 웹툰 서비스 회사다. 카카오 자회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타파스와 협력관계를 이어오다 2020년 11월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로스앤젤레스 한 카페에서 만난 미셸 웰스 타파스미디어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는 “네이버 웹툰은 강한 경쟁자이지만, 우리는 (네이버 웹툰을) 이기기 위해 계속 도전할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밝혔다.
비즈니스 모델에서도 차이점이 보인다. 네이버는 유튜브 모델이다. 아마추어 웹툰 창작자들이 자기 작품을 독자에게 선보이는 장터를 마련해주고 미국 소비자의 선택을 지켜보는 방식이다. 장터를 만들어 놓고 영상 콘텐츠를 소비자가 선택하게 하는 유튜브 전략과 닮았다. 물론 네이버도 유튜브 모델 외에 퀄리티 높은 연재 작품을 서비스하는 넷플릭스 모델도 일부 채용해 서비스하고 있다. 수익보다 파이를 키우는 데 집중하는 만큼 월간 이용자 수(MAU)는 1400만명에 이른다.
네이버 웹툰이 디시코믹스와 손잡고 선보인 웹툰 <배트맨: 웨인 패밀리 어드벤처>. 네이버 웹툰 제공
카카오는 넷플릭스 모델이다. 다음의 작가주의 웹툰처럼 퀄리티 높은 작품과 작가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역량 있는 곳에 투자해 콘텐츠 값어치를 높이는 넷플릭스 전략과 닮았다. 월간 이용자 수는 320만명으로 네이버 웹툰보다 적지만, 전체 이용자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두 회사가 인수한 웹소설 회사 역시 비슷한 전략을 쓴다. 네이버가 인수한 왓패드는 아마추어 작가가 자유롭게 작품을 올리고, 독자에게 선택을 많이 받으면 히트작이 된다. 작품 대부분이 무료로, 광고·파트너십으로 수익을 올린다.
카카오가 인수한 래디시는 전문 작가진과 직접 계약하는 방식으로 괜찮은 콘텐츠를 확보한다. 래디시의 콘텐츠는 90%가량이 유료이며, 이 유료 콘텐츠가 전체 실적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전략도 있다. 바로 슈퍼 지식재산권(IP) 확보다. 슈퍼 아이피는 다양한 포맷으로 확장될 수 있는, 세계관이 탄탄하고 확장성 있는 아이피를 뜻한다.
네이버는 디시(DC)코믹스, 하이브 등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슈퍼 아이피를 웹툰이나 웹소설로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엔 디시와 손잡고 새 오리지널 웹툰 시리즈 <배트맨: 웨인 패밀리 어드벤처>를 북미에 먼저 내보냈다.
한국 웹툰을 번안해 타파스에서 선보인 웹툰 <닥터 브레인>. 타파스미디어 제공
이달엔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7명의 범 사냥꾼으로 나오는 웹툰을 공개한다. 그동안 음악으로만 보여온 아티스트의 모습을 스토리 장르를 통해 콘텐츠로 확장하는 것이다. <세븐 페이츠: 착호>는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장르로, 조선시대 범 잡는 부대로 알려진 ‘착호갑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한국 전통 호랑이 설화를 재해석해 새롭게 탄생시킨 스토리다. 이 웹툰에선 방탄소년단 멤버를 범 사냥꾼으로 설정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카카오 역시 ‘슈퍼 아이피 유니버스 프로젝트’를 통해 콘텐츠 투자를 늘리고 육성하고 있다. 카카오의 대표적 슈퍼 아이피로는 <이태원 클라쓰> <승리호> <스틸레인>(강철비) 등이 있다. 카카오는 2020년 하반기부터 타파스를 통해 이런 슈퍼 아이피 콘텐츠를 북미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타파스의 9만여개 콘텐츠 가운데 이런 슈퍼 아이피 80여개가 매출 절반을 끌고 가면서 카카오의 북미 시장 성공 가능성을 검증하게 했다.
웹툰은 네이버와 카카오의 맞수 경쟁에서만 그쳐서는 안 된다. 프린트로 된 미국 코믹스와 일본 망가, 어린아이들이 많이 보는 만화영화 역시 미국에서는 여전히 인기다. 콘텐츠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이들 역시 경쟁자다. 웹툰은 이들 콘텐츠와도 경쟁해 나가야 한다.
네이버 웹툰과 하이브가 선보이는 방탄소년단 웹툰. 네이버 웹툰 제공
주성호 한국콘텐츠진흥원 미국비즈니스센터장은 “미국에서 웹툰은 보편적이라기보다는 마니아적이다. 미국에서는 웹툰을 안 보는 아이들도 많다. 프린트 코믹스(만화)는 많이 본다. 이 때문에 웹툰의 점유율은 전체 만화 시장의 10% 정도다. 하지만 시장이 작다는 건 앞으로 늘려갈 시장이 크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샌프란시스코 벤처캐피털 회사인 프로그레션 펀드의 마크 리나오 파트너는 “한국 웹툰과 일본 망가는 둘 다 콘텐츠가 독특하고 창의적인 게 특징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은 콘텐츠 내용을 일본보다 더 젊은 신세대층에 타깃을 맞추고 있다면, 일본은 한국보다 좀 더 나이가 있는 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웹툰 <승리호>를 번안해 타파스에서 선보인 웹툰 <스페이스 스위퍼>. 타파스미디어 제공
주성호 센터장은 “미국에서도 일본 만화영화는 인기다. 넷플릭스, 케이블, 지상파 어디에서도 나온다. 미국 아이들도 <나루토> <귀멸의 칼날> <슬램덩크>를 다 알 정도다. 미국에선 이들 만화에 거부감이 없고, 일본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즐긴다. 우리나라 웹툰도 일본 만화처럼 세계 곳곳에 뻗어갈 수 있는 저력이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하면 된다.”
국내 웹툰 산업은 2020년 연 매출액 1조원을 처음 돌파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1년 웹툰 사업체 실태 조사’를 보면, 2020년 웹툰 산업 매출액은 전년(6400억원) 대비 64.6% 증가한 약 1조538억원으로 집계됐다. 실태 조사를 시작한 2017년 이래 매출 규모가 1조원을 돌파한 것은 처음이다. 웹툰이 세계적인 흥행 콘텐츠의 보고인 데는 국내 웹툰 시장의 성장이 큰 이유가 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네이버 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자회사 ‘타파스미디어’에서 주목할 만한 웹툰 3선을 추천받았다. 미국에서 많이 보거나, 한국보다 미국 구독자가 많거나,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졌거나 등등 선정 기준은 각 회사가 자체적으로 정했다.
네이버 웹툰은 <로어 올림푸스>를 첫손에 꼽았다. 이 작품은 북미 웹툰의 대표 오리지널 작품으로, 올림푸스 신들 이야기를 개성 강한 작화와 화려한 색채로 풀어내 호평을 받았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아 글로벌 누적 조회수가 12억회를 넘어섰다. 구독자 수는 북미 540만명, 남미 140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영어 단행본은 지난해 12월에 <뉴욕 타임스> 월간 베스트셀러 그래픽북·만화 부문 1위에 올랐다.
액션물 <언오디너리>도 추천작. 현재 5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오리지널 웹툰으로 북미 웹툰 중 첫 1만 댓글을 달성했다. 소년만화의 옷을 입은 미국형 히어로 콘텐츠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여신강림>은 미국에서 <트루 뷰티>(True Beauty)로 번역돼 주목받았다. 평범한 여고생이 메이크업으로 자신감을 얻으면서 사랑과 꿈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화장이라는 전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미국에서 600만 구독자를 넘기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타파스의 첫 추천작은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끝이 아닌 시작>이다. 한때 힘과 재력, 명성을 갖고 있었던 왕이 새로운 세계에서 환생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조회수 1500만회 이상을 기록한 타파스의 대표 웹툰 중 하나다.
<루시드 메모리>는 조회수 50만회 이상을 기록한 오리지널 작품으로 영상화 작업을 논의하고 있다. 사고로 기억을 잃은 주인공의 꿈에 한 남자가 나타나 “게임 쇼에 참여하면 기억을 되찾을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또 다른 타파스 오리지널 작품인 <레스트 에어리어 51>은 만화가 콜먼 엥글과 작가 케일럽 골너의 첫번째 협업 결과물이다. 현재 애니메이션 시리즈 제작을 협의하고 있다. 주인공이 돌아가신 할머니의 테마 휴게소 ‘에어리어 51’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휴게소가 외계인이 찾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친구와 은하계로 모험을 떠난다.
로스앤젤레스/정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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