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눈이 내리는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만난 서상혁 대표. 그는 21~23일 이곳에서 관객 참여형 장례문화 공연 ‘리(Re): 장례’를 연다. 정혁준 기자
‘장례 형식과 절차를 거치지만 충분히 애도하고 있는 걸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했습니다. 형식과 절차로 끝나는 장례가 아니라 마음으로 통과하는 장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지난 17일, 눈 내린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만난 서상혁 후즈살롱 대표는 이곳에서 21~23일 열리는 관객 참여형 장례문화 공연 ‘리(Re):장례’의 기획 의도를 이렇게 얘기했다.
공연은 어떻게 진행될까? 오후 5시, 문화비축기지 문화마당에 설치된 장례문화 테마파크 라운지에서 시작한다. 이곳은 상갓집처럼 천막을 쳐 놓았다. ‘산책지도사’라고 하는 가상의 장례문화 테마파크 서비스 직원(배우)들이 30여명의 관객에게 1시간30분가량 안내할 서비스를 얘기해준다.
지난 17일 눈이 내리는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만난 서상혁 대표. 그는 21~23일 이곳에서 관객 참여형 장례문화 공연 ‘리(Re): 장례’를 연다. 정혁준 기자
그 뒤 관객은 산책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오롯이 혼자만의 산책으로 사유의 길을 걷는다. 길을 걸을 때는 공원 곳곳에 있는 안내방송 스피커에서 음악과 해설이 흘러나온다. 서 대표는 “이 공연의 부제는 ‘아직 보내지 못한 이들을 위한 산책’이다. 부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관객은 산책하면서 누군가를 애도하고, 죽음과 삶에 대한 자기 생각을 돌아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산책은 사유다”라고 말했다.
인연의 길이 끝나는 지점엔 선택의 길이 세 갈래로 나뉜다. 관객은 장갑을 끼게 되는데, 장갑은 9명씩 빨간 실로 연결돼 있다. 서 대표는 “이 길에선 인생이란 자기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경험한다”고 했다.
지난 17일 눈이 내리는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만난 서상혁 대표. 그는 21~23일 이곳에서 관객 참여형 장례문화 공연 ‘리(Re): 장례’를 연다. 정혁준 기자
세 갈래 길을 산책한 뒤 관객은 ‘기록관’(T1 파빌리온-통로)에 입장한다. 애도와 죽음, 삶에 관해 쓴 여러 저자의 글이 전시돼 있다. 뒤이어 한지로 채워진 무수한 다발을 지나간다. 씻김을 뜻한다. 이어 유리에 반사된 자신과 주변을 겹쳐 볼 수 있는 ‘회고관’(T1 파빌리온-원형)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산책지도사는 ‘마음으로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그 사람과 처음 만났던 순간’을 함께 그려보며, ‘함께여서 마냥 좋았던 순간’과 ‘함께했지만 힘들었던 순간’ ‘다시 만나면 꼭 전하고 싶은 얘기’ 등을 묻는다.
다음 장소는 ‘영결광장’(T2 야외공연장)이다.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묘비처럼 보이는 돌의자에 앉아 대형 화면에서 나오는 영상 이미지를 보면서 산책에서 발견한 감정과 사유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대형 화면에는 겨울부터 봄까지 역순으로 계절이 변하는 영상이 나온다.
서 대표는 “장례식을 경험할 때마다 ‘상주나 조문객이 충분히 애도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은 ‘그런 마음으로 보내지 못했다’고 느낄 것이다. 나는 그랬다. 그 작은 질문 하나로 시작해 이렇게 장례의 본질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마음으로 충분히 애도하고 추모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껴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했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예매만으로 이미 매진됐다. 아쉬워하는 이들을 위해 공연 영상을 추후 후즈살롱 페이스북 페이지 등에 올릴 예정이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행화탕 앞에 선 서상혁 대표. 축제행성 제공
서 대표는 ‘행화탕 장례날’ ‘행화장례 삼일장’ 등 한국의 통과의례 중 하나인 ‘장례’를 동시대 감각의 공연과 축제로 재해석해왔다. 그는 2016년 초 서울 마포구 아현동 재개발 예정지에 폐업한 채 있던 행화탕이라는 목욕탕을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되살려 5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행화는 살구꽃이다. 이 일대에 살구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행화탕 원형을 거의 그대로 남긴 채 ‘예술로 목욕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카페와 함께 공연·전시·영상·축제·교육 등의 문화예술 활동을 예술가와 지역민과 함께 만들어갔다.
지난해 5월 서울 마포구 아현동 행화탕에서 행화장례 삼일장을 치르고 있다. 서정민 기자
재개발로 행화탕을 완전히 접어야 했던 지난해 5월엔 ‘행화탕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기억합니다’라는 주제로 행화장례 삼일장을 치렀다. 행화탕은 58년생 개띠로 인격화됐다. 장례식엔 약 1000명이 다녀갔다. 행화장례 삼일장에서 기억나는 건 무엇일까? “모든 순간순간이 기억이 난다. 삼일장 내내 하루 12시간씩 조문객을 맞이하며 거의 서 있었다. 조문객들이 앞으로 살아가며 품어볼 화두처럼 좋은 질문과 위로를 전해주셨다.”
그는 행화탕 장례 이후 3년 탈상 기획도 생각하고 있다. “행화탕과는 이별했지만, 마음으로 떠나보내지 못했기에 3년을 두고 생각하고 있다. 삼년상의 끄트머리엔 5년 동안 행화탕에서 만나고 활동하며 사유했던 생각을 하나하나 엮어서 책을 내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21~23일 열리는 관객 참여형 장례문화 공연 ‘리(Re): 장례’ 포스터. 후즈살롱 제공
서 대표는 ‘지구에 소풍하러 온 우주 보헤미안’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고 싶다 했다. 우주에서 지구로 왔다는 건 다양한 관점을 보려는 존재, 소풍을 왔다는 건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을 알지만 긍정하는 존재, 보헤미안이라는 건 자유롭게 살고 싶은 존재로 읽힌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