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비에스>(SBS) 라디오 <이재익의 시사특공대> 이재익 피디. 유튜브 갈무리
“정치권에서 항의했다고 하루아침에 피디를 자르면 이게 무슨 공정방송이냐.” “에이스급 피디도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잘리는데, 그걸 본 후배들이 이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지난 7일 <한겨레>와 통화한 <에스비에스> 내부 피디들은 ‘이재익 피디 사태’로 방송사 전체 분위기가 위축될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만들어온 한 피디는 “민주당의 항의도 문제지만, 백번 양보해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뽑아서는 안 되겠다'는 말에 민감해질 수 있다고 본다"며 "더 큰 문제는 그 항의를 받아들여 고의성 여부를 파악하지도 않고 하루아침에 피디를 자른 방송사”라고 말했다.
정치권 항의 하루 만에 PD 불러 경질은 “과잉 조치”
<시사특공대>를 진행한 이재익 라디오 피디는 지난 4일 방송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를 겨냥한 불공정한 방송을 했다는 이유로, 5일 진행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를 두고 “정치권의 방송 독립 침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현장 피디 등은 방송사의 ‘과잉 조치’에 주목한다.
이재익 피디는 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5일(토요일) 회사에 들어오라는 전화를 받았고, 4일 방송에 대한 항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회사에 도착한 그 날 하차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해온 균형 잡힌 발언들을 모아 자료로 제출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직접 소명하는 자리는 마련되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피디연합회도 7일 성명을 내어 “지극히 상식적인 방송에 <에스비에스>가 정치권의 항의에 굴복해 ‘진행자 하차’라는 극단적 조처를 내린 것은 ‘과잉 조치’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정치 편향성이 문제라면 방송통신심의위의 판단을 기다려 보는 게 순서일 것이다. 뭐가 그리 급해서 항의 전화에 단 하루 만에 이런 식으로 화답했는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에스비에스> 라디오센터는 “민주당 항의와 이재익 피디 하차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하면서 “정치권 항의는 종종 있는 일이다”고 했다. 이재익 피디도 정치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수년 전부터 <정치쇼>를 시작으로 <시사특공대>로 진행까지 맡으면서 수많은 정치인을 비판해왔다. 이재명 후보를 언급하기 며칠 전에는 다른 후보도 거론했다. 민주당은 디제이 디오시 ‘나 이런 사람이야’ 중에서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막 대하고 이 카드로 저 카드 막고”라는 가사가 이 대표를 겨냥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가 내로남불 운운하며 “이런 사람을 뽑아서는 안 되겠죠?”라고 한 말이 선거 개입이라고 본다. 이재익 피디는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다. 노래 가사는 문장을 그대로 읽은 것이다.
이재익 피디는 “이런 후보는 대통령으로 뽑아서는 안 된다고 했을 때 어떤 후보가 연상된다면 그게 진행자의 잘못인가, 아니면 후보의 잘못인가. 내로남불이란 말이 특정 후보를 떠올리게 한다고 앞으로 방송에서 말하지 말라는 거냐”고 반문했다. 또 그는 “저 부분은 카드 돌려막기밖에 할 수 없는 서민들의 절박한 상황을 얘기하는 가사다. 법인카드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의미다. 음악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구나 싶다”며 ”이 모든 게 코미디 같다”고 말했다.
문제 생기면 ‘꼬리자르기’ 행태 되풀이
내부 피디들이 이번 사태에 더 분노하는 이유는 최근 <에스비에스>가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피디를 교체하는 것으로 대응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시사교양 피디는 “<골때리는 그녀들>에서 조작 논란이 일자 피디와 작가를 교체하는 등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 방안은 꼬리 자르듯이 피디부터 자르는 것이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회사가 직원들을 뭐로 보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에스비에스>는 드라마 <조선구마사> 때도 역사왜곡 논란이 커지자 편성을 취소하면서 발을 뺐다. 이 시사교양 피디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면 경고를 하든지, 우선 대타를 투입하고 회의 안건으로 올려 노조 쪽의 의견도 들어보고 그 발언이 실수인지 의도적이었는지 알아본 뒤 결정해도 될 일이다. 판단도 하지 않고 잘라버린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방송사가 시청자에게 가한 무례한 행위이기도 하다. 수년간 만난 청취자와 작별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재익 피디는 회사로 불려간 그 날로 잘리면서, 다시 진행석에 앉을 수 없었다. 마지막 인사를 개인 블로그에 썼다. “애청자분들과 만날 수 없어 너무 섭섭하고 죄송하다.” 한국피디연합회는 “<에스비에스> 관계자들은 정치권의 압력보다 시청자들의 분노가 더 무섭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이 피디를 원상회복 시키는 것만이 <시사특공대>를 아끼는 청취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길임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물론, 회사 구성원 중에도 “뽑아서는 안 된다”는 말은 이재익 피디가 선을 넘은 것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에스비에스>는 박근혜 정권에서 세월호 사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방송사다. 시사프로그램의 독립성을 인정해주는 곳이다. 어떤 풍자, 어떤 비판도 관계없지만 진행자가 직접 특정인이 연상될 수 있는 표현을 하며 ‘뽑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의도든 실수든 잘못한 것은 맞다"고도 한다. 그렇더라도, 하루 아침에 소명할 기회도 주지 않은 건 이해되지 않는다.
정치권도 방송사에 항의하기 전에 그동안의 방송 내용을 먼저 들어라도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의적인지 아닌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박근혜 정권 등을 신랄하게 풍자했던 <에스비에스 플러스> 시사풍자프로그램 <캐리돌 뉴스>도 딱 한 번 일베에서 교묘하게 만들어놓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을 실수로 사용하면서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청와대 쪽에서 문제제기했고, <에스비에스>는 폐지를 결정했다. <캐리돌 뉴스>는 시사풍자프로그램이 거의 없던 시절 용감한 프로그램으로 찬사를 받았었다. 당시 방송사 관계자는 "관련자들이 몇회라도 보며 내용을 파악했더라면 어땠을까? 경고 정도로 끝내고,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다 조심하며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노력했을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때도 지금도 <에스비에스>는 프로그램을 보호하지 않았다.
“공정성과 객관성”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재익 피디는 지금 심경을 “블랙코미디 영화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분하기도 하지만, 다시 청취자들과 만나도 싶어요." “이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만이 아니다. 2022년에도 언론사는 정치권의 항의에 자기 식구를 자를 수 있구나, 다른 방송국 피디들도 놀라고 있다. 한 케이블티브이 예능 피디는 “이번 일을 보면서, 과연 우리 회사였다면 어땠을까 떠올려보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내린 답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다르지 않을 것 같다”며 웃었다.
<에스비에스> 노조는 민주당에 “다의적 표현이 날카롭고 따끔하게 느껴졌으면 부끄러워하고 반성부터 하는 게 정상이다. 언론사에 항의부터 하는 후진적 모습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에스비에스>를 향해서는 “항의를 받을 때마다 진행자를 교체한다면 어떤 프로그램이 존속될 수 있겠는가.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사태를 두고 방송사도 피디도 “공정성과 객관성”을 근거로 내세운다. 이재익 피디는 “공정성과 객관성은 방송인으로서 제 기준이자 지향점이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방송의 공정과 객관은 이쪽저쪽 눈치보면서 조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쪽저쪽 눈치보지 않고 비판할 건 비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믿을 뿐이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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