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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운동 꽝’ 여성들 보며 남성 지도자는 떨떠름…이런 게 재미?

등록 2022-03-11 05:59수정 2022-03-11 08:41

[기고 l 시대착오적 ‘마녀체력 농구부’]

문경은·현주엽 등 중년 남성에
권위 부여한 자리 만들어놓고
농구 못하는 여성들 계속 강조

실력·존중·진지한 승부 보여준
‘운동뚱’ ‘노는 언니’ ‘골때녀’와 대조
여성 운동예능 진정한 재미 고민을
<언니들이 뛴다-마녀체력 농구부>. 제이티비시 제공
<언니들이 뛴다-마녀체력 농구부>. 제이티비시 제공

<제이티비시>(JTBC) 프로그램 <언니들이 뛴다―마녀체력 농구부>(이하 <마녀체력 농구부>)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정형돈, 문경은, 현주엽 등 중년 남성들의 친목 대화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비추는 첫 회 오프닝부터 불안해졌다. 첫 출연자 송은이가 등장한 뒤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우리 매니저?” “<슬램덩크> 보면 여자 매니저 있잖아.” “채소연(<슬램덩크>의 농구부 매니저)치고는 좀….” 같은 말을 주고받는 남자들 틈에서 “난 농구 하러 왔는데? 농구 좋아하는데?”라는 송은이의 말은 의도적으로 묵살당했다. 떨떠름함을 감추지 않는 문경은과 현주엽, 어떻게든 토크를 이어가기 위해 하지불안증후군을 비롯한 신체적 약점을 털어놓으며 고군분투하는 송은이의 태도와는 대조되는 가운데 두번째 출연자 장도연이 나타났다. 남자들이 말했다. “또 여자가 왔네요?”

&lt;언니들이 뛴다-마녀체력 농구부&gt;. 제이티비시 제공
<언니들이 뛴다-마녀체력 농구부>. 제이티비시 제공

‘재미’를 위한 구성이었을 것이다. 체력은 바닥에, 기본적인 농구 규칙도 모르는 출연자들의 성장기를 보여주려는 제작진의 의도는 “한계와 편견을 뛰어넘는 운동 꽝 언니들의 생활체육 도전기”라는 제작발표회 때 설명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이 2022년이라는 사실이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들은 강력하고도 꾸준하게 미디어 속 여성의 소외와 이미지 왜곡을 지적해왔다. 남성 중심 예능의 범람으로 티브이(TV)에서 자리를 잃었던 송은이가 팟캐스트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을 성공시킨 뒤 활발히 활동하고 기획·제작으로 영역을 넓힐 때 열렬히 응원한 것 또한 그들이었다. 이처럼 더 많은, 더 다양한, 더 편안한 여성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요구 속에서 ‘보여지는 몸’이 아닌 ‘움직이는 몸’으로 여성 운동 예능에 멋진 신호탄을 쏘아 올린 인물은 김민경이다.

&lt;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gt;. 유튜브 채널 ‘맛있는 녀석들’ 화면 갈무리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 유튜브 채널 ‘맛있는 녀석들’ 화면 갈무리

2020년 2월 시작된 <코미디티브이>의 <맛있는 녀석들>의 스핀오프 웹 예능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이하 <운동뚱>)은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같은 해 8월에는 박세리를 주축으로 여성 운동선수들이 출연하는 <이(E)채널>의 <노는 언니>가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2021년 방송을 시작한 <에스비에스>(SBS)의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 역시 수요 예능 강자로 자리 잡았다.

&lt;노는 언니&gt;. 이채널 제공
<노는 언니>. 이채널 제공

성공 사례가 더해지면 트렌드가 된다. <마녀체력 농구부>의 등장 역시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운동 예능’에 여성들이 뛰어들고 잇따른 성공 사례가 만들어진 흐름 안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앞선 여성 운동 예능이 ‘어떻게’ 성공했느냐다. <운동뚱>은 외모 꾸밈 압력이 심한 사회에서 여성이 다이어트가 아닌 ‘위장 벌크업’을 위해 운동을 한 다음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비추는 한편, 김민경의 비범한 운동 능력으로 화제를 모았다. <노는 언니> 역시 운동을 직업으로 해온 여성들이 다양한 체형의 몸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움직이고 서로의 역량과 경력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미디어 속 여성들의 관계를 한층 확장했다. <골때녀>의 매력은 진지함에서 나오는 서사다. 선수들도, 감독도 더 잘하고 싶다, 이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가운데 긴장감과 재미가 생긴다. 지도자가 전원 남성이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축구계의 전설적 인물인 감독들이 축구 초보인 출연자들을 ‘우리 선수’로 정중하게 대하며 치열하게 지도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lt;골 때리는 그녀들&gt;. 에스비에스 제공
<골 때리는 그녀들>. 에스비에스 제공

그러나 <마녀체력 농구부> 제작진은 기존에 자신들이 만들었던 남성 운동 예능 제이티비시의 <뭉쳐야 찬다>처럼 남성들에게 권위를 부여한 자리에 여성 출연자들을 던져놓고 이들과 운동의 간극을 계속 드러냄으로써 ‘재미’를 주려 한다. 처음 코트에 모이는 날 ‘패션쇼 할 거니까 개성 있게 입고 오라’고 말해 각양각색으로 차려입은 출연자들을 보며 경악하는 문경은과 현주엽을 비추며 엇박자를 유도하고, 아무 준비도 없는 이들에게 평가전을 치르게 하는 식이다. 멋모르고 뛰다 지친 출연자들이 회사와 제작진을 원망하는 장면은 웃기기보다는 안타까울 지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성들이 뛰어놀 또 하나의 운동장으로서 <마녀체력 농구부>가 성공하길 바란다. 다행히 너무 늦지는 않은 작전타임과 선수들의 고군분투 덕분에 ‘위치스’(팀 이름)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듯하다.

최지은 작가 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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