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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학원 비리’ 뒤 아베…일본사회가 침묵한 진실

등록 2022-03-18 05:59수정 2022-03-18 11:55

[박상혁의 OTT 충전소] 일본드라마 <신문기자>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일본을 나쁜 놈처럼 취급하는 중국, 한국의 마음을 고쳐먹게 하고, 일본이 다른 나라들에게 지지 않도록 센카쿠 열도, 다케시마, 북방영토를 지켜주시고, 역사 교과서를 통해 거짓을 가르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아베 총리 힘내라! 안보법제 국회 통과 축하합니다.’ 이 말은 단체로 외치던 사람들은 놀랍게도 일본의 유치원생들이다. 아베 전 총리의 절친이 교장으로 있고 아베의 부인 아키에 씨가 명예 교장으로 있는 극우 사학재단 모리토모 유치원의 실제 모습이다.

2017년 모리토모 재단은 국가로부터 토지를 13억원에 매입한다. 인근의 비슷한 규모의 땅이 140억원에 거래된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다. 일명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 아베 총리는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며 자신이 연루되었으면 총리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친다. 총리가 이렇게 말하자 총리의 말에 맞춰서 재무성의 문서들은 조작이 되고, 결국 조작에 관여했던 재무성 직원은 자살한다. 유서가 공개되고 조작 정황이 드러났지만 관련자들은 모두 불기소처분된다. 자살했던 직원의 아내는 현재도 재무성과 총리실을 상대로 외롭게 소송 중이다.

이 사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도쿄신문> 모치즈키 기자는 이 사건을 취재한 내용을 책으로 출판했고 이 책이 영화 <신문기자>로 만들어진다. 정권의 치부를 건드리는 내용이라 배우 캐스팅이 쉽지 않았고 결국 우리나라의 심은경이 재일교포 기자 역으로 출연했고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번에는 같은 이야기가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영화 <신문기자>를 연출했던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이 이번 드라마도 연출했다. 일본 지상파에서는 절대 다룰 수 없는 소재와 웃음기 없는 진지한 연출에도 일본 넷플릭스에서 장기간 1위를 달성했다. ‘아베는 이 드라마를 봤을까?’ 같은 조롱 섞인 기사도 몇몇 있었지만, 세계 언론자유도 72위의 나라 일본은 조용하다.

처음부터 나쁜 짓을 하려고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민을 위해 혹은 나라를 위해 첫발을 내디딜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쁜 짓이 시작된다. 조직을 위해, 가족의 평안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대부분 시키니까 시키는 대로 저지른다. 그리고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용기 있는 언론과 깨어 있는 시민뿐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진실을 좇는 마쓰다 기자의 이야기와 그 신문을 배달하는 대학생 료의 이야기를 교차시킨다. “어차피 정치는 윗사람들이 하는 거잖아. 뭔가 달라져?”라고 말하는 정치에 무관심한 세대를 상징하는 료가 조금씩 신문에 관심을 기울이며 사건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비리를 고발하는 드라마이면서도 철옹성 같은 세상에 작은 구멍을 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이미 영화가 히트했고 넷플릭스라는 믿음이 있어서인지 믿고 보는 일본의 유명 배우들이 등장한다. 마쓰다 기자 역은 ‘닥터 엑스 시리즈’와 ‘리걸하이 시리즈’로 유명한 요네쿠라 료코가 맡았다. 봉준호 감독의 극찬을 받았던 아야노 고의 연기도 수준급이다.

드라마 속 국회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온 재무성 간부는 모든 질문에 “형사 기소의 우려가 있어 답변할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한다. “기억나지 않는다”로 대응하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총리의 말에 따라 문서를 조작하고 다시 여론을 조작하려는 내각조사부의 모습에 숨이 조여온다. 자신이 하는 일에 의문을 품는 직원에게 “우리는 너도 어떤 죄든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우리의 대중문화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데는 현실에 뿌리박은 내용 때문이기도 하다. 황당한 설정과 과장된 연기가 많은 일본 드라마의 인기는 어느 순간 시들해졌다. 하지만 한국 영화 <택시 운전사>를 최고로 꼽는 감독이 연출한 <신문기자>는 다양한 인물들의 치열한 현실을 정확히 파고들어 매우 ‘한국적’이다.

선거 기간 제기되었던 수많은 비리들. 이제 어떤 것이 파헤쳐지고 또 어떤 것이 묻힐까? 우리의 삶은 정치가 좌우하지만 그런데도 그 정치를 우리가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신문기자>를 보기 딱 좋은 주말이다.

씨제이이엔엠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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