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텅 비어 있다. 지구가 모래 알갱이만 하다고 가정해보자. 태양은 오렌지 크기가 되고 지구는 태양에서 6m 거리에 위치한다. (…)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첫 번째 별인 알파 센타우리에 도착하려면 부산역에서 일본 홋카이도 북쪽 끝까지 가야 한다. 부산역을 중심으로 반경 1600㎞ 이내에 오렌지 한 개랑 모래 알갱이 몇 개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김상욱의 과학공부>, 13쪽
김상욱(52)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가 우주의 광대함을 설명한 대목이다. 알기 쉬운 비유이지만 건조한 서술이다. 차갑고 텅 빈 우주의 묘사는 그다음 문장에서 갑자기 양자도약한 큐피드의 화살처럼 심장을 덥힌다.
“따라서 주변에 물질이라 부를 만한 것을 발견한다면 그 자체로 기뻐해야 한다. 생명체는 지구에서만 발견되는 아주 특별한 물질이다. 내 주위에 생명체가 있다면 이것은 놀라워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그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 나와 같은 종(種)을 만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다른 인간을 사랑해야만 하는 우주적 이유다.”
양자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의 2016년 저작인 이 책에는 ‘철학하는 과학자, 시를 품은 물리학’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한국에서 잘 알려진 과학책 저술가로 꼽히는 김상욱 교수를 2022년 3월10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이과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연구실 벽면의 화이트보드에는 과학영화에서 봄 직한 암호 같은 수학공식 풀이가 빼곡했다.
-‘철학하는 과학자, 시를 품은 물리학’이라는 책 부제에 끌렸습니다. 출판사에서 붙인 건가요?
“저는 좀 무리한 제목 같아 반대했어요. 철학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거든요. 부끄럽지만 예전에는 문학책도 효용가치를 느끼지 못해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논픽션을 좋아해서 지식·정보를 주는 책을 많이 읽었거든요. 문학작품, 특히 시집을 읽은 게 이 책을 쓸 즈음인데 철들기 시작했죠.”
인문학과 양자물리학은 얼핏 물과 기름 같다. 김 교수는 그런 통념이 잘못된 편견이라는 걸 글과 대중 강연을 통해 설파하고 증명해왔다. 그의 저작들에서 물리학은 영화와 그림, 문학과 음악, 철학과 신화, 역사와 국내외 시사 현안 같은 인문·사회적 관심사와 아무런 척력 없이 어울린다. 그에게 “우주는 시공간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연법칙이라는 대본에 따라 물질이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연극”(<떨림과 울림>, 37쪽)이다. “우리는 누가 왜 연극을 제작했는지, 왜 우주가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여기서 김 교수는 철학자 칸트를 디딤돌 삼아 자연스럽게 아인슈타인을 이끌어낸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우주에 시작점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두 정당화될 수 있어 ‘이율배반’이라고 했다. 이성으로는 답을 알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시작점에 대한 질문을 과학적 탐구 대상으로 만들었다. 상대성 이론에서 시공간은 고정된 연극무대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배우와 같다.”
-고등학생 때 양자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물리학자에게도 난해하다는 양자역학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요?
“청소년 과학교양서 중 양자역학을 다룬 책을 봤는데, 기이하고 재미있었어요. 야구 타자가 공을 치면 1루와 2루 쪽에 동시에 공이 떨어진다는 식의 비유로 설명하는 거죠. 너무 흥미로워서 이걸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
-그 시절에 내용이 이해되던가요?
“그때 그걸 이해했다기보다 그냥 흥미로웠죠. 지금 보면 참 허름하고 어이없는 책인데, 그 책을 보고 어린 나이에 인생을 결정했다는 게 신기하죠. 사람이 살다가 갑자기 뭔가에 꽂혀서 그걸 평생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잖아요.”
초미시 세계의 미립자 움직임을 정밀하게 관측하고 논리적으로 완벽한 수학으로 증명하는 양자물리학자의 대답이 뜻밖에 허술(?)하고 푸근했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물리학이 알듯 말듯 친근해지고 심지어 만만해진다. 그렇다고 쉽다는 건 아니다. 그의 글이 그렇다는 거다.
“빅뱅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공간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조차도 없었다는 말이다. 솔직히 나도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김상욱의 과학공부>)거나 “양자역학을 할머니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김상욱의 양자 공부>)이라는 문장에서 슬며시 웃음이 나오고 위안받지 않을 독자가 있을까?
대체 양자역학이 뭐길래? 과학자를 포함한 전문가들이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 뭔가를 한마디로 정의해달라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궁금했다.
-양자역학을 간명하게 설명하는 ‘나만의 문장’이 있나요?
“한마디 정의, 싫어하죠.(웃음) 가장 쉬운 대답은 ‘양자역학은 원자를 기술(記述)하는 학문’이라는 겁니다. 그게 왜 중요하냐면 세상 모든 게 원자로 이뤄졌기 때문이죠. 양자역학의 핵심 중 하나는 ‘양자중첩’입니다. 공존할 수 없는 상태나 사건이 동시에 공존하는 건데, 양자역학은 그런 걸 허용해요.”
이 대목에서 인터뷰 문답은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알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와 양자중첩의 관계, 관찰자의 측정으로 중첩 상태가 해소되는 것의 의미,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둘러싼 물리학계의 논쟁, 참/거짓 이분법과 양자컴퓨터까지 깊게 빠져들었다. 양자중첩이 과학자에게 주는 의미는 “정보를 얻기 전까지 어떤 주장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란 설명까지 들은 뒤 글쓰기로 화제를 돌렸다.
-최근 10여 년 새 우리나라에도 과학 대중서 붐이 일고, 번역서가 아닌 국내 저작도 부쩍 많아졌어요.
“21세기 들어 학계를 중심으로 ‘통섭’ ‘융합’ 같은 개념이 주목받았어요. 특히 2015년께부터 대중 과학서 출간과 판매가 기하급수로 늘었죠. 제 생각엔 알파고(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2016년 이세돌 9단에게 4승 1패로 승리했다)가 한몫했어요. 또 미세먼지, 기후변화, 팬데믹, 전기자동차 등 중요 사회 이슈가 과학기술과 관련돼 사람들이 과학에 부쩍 관심 갖게 된 것 같아요. 사회를 과학적 합리주의나 계몽주의 관점에서 인식하고 해법을 찾으려 한 거죠.”
그는 여러 저서에서 ‘교양’이란 낱말을 썼다. 현대인이 교양을 갖추려면 꼭 과학책을 읽어야 하는 걸까? 그가 생각하는 교양은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과학책 읽기는) 실용성보다는 알 만한 가치가 있는 지식을 주고 삶을 풍요롭게 하죠. 철학책은 읽으면서 과학책은 읽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교양이란 새로운 지식을 얻고 타인과 소통하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그 성찰이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과학은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 인류가 맞닥뜨린 여러 위기,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데 중요한 성찰과 행동을 가르쳐줄 수 있어요.”
김상욱 교수의 이런 믿음은 책쓰기(읽기)가 단순히 저자(독자)로서가 아니라 시민의 의무로 읽힌다.
“사람들이 정치·경제적 이슈에 자기 의견을 말하면서 왜 과학기술 분야는 잘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원자력발전을 계속할지 멈출지, 팬데믹 상황에서 정부의 마스크 착용 방침이 옳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면 배경지식을 알아야 해요.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국가와 사회와 권력을 이해하고 의견을 내는 것처럼, 교양으로서 과학은 알아야 하는 지식이에요. 현대사회에서 정치 어젠다만큼이나 과학기술의 어젠다가 중요해졌잖아요. 과학이 실제로 우리 삶을 바꾸는 게 많고요.”
김상욱 교수는 최근까지도 신문과 잡지에 수많은 글을 썼다. 공저까지 합하면 저서가 열 권이 넘는다. 방송 출연 등 대중 강연도 많다. 그런데도 ‘작가’라는 호칭을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해한다. 굳이 표현한다면 ‘지식 전달자’라고 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과학 전문가가 대중에게 과학에 대한 교양 지식을 선물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 책은 독자에게는 재미있는데 책을 쓰는 저자로서도 그런가요?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이죠?
“글쓰기… 힘들죠. 너무 힘들어서 즐겁다는 느낌은 별로 없어요. 뭔가를 써서 알려야겠는데 독자한테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무감을 갖고 글을 써요. 글을 단숨에 쓰는 달필이 아니어서 많이 고민하죠. 독자가 많이 좋아해주시니까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쉽게 풀어쓰는 비결이나 노하우가 있나요?
“여러 번 써요. 수없이 고쳐 쓰지요. 어떤 분은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다다닥 순식간에 쓰기도 한다는데 저는 그렇게 못해요. 논문 쓰는 것처럼 정교하게 계속 읽고 고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려요. 어쩌면 제가 물리학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쉽게 설명할 수 있는지도 몰라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이해하지 못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죠. 과학자는 빈틈없이 완벽하게 설명하려는 태도에 익숙한데, 일반인에게는 정확한 설명보다 적절한 비유가 더 좋아요.”
정육면체 퍼즐인 ‘루빅스 큐브’ 예화(<김상욱의 과학공부>, 194쪽)는 좋은 사례다. 시간은 왜 과거에서 미래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다. 여섯 면을 각각 하나의 색으로 맞춘 큐브를 아무렇게나 돌리면 색이 흐트러진다. 그런데 그 큐브를 다시 아무렇게나 되돌린다고 색이 맞춰질 확률은 극히 낮다. “우주는 확률이 높은 사건의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 법칙)으로 설명한다. 인간이 심리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방향성은 엔트로피가 작은 상태에서 커지는 쪽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시간의 일방향성을 큐브 돌리기로 설명하는 건 제가 창안했어요. 대개 동전이나 주사위를 예로 드는데, 강연할 때마다 사람들이 흡족해하지 않고 저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엔트로피는 어떤 예를 들면 좋을지 진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문득 루빅스 큐브가 떠올랐죠.”
김상욱 교수의 대중적 글쓰기는 부산대 재직 시절이던 2005년 지역 일간지에 ‘영화 속 과학’이란 칼럼을 연재한 것에서 시작했다. 1년가량 쓴 칼럼은 뒤에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라는 첫 저서로 출간됐는데, 지금은 절판됐다.
“그때는 글을 쓰면서 행복했어요. 글쓰기는 힘들었지만 대중매체에 글을 연재하는 게 재미있고 흥분되는 일이더라고요. 그게 인연이 돼서 영화 주간지에도 3년 가까이 칼럼을 썼어요. 지금 보면 부끄럽죠, 이런 글을 썼다니….(웃음) 그런 기간을 거치면서 글을 쓰고 다듬는 걸 배웠어요.”
당시 김상욱 교수는 몇몇 지인과 어울린 술자리에서 모멸스러운 말을 들었다. 좌중의 한 기자가 이제 막 나온 그의 칼럼을 읽고 “쓰레기 같은 글”이라고 혹평했다는 거다.
“술 좀 마셨죠, 하하. 격의 없이 한 말인데 충격이긴 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글이 안 좋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그냥 과학지식 좀 끼워넣고 영화 대충 설명하고 버무리는 식이었는데, 저 혼자만 도취하고 아무도 (글에 대한) 피드백을 주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그 말을 듣고 깨달은 거죠. 그 뒤로 연구하듯 꼼꼼하게 제 글을 분석해보니 문제가 많더라고요. 글이란 저 혼자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와의 대화임을 알게 됐죠.”
그때부터 본격화한 김상욱 교수의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는 인문·사회 분야의 방대한 독서와 사람의 마음을 붙드는 사유가 만나면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어려운 과학 개념을 설명할 때 적절한 인용과 비유는 양념이나 고명이 아니라 필수 재료가 됐다. 그는 평소 다독가로 잘 알려졌다. “어딜 가도 책이 없으면 불안한데, 문자 중독 같기도 해요. 불시에 저를 찾아오면 책 읽는 모습을 보게 될 확률이 제일 높거든요.”
김상욱 교수가 쓰는 글은 허구와 상상에 바탕을 둔 문학이나 개인적 감상을 기록한 수필이 아니라 과학지식을 설명한다. 논픽션 작가에게 요구되는 태도나 자질은 무엇일까? 그가 꼽은 것은 역시 ‘독서’였다.
“당연히 많은 책을 읽어야죠. 직접 경험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모든 걸 경험할 수 없다면, 책이 최고의 경험과 지식의 보고이죠. 스티븐 호킹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론으로 책을 쓸 수 있었지만 모든 물리학자가 그런 건 아니에요. 결국은 다른 사람들의 이론을 우리말과 나의 언어로 설명하는 건데, 거기에 맞는 장점이 있어야 하잖아요. 저 같은 사람이 하는 일은 수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그걸 서로 연결해서 뭔가 새로운 통찰력이 있는 내용을 재구성하는 거죠.”
-교수님한테 ‘내 마음속 작가’ 같은 게 있나요?
“저는 작가를 두 종류로 나눠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잘 만드는 사람과 문장이 좋은 사람. 이야기 구성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아르헨티나 작가)와 유발 하라리(이스라엘 역사학자)가 뛰어나죠. 보르헤스는 처음엔 읽기가 쉽지 않았는데 어느 시점을 딱 넘어가는 순간 빠져들었죠.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다섯 번이나 읽었는데 볼 때마다 ‘정말 이건 잘 쓴 책이다’라는 생각이 들죠. 국내 작가 중에선 백영옥 작가도 좋았어요. 문장이 좋은 작가는 단연 김소연 시인이죠. <마음 사전>(마음산책, 2008)의 문장은 바로바로 인용할 수 있어요. 밀란 쿤데라(체코 출신 작가)도 이야기보다는 문장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김상욱 교수는 <떨림과 울림>을 낸 지 햇수로 4년 만에 곧 저서 목록에 새로 한 권을 더 보탤 예정이다. 출판사에 원고를 이미 넘겼다고 했다. 그의 글쓰기 방식이라면 앞으로도 한동안 고민과 퇴고를 거듭하면서 더 단단하고 빛나게 담금질된 책이 나올 테다. 그의 새 책 출간 예고는 “언젠가 꼭 써보고 싶은 책은 어떤 것인지” 묻는 말에 답하면서 나왔다.
“지금 작업 중인 책은 물리학자의 시각으로 쿼크(원자핵을 구성하는 미립자)부터 인간까지 우주의 모든 것을 다뤘습니다. 일종의 빅 히스토리지요. 5년 전부터 구상했는데 지금 벌써 유행하네요. 이 책 다음에 또 뭔가를 쓴다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처럼, 단순히 지식 전달을 넘어서 세상을 보는 나만의 관점과 해석을 녹여 넣은 책을 쓰고 싶습니다. 모르겠어요, 그게 언제가 될지는….”
그는 <떨림과 울림>의 프롤로그에서 빛과 소리를 포함한 우주 만물의 미세한 진동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썼다.
“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 진동은 차갑지만 떨림은 설렌다. 내가 물리학을 공부하며 느꼈던 설렘이 다른 이들에게 떨림으로 전해지길 바란다. 울림은 독자의 몫이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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