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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드라이버는 도대체 왜 잘생겨 보이는 거지?

등록 2022-04-02 09:59수정 2023-09-01 09:17

[한겨레S] 김도훈의 낯선 사람
애덤 드라이버

최근 안락사 결정한 알랭 들롱
전설적 미남 배우들의 원조격
Z세대는 또다른 잘생김에 열광
미남 기준 ‘얼굴’ 아니어도 좋아
한때 ‘세계 최고의 미남’으로 불렸던 알랭 들롱이 2019년 칸영화제 명예 황금종려상 수상 뒤 기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한때 ‘세계 최고의 미남’으로 불렸던 알랭 들롱이 2019년 칸영화제 명예 황금종려상 수상 뒤 기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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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순전히 미남에 대한 이야기다.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86)이 안락사를 결정했다. 알랭 들롱의 결정은 아들 앙토니 들롱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밝히면서 전세계에 알려졌다. 그는 “아버지가 나에게 안락사를 부탁했다”며 끝까지 아버지와 동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알랭 들롱이 곧바로 죽음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아니다. 그는 2019년 뇌졸중으로 고통받았다. 안락사를 결정한 것은 그 이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알랭 들롱은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에 살고 있다. 몇해 전에는 “특정 나이, 특정 시점부터 우리는 생명유지장치 없이 조용하게 떠날 권리가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우리는 전설적인 스타의 예고된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버린 셈이다.

‘미남력’의 원년 쓴 알랭 들롱

알랭 들롱의 안락사 결정에 대한 뉴스는 프랑스나 미국보다도 오히려 한국에서 많이 쏟아졌다. 한국의 40대 이상 세대에게 알랭 들롱은 아이콘이다. 배우로서 아이콘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미남’의 아이콘이다. 내가 알랭 들롱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들은 건 심지어 알랭 들롱의 영화를 보기도 전이었다. 1980년대 알랭 들롱은 한국에서 ‘아랑 드롱’이라고 불렸다. 어머니는 잘생긴 남자 배우만 등장하면 “아랑 드롱 같네”라고 했다. 아랑 드롱이라는 이름을 하도 많이 들은 나머지 나는 그 이름이 실존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미남’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단어가 아닌가 생각했을 지경이다.

처음으로 본 알랭 들롱의 영화는 <태양은 가득히>(1960)였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추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파괴적으로 아름다웠다. 하류층 삶을 살던 주인공 리플리가 부잣집 아들을 죽이고 그의 신분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이후 맷 데이먼, 주드 로 주연의 <리플리>(1999)로 다시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리플리>는 <태양은 가득히>를 따라갈 수 없다. ‘미남력’에 있어서 그렇다. <태양은 가득히>의 주인공은 순수하게 아름다운 피조물이자 순결하게 악마적인 괴물이다. 당시 영화감독들은 그런 범죄자 역할에 미남 배우를 출연시키지 않았다. ‘범죄자형 배우’라는 카테고리는 따로 있다. 알랭 들롱이 살인마 역할을 맡자 모든 것이 달려졌다. 그의 거의 비이성적인 아름다움은 오히려 <태양은 가득히>에 기묘한 비애를 불어넣었다.

알랭 들롱은 좋은 배우였던가? 그의 영화들을 다시 보면 그가 당대의 또다른 프랑스 배우들만큼 다양한 연기를 잘 해내는 배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도 그 사실을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벼운 로맨스나 코미디보다는 범죄 영화에 끊임없이 출연했다. 장피에르 멜빌이라는 거장과 손잡고 <한밤의 암살자>(1967), <암흑가의 세 사람>(1970) 같은 ‘프렌치 누아르’ 영화들을 만들었다.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알랭 들롱은 미남이지만 어쩐지 풍기는 분위기가 천하다. 그래서 밑바닥 인생을 연기하면 매력이 산다”고 자신의 책에 쓴 적이 있다.

나는 나나미의 의견에 찬성한다. 알랭 들롱은 자신의 아름다움이 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과도한 아름다움은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 모든 빛을 흡수해버린다. 그래서 아름다운 배우의 연기는 조금 덜 아름다운 배우의 연기보다 확실히 저평가받는 경향이 있다. 알랭 들롱은 차가운 범죄 영화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누그러뜨리고 연기를 돋보이게 만들어줄 무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다. 당대의 미남 스타들은 종종 자신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작품에 출연하며 배우로 거듭나는 경우가 있다. 장동건이 연기자로 인정받기 위해 김기덕의 영화에 출연했던 시기를 떠올려보시라. 그 모든 미남 배우들의 ‘연기파’ 행보는 어느 정도는 다 알랭 들롱에게 빚을 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요즘 세대들의 미남 배우’ 애덤 드라이버가 2015년 영화 &lt;스타워즈: 깨어난 포스&gt; 기자간담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요즘 세대들의 미남 배우’ 애덤 드라이버가 2015년 영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기자간담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Z세대형 미남은 애덤 드라이버?

영화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 미남과 미녀들의 역사다(하지만 일단은 미남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자). 우리는 알랭 들롱 이후로도 수많은 알랭 들롱을 보아왔다. 1980년대에 리처드 기어와 톰 크루즈가 있었다면, 1990년대 이후로는 브래드 핏,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있다. 그들은 당대의 배우인 동시에 당대의 미남이었다. 미남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그냥 알랭 들롱이나 톰 크루즈, 브래드 핏의 젊은 날 사진을 보면 된다. 미남의 또다른 기준은 명품 향수 광고에 등장하느냐 아니냐다. 2012년 브래드 핏은 향수 ‘샤넬 No.5’의 모델이 됐다. 가장 유명한 여성 향수의 모델로 남성이 기용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 광고는 ‘당신이 이 향수를 쓴다면 브래드 핏 같은 미남의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부르짖고 있는데, 그 부르짖음에는 정말이지 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나도 ‘샤넬 No.5’를 샀다. 그걸 뿌릴 때마다 생각한다. “이건 미남의 향기라기보다는 어머니의 향기에 더 가깝군.”

지난 몇년간 내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장면 중 하나는 2021년에 나온 할리우드 배우 애덤 드라이버의 버버리 향수 광고였다. 그는 바다에서 상반신을 탈의한 채 말을 타고 있었다. 애덤 드라이버는 좋은 배우다. 하지만 그는 내가 생각하는 미남 향수 모델의 모든 것을 배반하는 얼굴을 가진 남자다. 아, 당신은 어쩌면 애덤 드라이버라는 이름을 지금 처음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할리우드의 가장 불타오르는 젊은 스타다. 드라마 <걸스>로 인지도를 쌓은 그는 새로운 <스타워즈 시퀄 3부작>에서 한 솔로의 아들이자 악역으로 등장했다. 이후 그는 마틴 스코세이지, 코언 형제, 짐 자무시 같은 거장들의 영화에 출연했다. 2020년 그는 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2021년에는 리들리 스콧의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와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모두 주연을 맡았다. 지금 전세계에서 애덤 드라이버만큼 활활 타오르는 남성 스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애덤 드라이버는 미남인가? 나의 오랜 기준에서 그는 어떻게 봐도 미남은 아니다. 나는 애덤 드라이버가 얼마나 잘생겼고 섹시한지에 대한 찬사를 소셜미디어에서 종종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아무리 그래도 미남은 아니지요”라는 댓글을 달고 싶은 누추한 욕망에 시달린다. 미남도 아닌 주제에 미남의 기준을 가르고 앉아 있는 나 자신이 더 누추하게 느껴진다는 말은 꼭 하고 넘어가야겠다. 나는 사실 이 글을 쓰기 전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애덤 드라이버는 잘생겼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애썼다. 인터넷에는 정말이지 그의 외모에 대한 많은 기사가 있다. 제목들은 대개 이렇다. ‘제트(Z)세대는 왜 애덤 드라이버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느 시점부터 애덤 드라이버는 잘생긴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나’ ‘왜 여성들은 애덤 드라이버를 사랑하는가’. 기사들을 아무리 꼼꼼히 읽어봐도 정답은 없다. 대개의 기사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애덤 드라이버는 새로운 시대의 미남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더는 영화 속에서 압도적인 미남을 볼 수 없다. 물론 우리에게는 여전히 밤새워 얼굴을 파먹고 싶은 배우들이 있다. 로버트 패틴슨이 있고 티머시 섈러메이도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알랭 들롱은 아니다. 브래드 핏도 아니다. 우리가 지난 백년간 생각해온 미남의 조건을 완전히 갖추고 있지는 않다. 어딘가 살짝 비틀리고 비어 있는 얼굴들이다. 혹시 완벽한 미남이라는 것의 고전적 의미는 사라지고 있는 걸까? 우리는 완벽하게 좌우대칭으로 꽉꽉 채운 미남의 향연을 더는 스크린으로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대신 각자의 개성을 지닌 수많은 형태의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애덤 드라이버의 얼굴은 오직 얼굴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스타가 되는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 미남에 대한 나의 낡고 고답적인 기준은 무너져야 마땅할 것이다.

영화 뒤 달라 보이는 잘생김 왜?

만약 당신이 애덤 드라이버가 남성의 외모에 유독 관대한 시대의 상징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거기에 완벽하게 반박할 답변은 갖고 있지 않다. 솔직히 그렇다. 여자들은 10㎏을 빼도 여전히 더 빼야 할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는데, 남자들은 5㎏만 빼도 거울 앞에서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가 된 것처럼 군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흥행에서 지나치게 실패한 나머지 본 사람을 찾기도 힘든 리들리 스콧의 <라스트 듀얼>을 감상하기를 권한다. 영화 속에서 여자 주인공들은 애덤 드라이버를 보자마자 그의 잘생김을 호들갑스럽게 예찬한다. 나는 그 장면에서 잠깐 실소를 터뜨렸으나 영화가 끝나는 순간 그들의 예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당신도 그럴 것이다. 그러고는 나와 똑같은 고민을 시작할 것이다. 애덤 드라이버는 도대체 왜 미남인가?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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