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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직격’ 차별금지법 현재와 내일까지 담은 탐사의 백미

등록 2022-04-09 05:59수정 2022-04-09 09:16

[황진미의 TV 새로고침] KBS1 <시사직격>

<시사직격>(한국방송1)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탐사 프로그램이다. 30년간 비슷한 형식을 유지해왔던 <추적 60분>과 <kbs스페셜>이 2019년에 폐지되면서 <시사직격>이 신설되었다. 시의성을 강화한 개편이었지만, 신설 초기 폐지 요구에 시달리기도 했다. 4회에 방송된 ‘한일관계, 인식과 이해 2부-한일 특파원의 대화’가 일본 편향이라는 논란에 휩싸인 탓이다. 그러나 석달 만인 2020년 1월에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명한 ‘겁 없는 여자들’ 편이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수상하는 등 빠르게 안착되어갔다.

지난 2년 반 동안 114편이 제작되었는데, 시의적절한 주제와 딱 떨어지는 만듦새로 호평을 받아왔다. 문제 제기와 공감이 적절히 어우러져 있고, 단순히 현상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탐사의 과정이 유려한 편집에 녹아있다. 특히 옳고 그름이 있는 사안에서 양쪽의 의견을 동일한 비중으로 다루거나 무책임하게 결론을 방기하지 않는다. 진행자 임재성 변호사의 단호하면서도 따뜻한 어조도 신뢰감에 한몫한다. 최근 회차는 프로그램의 장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백미로 손꼽을 만하다.

‘차별금지법, 15년 표류기’ 편은 차별금지법의 현주소를 조명한다. 먼저 가장 극명하게 차별의 이슈가 불붙는 장애인 이동권 집회 현장을 비추었다. 출근 시간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만원 전철에 올라탄다. 몇 명이 줄지어 전철을 타는 행위만으로도 운행이 10여 분간 지연된다. 승객들의 항의와 욕설이 빗발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잡은 비문명적인 시위”라는 발언이 장애인을 향한 혐오에 힘을 싣는다. 장애인도 이동의 권리가 있는 시민이고, 안전하게 지하철을 탈 수 있어야 하는 승객이라는 개념은 망각된다. 프로그램은 21년 전 전철 시위 영상을 삽입한다. 장애인들이 선로에 내려와 사다리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외친다. 전철역에서 단식투쟁을 하던 젊은 박경석 대표의 모습도 짧게 지나간다. 많은 설명을 곁들이지 않아도, 장애인들이 21년간 줄기차게 주장해온 이동권이 아직도 해결 되지 않았다는 문제의 본질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김예지 의원이 사과하며 무릎을 꿇는 장면은 울컥함을 자아내지만, 비장애인 남성 정치인의 혐오발언을 장애인 여성 정치인이 사과하는 아이러니가 무참하게 느껴진다. 지금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있다. 그러나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차별은 장애인만 받는 것이 아니다. 나이 차별로 프로 볼링 선수가 될 기회를 박탈당한 여성이 등장한다. ‘여자 40살, 남자 45살 이하만 가능하다’는 나이 규정이 2017년에 만들어졌다. 차별이 사라지기는커녕 새로 생긴 셈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정을 권고했지만 강제성이 없다며 볼링협회가 수용하지 않았다. 가장 흔한 차별은 성차별이다. 특히 고용에서 성차별이 심각하다. 남녀고용평등법이나 채용절차법이 있지만, 차별은 교묘하게 법을 우회한다. 대기업이 여성을 뽑지 않아도 처벌이 쉽지 않다. 트랜스젠더이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복합적인 차별을 당했지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인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인지 명확하지 않아서 구제받지 못했다.

이런 여러가지 차별을 막기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법무부에서 처음 발의된 뒤 15년이 흘렀다. 그동안 개신교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폐기되었다. 지금 국회에도 총 4건의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어 있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원하는 10만명의 국민청원도 올라가 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심사도 없이 여전히 국회 계류 중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개신교의 논리는 정당할까. 그렇지 않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합법화시킨다, 동성애가 에이즈를 확산시킨다, 동성애에 반대하는 설교를 할 경우 목사가 처벌받는다”는 개신교회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동성애는 불법이었던 적이 없으며, 에이즈 확산은 동성애와 관련이 없다. 프로그램은 내레이션과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이를 명확히 짚는다. 미국에서 동성 결혼주례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목사가 처벌받지 않았다는 판례도 확인하였다. 종교는 사적 영역이라, 차별금지법이 규율하는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인터뷰를 통해 재차 확인하였다.

본래 혐오에는 이유가 없다. 그럴듯한 이유를 대지만, 혐오를 위해 끌어온 것일 뿐이다. 이슬람 혐오가 대표적이다. 프로그램은 이슬람 사원을 짓는 문제로 유학생들과 갈등을 빚어온 대구 주민의 사례를 보여준다. 주민들은 처음엔 소음과 냄새를 문제 삼다가, 주택가에 종교시설을 짓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을 바꾸었다. 교회와의 형평을 이야기하자, 다시 “애국” 때문이라며 속내를 말한다. 혐오는 결코 “애국”이 될 수 없다. 이를 분명히 알리기 위해 법 제정과 공무원 및 정치인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모범이 될 만한 사례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어린이들을 품는 울산시교육청이 그렇다. 교육감이 직접 환대에 나섰다. 교육당국의 좌고우면하지 않는 태도에, 주민들도 절차에 불만을 품을지언정 직접적인 혐오를 드러내지 않는다. 프로그램 마지막에 담긴 평범한 할머니의 “맞춰서 서로서로 사는 거지, 일생 별거 있습니까?”라는 넉넉한 말은 날 선 차별과 혐오를 눈 녹듯 사그라뜨린다. 유력 정치인이 소수자와 일반시민을 갈라치기 하며, 혐오를 마치 보편적인 정서인 양 지지하는 시대에 자연스러운 환대의 민심을 전하는 언론의 역할은 얼마나 귀한가. 유엔 인권사무소는 수차례 대한민국 국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세계 10대 경제선진국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이 인권에서도 선진국이 되길 원한다. 이를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과 더불어, 더 이상 장애인이 전철에서 시위할 일이 없는 ‘문명국’이 되길 소망한다.

대중문화평론가 </kbs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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