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티브이플러스(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한국·일본·미국에서 4대에 걸쳐 펼쳐지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주민)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다. 애플티브이플러스 제공
1923년 일본 요코하마. 제주 출신인 고한수(이민호)는 아버지(정웅인)와 단둘이 이곳에서 살고 있다. 미국인 가정교사 노릇을 하던 한수는 그들로부터 미국에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는다. 총명하고 성실한 한수를 눈여겨본 것. 그러나 아버지가 야쿠자에게 빚을 지면서 한수가 야쿠자 밑에서 일하며 그 빚을 갚아야 할 처지에 내몰린다. 아들의 미국 유학을 포기할 수 없는 아버지가 야쿠자 두목에게 매달려 비는 순간, 대지진이 발생한다. 우여곡절 끝에 한수는 야쿠자 두목과 동행해 위험 지역을 벗어난다. 그 와중에 공포에 휩싸인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일본인을 죽이고 우물에 독을 푼다’는 유언비어에 현혹돼 조선인들을 살해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티브이플러스(TV+)가 지난 22일 공개한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7화는, 한수의 과거와 함께 간토(관동)대지진의 참상과 당시 벌어진 조선인 학살 사건 등을 다룬다. 재일조선인(자이니치)의 고통과 설움을 통해 훗날 한수가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냉혈한이 되는 이유가 드러난다. 이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동명 원작 소설에는 없는 내용으로, 제작진이 새로 창작한 것이다. 앞서 지난 5화에선 50여년 만에 고향 땅을 밟은 선자(윤여정)가 어릴 적 어머니 하숙집에서 일하던 복희(김영옥) 언니와 해후하는 장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식민지 여성들의 비극을 암시하기도 했다. 미국 대중문화 콘텐츠가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아픔을 이렇게까지 깊이 파고든 건 <파친코> 이전에는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티브이플러스(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한국·일본·미국에서 4대에 걸쳐 펼쳐지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주민)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다. 애플티브이플러스 제공
지난달 25일 1~3화를 한꺼번에 공개한 뒤 매주 금요일에 한편씩 공개해온 <파친코>는 오는 29일 마지막 8화 공개만을 남겨두고 있다. 한국·일본·미국에서 4대에 걸쳐 펼쳐지는 가족사를 다룬 드라마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인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뜻하지 않게 고향 부산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온 선자(김민하)의 신산한 삶을 씨줄로 하고, 1980년대 일본에서 성공을 위해 뛰는 손자 솔로몬(진 하)의 분투를 날줄로 삼아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주민)의 역사를 직조해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역사를 다룬 명작 <대부>를 참조했다는 제작진에게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자이니치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선 역사적 고증이 필수였다. 지난달 18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제작발표회에서 각본가이자 제작자 수 휴는 “다양한 국적으로 이뤄진 각본팀은 40명에 이르는 역사학자를 자문위원으로 모셨을 뿐 아니라 음식 연구가부터 관동대지진 전문가, 1980년대 일본 부동산법 전문 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 최대한 당대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애플티브이플러스(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한국·일본·미국에서 4대에 걸쳐 펼쳐지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주민)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다. 애플티브이플러스 제공
제작비만 1000억원이 든 <파친코>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제작·연출하고 한국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엄연히 미국 회사 애플이 만든 미국 드라마다. 연출을 맡은 코고나다(1~3화, 7화) 감독과 저스틴 전(4~6화, 8화) 감독을 비롯해, 총괄제작자인 테레사 강-로, 제작자 수 휴, 배우 진 하까지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다. 거대자본이 들어간 미국 드라마로선 매우 이례적이다. 테레사 강-로는 “4년 전 저희가 처음 <파친코>에 대해 이야기 나눴을 때, 전적으로 아시아인 출연진으로만 이뤄진 영화나 드라마는 정말 없었다”며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그땐 아직 개봉 전이었고,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은 것도 몇 년 뒤 일”이라고 했다.
애플티브이플러스(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한국·일본·미국에서 4대에 걸쳐 펼쳐지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주민)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다. 애플티브이플러스 제공
한국어·일본어·영어 세가지 언어가 수시로 등장하고 과거와 현재가 무시로 교차하지만,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이들의 감동적인 서사는 국경을 초월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드라마 공개 뒤 외신들은 “올해의 위대한 드라마가 아니라 지난 몇 년 중 최고”(캐나다 글로브 앤 메일)라거나 “쉽게 볼 수 없는 보석”(포브스), “원작과 영상의 완벽한 결합”(롤링 스톤), “아무것도 영원할 순 없지만 <파친코>만큼은 영원히 보고 싶다”(뉴욕 매거진), “<파친코>는 가족의 회복력을 비롯해 여성의 힘에 대한 유쾌한 이야기와 고통의 비참한 초상화가 균형을 이룬다”(할리우드 리포터) 등의 호평을 잇따라 내놓았다. 비평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43곳 매체 평론가들이 평가한 ‘신선지수’는 98%, 시청자들이 평가한 ‘팝콘지수’는 92%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난 일본에서만 조용한 모양새다. 애플은 일본에서도 <파친코>를 공개했으나, 별다른 홍보는 하지 않고 있다.
애플티브이플러스(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한국·일본·미국에서 4대에 걸쳐 펼쳐지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주민)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다. 애플티브이플러스 제공
이런 호평에 힘입어 8부작인 시즌1 이후 다음 시즌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와 관련해 테레사 강-로는 “알려진 대로 시즌4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지만, 아직 시기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를 향한 세계인들의 주목과 공감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