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영의트렌드와놀기
영화 <빠삐용>을 찍을 것도 아닌데, 난 정말 줄무늬 셔츠를 많이 가지고 있다. 색상과 굵기도 갖가지다. 베니스에 여행 갔을 때도 나는 곤돌라 노 젓는 아저씨가 입고 있는 빨간 색 줄무늬 니트를 어찌나 탐냈던지…. 아마도 뚫어지게 니트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그 아저씨는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줄무늬 티셔츠를 즐겨 입는 내가 이번 봄, 여름에는 줄무늬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2006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각국의 디자이너들이 줄무늬 패턴을 세련되게 연출해 선보였고, 이러한 줄무늬 열풍은 가을과 겨울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세련되면서도 활동적인 감각을 선보이는 ‘랄프 로렌’은 말할 것도 없이, ‘구찌’에서는 줄무늬 패턴의 폴로 셔츠를 섹시한 감각으로 연출했고, 니트로 유명한 ‘소니아 리키엘’에서는 줄무늬로 된 헐렁한 원피스부터 풀오버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국내에서도 ‘제이 폴락’, ‘니’같은 캐주얼 브랜드에서 남성복까지 줄무늬 셔츠를 내놓고 있으니 과연 줄무늬 패턴의 뜨거운 바람이 느껴진다.
내가 이렇게 줄무늬 패턴을 좋아하게 된 것 또한 영화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 줄무늬 셔츠는 말 그대로 낭만 그 자체였다. 남프랑스나 지중해와 요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에 많이 등장했다. 남자들은 대체로 하얀색과 푸른색 줄무늬 니트나 티셔츠에 하얀색 바지를 입었다. 조금 더 멋쟁이들은 목에 스카프를 두르거나 선글라스를 끼고 한쪽 다리를 어딘가에 올려놓는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알랭 들롱도 그 촉촉한 사슴 같은 눈빛을 하고 줄무늬 티셔츠를 입었는데 어찌나 멋있던지.
장 뤽 고다르의 영화에 등장하는 진 세이버그나 영원한 패션 아이콘인 오드리 햅번이 짧은 머리에 줄무늬 티셔츠, 발목이 보이는 칠부 바지로 연출한 깜찍한 모습에 반해서 머리까지 짧게 자른 적도 있었다. 비록 짧은 머리 스타일이 그들과 달라 눈물을 흘리며 후회도 했지만, 난 칠부 바지에 줄무늬 티셔츠를 지금까지도 즐겨 입게 됐다.
줄무늬 티셔츠하면 가브리엘 샤넬을 빼놓을 수 없는데,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획기적인 스타일을 선보이면서도 언제나 세련된 우아함을 잃지 않았던 그도 줄무늬 셔츠를 즐겨 입었던 사람이었다. 그의 옛날 사진이나 자서전을 보면 샤넬이 줄무늬 셔츠에 남성복 같은 하얀색 바지를 입고 거기에 진주 목걸이를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칫 캐주얼하게 보일 수 있는 모습을 진주 목걸이로 여성스럽게 연출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줄무늬 셔츠나 니트와 함께 스커트를 입는 것도 좋다. 단 어두운 색상 보다는 하얀색 주름치마가 어울릴 것이다. 줄무늬의 색깔에 따라 다른 색깔의 액세서리로 강조하는 것도 좋은데 예를 들어 푸른색 줄무늬일 때는 빨강색이나 노란색 스카프나 귀걸이, 혹은 팔찌로 강조점을 주는 것도 좋겠다.
서은영/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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