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같은 대장부”, “배우들의 진정한 스타”…고 강수연 눈물 속 영결식

김동호 “천상의 별로 우리들 지켜줄 것”
연상호 “고인 자체가 한국 영화”
문소리·설경구·유지태 등 영화인들 마지막 작별 인사
제니퍼 자오·차이밍량·양귀매 등 해외 영화인도

11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배우 고 강수연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다. 연합뉴스

배우 강수연씨가 영화계 동료들의 배웅 속에서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고 강수연씨의 영결식이 11일 오전 10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 영결식장에서 엄수됐다. 식장에는 ‘별보다 아름다운 별, 안녕히’라는 글귀가 적힌 근조 펼침막이 영정사진 위에 걸렸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은 “오늘 우리 영화인들은 참으로 비통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였다. 믿기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우리가 자주 다니던 만둣집에서 만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졸지에 제 곁을 떠나다니”라고 애통해했다. 김 이사장은 “2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월드스타’라는 왕관을 쓰고 멍에를 지고 당신은 참으로 힘들게 살아왔다”며 “당신은 억세고 지혜롭고 강한 분이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내색하지도 않고. 타고난 미모와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갖춘, 남자 못지않은 강한 리더십과 포용력으로 후배들을 이끌었다”고 고인을 기렸다. 이어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당신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비록 강수연씨 당신은 오늘 우리 곁을 떠났어도 지상의 별이 졌어도, 당신은 천상의 별로 우리들을 지켜줄 것”이라며 “부디 영면하시기 바란다”고 했다. 33년 전 모스크바국제영화제 때 강씨를 처음 만난 김 이사장은 평소 고인이 아버지처럼 따른 영화인이었다.

추도사를 읽는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고 강수연 영결식 중계 영상 갈무리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으로 강씨와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돈독한 사이였던 임권택 감독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강씨는 두 작품으로 베네치아국제영화제와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국내 최초로 ‘월드스타’라 불리는 배우가 됐다. 임 감독은 “수연아, 친구처럼 딸처럼 동생처럼 네가 곁에 있어 늘 든든했는데 뭐가 그리 바빠서 서둘러 갔느냐. 편히 쉬어라”고 비통해했다.

배우 설경구는 1999년작 <송어>로 고인과 처음 만났던 때를 회고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그는 “알려지지 않은 배우인 저에게 앞으로 영화를 계속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주셨다. 새까만 후배들부터 한참 위 선배들까지 다 아우를 수 있는,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거인 같은 대장부였다”고 했다. 이어 “선배님을 따라 하나부터 열까지 다 배웠다. 촬영팀 막내까지 챙기면서 보여주는 애정과 배려, 용기와 희망, 잊지 않겠다”며 “당신은 영화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 우리 배우들의 진정한 스타였다. 나의 친구, 나의 누이, 나의 사부, 영원히 잊지 않겠다.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추도사에서 배우 문소리는 내내 울먹이는 목소리로 “한국 영화에 대한 언니 마음 잊지 않을게요. 언니 얼굴, 목소리도 잊지 않을게요. 이다음에 만나면 같이 영화 해요, 언니”라고 고인을 기렸다. 사회를 맡은 배우 유지태는 “아직 전혀 실감이 안 난다. 이 모든 것이 영화 속 한 장면이었으면 좋겠다”고 애도했다.

고 강수연 영결식 사회를 맡은 배우 유지태. 고 강수연 영결식 중계 영상 갈무리

연상호 감독은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영어를 못하는 자신을 대신해 칸국제영화제 관계자 사이에서 통역을 자처한 고인과의 첫 만남을 추억했다. 그는 “강수연 선배님이 왜 무명의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을 도와줬을까 생각하면, 그것은 고인 자체가 한국 영화였기 때문이었다”며 “한국 영화가 발전하고 해외로 알려지는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긴 것이었다”고 했다. 강씨의 유작이 된 <정이>에 대해서는 “에스에프(SF) 영화라 두려움이 컸는데, 몇번의 만남 끝에 (선배님이 영화를) ‘해보자’고 했을 때 저는 뛸 듯이 기뻤다. 저에게 든든한 ‘빽’이 생긴 것 같았다”며 “선배의 마지막 영화를 함께하며, 선배의 새 영화를 선보이기 위해 끝까지 동행하겠다. 그 마지막 순간까지 선배님의 마지막 ‘빽’이 되어주겠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고인은 올해 연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정이>로 약 9년 만의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제니퍼 자오 대만영상위원회위원장, 차이밍량 감독, 배우 양귀매가 보낸 해외 영화인 추모 영상도 상영됐다. 고인의 동생 강수경씨가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해준 영화인들에게 짧게 감사의 답사를 남겼다.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4살 때부터 아역배우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50년 넘게 배우로 살았다. 2015~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이날 영결식은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됐다. 채팅창에는 고인을 기리는 추모글이 다수 올라왔다. 강씨는 지난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다 이틀 뒤인 7일 숨을 거뒀다. 고인의 유해는 경기도 용인공원 봉안당 아너스톤에 안치된다.

오승훈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