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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두번 환승은 ‘저승각’…과연 저 세상 칸이로구나

등록 2022-05-20 09:21수정 2022-05-22 00:09

[오승훈의 이 칸 저 칸] ① 출발
3년 만에 정상화된 칸국제영화제 취재기
인천국제공항에서 아부다비를 거쳐 브뤼셀로 가는 18시간 동안 창가 석도 통로석도 아닌 가운데 자리에서 연행자처럼 포위돼 있었다. 오승훈 기자
인천국제공항에서 아부다비를 거쳐 브뤼셀로 가는 18시간 동안 창가 석도 통로석도 아닌 가운데 자리에서 연행자처럼 포위돼 있었다. 오승훈 기자

‘이러다 칸 못 가는 거 아냐?’

올해로 75회째를 맞은 칸국제영화제가 드디어 프랑스 남부 도시 칸에서 3년 만에 정상적으로 열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2년 연속 취소 또는 연기됐던 세계적인 영화 축제가 올해 들어서야 제대로 개막하는 것이다. 한국 영화들이 여러 편 초청된 칸 현지에 직접 가서 취재하기로 회사 차원에서 결정했다. 그런데 칸영화제 조직위에 취재신청서를 넣은 지 1주일이 지나도록 답이 없었다. 전세계 기자들은 칸 조직위에서 요구하는 구비 서류(누구냐, 넌? 너희 회사는 뭥미? 해당 언론사 ‘대장’의 신원보증 등)를 첨부해 언론 인증을 받아야 한다. 환경부담금 25유로(약 3만3000원)는 선결제로 뜯어가고 설마 인증을 안 해주진 않겠지?

칸 출장만 이번이 아홉번째인 타사 선배는 “프랑스 특유의 느긋한 일 처리 외에 지난 2년여 동안 코로나로 인한 인원 감축으로 더 늦는 거 같다”며 “재촉 메일을 보내보라”고 권했다.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문의 메일을 보내자 득달같이 답장이 왔다. 드디어 칸으로부터 취재 승낙을 받은 것인가. “걱정하지 마. 담당 부서에 전달해줄게. 안녕.” 아놔~ 내가 받은 건 자동답장 메일이었다.

승낙이 늦어지는 것은 취재 이력이 없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자주 칸에 출장 간 기자들은 등록했던 기록이 있으니 인증 절차가 간소한 반면, 회사로서도 오랜만이고 개인적으로도 첫 칸 출장인 탓에 인증이 더딘 모양이었다.

그렇게 출장을 반쯤 포기할 무렵, 드디어 인증 메일이 도착했다. ‘칸칸한 놈들.’ 부리나케 비행기 표를 알아봤다. 엔데믹으로 항공권값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었다. 1주일 새 같은 항공편 가격이 50만원 이상 올라 있었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칸 출장을 여러 번 다녀온 타사 기자와 동행하기로 하고 같은 비행기 표를 알아봤다. 아랍 에미리트 두바이를 경유해 목적지인 프랑스 니스로 가는 비행기는 200만원이 넘었다. 아랍 에미리트 아부다비와 벨기에 브뤼셀을 거치는 노선은 185만원대였다. 비행시간은 3시간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한번 경유하는 비행기의 환승 대기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동행하는 기자는 둘을 비교했을 때 두번 환승이 경제적인 거 같다고 했다. ‘칸 신입생’은 스승의 말을 따랐다.

18일, 드디어 출발! 그런데 결과적으로 순진했다. 두번 환승은 ‘저승각’이었다. 인천-아부다비-브뤼셀로 가는 총 18시간 동안 운 없게도 통로석도 창가석도 아닌 가운데 자리에 연행자처럼 포위돼 있었다. 나가기도, 앉아 있기도 힘든 시간 동안 기내식이 차례차례 배식됐다. 자리는 좁고 운신의 폭은 없었다. 앉은 자리에서 계속 기내식을 밀어 넣으니 내장은 가스로 부글부글했다. 옆 사람이 너무 가까워 모른 척하고 배출할 수도 없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옆을 보면 좀 전까지 처묵처묵 잘도 하던 인간이 혼절각으로 자(는 척하)고 있다. ‘마스크 해서 냄새 못 맡을까? 자고 있을 때 은밀하게?’ 수십번 생각했다 포기했다. 대장아, 나대지 마. 영화를 보려고 화면을 터치하니 거의 다 본 영화들이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칸에 가나. 겨우 자리를 탈출해 화장실 앞에서 몇 시간을 서 있었다.

한국시각으로 맞춰놓은 시계는 오후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비행기 안은 한밤중이었다. 오승훈 기자
한국시각으로 맞춰놓은 시계는 오후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비행기 안은 한밤중이었다. 오승훈 기자

아부다비에서 브뤼셀로 가는 비행기는 더 가관이었다. 앞뒤로 빈자리가 널렸는데 내 자리만 양옆에 ‘수사관’이 앉았다. 참다못해 노트북을 들고 도망쳤다. 앞이나 뒤 빈자리에서 ‘오승훈의 이 칸 저 칸’ 첫 칼럼 마감이나 해야겠다 싶었다. 이 또한 순진한 생각이었다. 앞과 뒤 승객들은 팔걸이를 올린 채 자리 몇 개를 차지하고 아예 누워서 자고 있다. 빈자리는 없었다. ‘아주 꿀 빠는구나. 누군 있는 자리도 못 앉는데 누군 누워서 자는구나. 가스를 살포시 살포해주고 싶구나.’

한국시각으로 맞춰놓은 시계는 오후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비행기 안은 한밤중이었다.

집 떠난 지 어느덧 29시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브뤼셀에서 니스로 가는 비행기 안이다. 니스가 끝도 아니다. 버스 타고 30분 더 가야 칸이다. 프랑스 입국도 하지 않았는데 육신은 이미 귀국각이다. 문제는 돌아갈 때도 환승이 두 번이라는 거. 환승이 아닌 저승을 달라.

아놔~. 지금 이 순간~, 옆자리 꽃무늬 차림 백인이 살포시 살포한 가스가 향수 냄새를 뚫고 쳐들어온다. 아놔~. ‘이러려고 향수 통째로 부었니? 복도 쪽이면 화장실도 코앞이구먼.’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니스 공항. 이제 버스를 타고 30분 더 가야 칸이다. 오승훈 기자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니스 공항. 이제 버스를 타고 30분 더 가야 칸이다. 오승훈 기자

외롭다.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던 이순신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꽃무늬 남자는 코를 골며 잔다. 배출하니 살 것 같지?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이번 칸은 ‘중간계’에서 지옥을 맛보았다면, 다음 칸은 다를까. 그나저나 칸은 정말 멀고 멀었다. 과연 저 세상 칸이로구나.

니스(프랑스)/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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