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가 열리는 크로와제 거리에는 루이뷔통, 샤넬 등 럭셔리 브랜드 숍이 즐비하다. 영화제를 찾은 관광객들의 쇼핑 코스이기도 하다. 오승훈 기자
부유하고 화려한 도시에서 열리는 진보적인 영화 축제.
26시간 걸려 19일(현지시각) 오후에 영화제가 열리는 프랑스 칸에 도착했다. 프랑스 동남부 휴양도시 칸의 첫 인상은 풍요로움과 패션너블이었다. 영화제 행사장 부근 부두에는 전세계에서 온 슈퍼리치들의 초호화 요트가 끝도 없이 줄 지어 있었다. 배 들이밀 칸조차 없이 영화에서나 볼 법한 기백억원 단위의 럭셔리 대형 요트가 즐비했다. 부산 해운대에서 본 요트는 댈 것도 아니었다.
영화제 행사장 부근 부두엔 전세계에서 온 초호화 요트가 끝도 없이 정박돼 있었다. 오승훈 기자
프레스 등록을 하기 위해 센터로 향하자 입장 요원이 캐리어를 맡기고 와야 한다고 했다. 캐리어 소지자는 별도의 콘테이너 박스에 맡겨야 등록센터 입장이 가능하단다. 한국에서 싸온 비상식량으로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며 정박된 요트 앞을 지날 때, 배 위에선 초로의 백인들이 한가로이 샴페인을 마시고 있었다. 세월 좋아 보였다. 이들이 칸의 칸(Khan·왕)인 것만 같았다. 갑자기 술이 당겼다.
비지땀을 흘리며 등록을 겨우 마쳤다.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며 올해부턴 에코백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역시 가는 날이 장날. 영화제 주요 행사가 열리는 뤼미에르 극장 옆에는 카지노가 성업 중이었고 맞은 편에는 고풍스러운 건물들 아래 세련된 노천 카페와 권위적인 럭셔리 브랜드 숍들이 도열해 있었다. 루이뷔통, 샤넬, 디올 등 럭셔리 브랜드 판매가가 국내보다 30%가량 저렴하다고 한다.
칸영화제 주요 행사장인 뤼미에르 극장 건너편 고풍스런 건물에 들어선 세련된 노천 카페와 상가들은 도시의 화려한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오승훈 기자
세계의 ‘패피’(패션피플)들이 칸에 모여든 것인지,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멋쟁이들이었다. 한 노인은 흰색 반바지에 파란색 슈트와 페도라를 썼고, 한 여성은 어깨가 드러나는 황금색 원피스에 화사한 버킷햇(벙거지 모자)을 장착했다. 한 중년 남성은 루이뷔통 로고가 염색돼 있는 형광색 반바지와 반소매를 입고 있었다(그래도 핑크색 양말은 쫌~). 마스크를 쓴 사람은 없었다. 나 빼고. 서울에서 온 ‘패션 테러리스트’는 마스크로 신분 노출을 용케 피했다.
이런 궁극의 럭셔리함으로 화사한 도시, 칸에서 진보적인 영화 축제가 열린다. 역대 칸 심사위원장들은 보스니아 전쟁부터 리비아 내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세계적 참상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피력해 왔다. 지난 3월, 칸영화제는 “우크라이나 국민과 전쟁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며 “우리는 이 용납할 수 없는 상황에 반대하고, 러시아의 태도를 비난하는 사람들과 함께 연대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했다.
칸이라는 도시가 내뿜는 부유한 화사함은 칸영화제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오승훈 기자
물론 국제주의적 전통이 강한 프랑스에서 ‘세계의 비참’에 대해 연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흔하고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극우가 득세하고 있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문화적으로는 왼쪽의 입장이 주류이니 말이다. 사랑이 하나의 정치적 행위라고 할 때, 칸의 ‘폴리티컬 스탠스’(정치적 입장)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 칸이 ‘애정’하는 감독들의 리스트일 터. 75년 칸 역사에서 경쟁 부문에 가장 많이 초청된 감독이 ‘블루칼라의 시인’으로 불리는 켄 로치라는 사실은 이 영화제의 지향을 잘 보여준다. 영국 좌파 감독 켄 로치는 14번이나 경쟁 부문에 초청된 진정한 ‘칸의 남자’. 선동하지 않고 그저 인물을 관찰하는 시선으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그의 영화는, 인간의 존엄이라는 화두를 곱씹게 한다. 올해는 아쉽게도 출품작이 없다.
영국의 좌파 감독 켄 로치(가운데)는 칸이 가장 사랑한 감독이다. 그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총 14번이나 초청돼 역대 1위를 기록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칸에서 기자회견 할 때, 기자들이 켄 로치에게 질문하기에 앞서 “당신의 영화 인생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하는 것이 하나의 의례가 됐을 정도로 켄 로치에 대한 영화계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연미복을 입고 레드카펫을 밟는 칸의 럭셔리한 세리머니가 늘 불편하다고 밝힌 그는, 한번 받기도 힘들다는 황금종려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그와 더불어 지금까지 감독 알프 셰베리,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빌 아우구스트, 에밀 쿠스트리차, 이마무라 쇼헤이, 다르덴 형제가 두번의 황금종려상 수상 영예를 안았다.
궁극의 럭셔리함으로 화사한 도시, 칸에서 진보적인 영화 축제가 열린다. 오승훈 기자
감독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손에 거머쥐고 싶은 황금종려상을 디자인한 사람은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장 콕토. 그와 칸의 인연을 남달랐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콕토는 어린 시절 겨울마다 가족과 함께 칸을 찾았고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소리를 그리워한다”라는 그의 유명한 2행시 제목도 <칸>. 이 작품은 동명의 연작 단시 가운데 다섯번째 작품.
뤼미에르 극장 부근에 카지노가 성업중이다. 오승훈 기자
칸이라는 도시가 내뿜는 부유한 화사함과 칸영화제가 표방하는 진보적 스탠스는, 캐비어를 먹으며 혁명을 논했던 프랑스 지식인들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이 상업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영화제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다.
칸/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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