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환경운동가’ 조중래 명지대 교통공학과 명예교수가 22일 오후 2시 별세했다. 향년 70.
1972년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한 고인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어 강제징집을 당했다. 1977년 복학한 그는 ‘공해문제’의 심각성에 주목해 서울 화곡동 집에서 스터디모임을 시작했고 이어 79년 9월 대학 3년 후배인 조홍섭(<한겨레> 환경전문기자)·숙명여대 생물학과 재학중이던 최영남·황순원씨 등과 함께 국내 첫 환경운동조직인 ‘공해연구회’를 꾸렸다. 첫 활동으로 1979년 12월 온산공단 현장조사를 했고 81년 ‘한국의 산업화와 공해문제’ 첫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고인의 친형인 인권운동가 고 조영래(1990년 작고) 변호사도 ‘공해소송’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1981년)을 쓰고, 국내 첫 공해병 소송인 ‘상봉동 진폐증 피해자 박길래씨 사건’의 소송대리인을 맡아 그를 지지했다.
대학 졸업 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일하던 그는 1982년 미국으로 유학해 86년 교통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명지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교통연구부장, 서울메트로 이사 등을 지냈다.
고인은 배우 조현철과 래퍼 매드클라운(본명 조동림)의 부친으로 먼저 알려졌다. 조현철은 지난 6일 열린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디피>(D.P.)로 티브이(TV) 부문 남우조연상을 받고 수상 소감을 전하면서 아버지를 언급했다.
배우 조현철이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티브이 부문 남우조연상 수상 소감을 전하면서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시상식 화면 갈무리
그날 그는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조금 용기를 드리고자 잠시 시간을 할애하겠다”고 말문을 연 뒤 “아빠가 눈을 조금만 돌리면 마당 창밖으로 빨간 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음이라는 게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라고 말했다.
이어 “작년 한해 동안 내 첫 장편영화 <너와 나>를 찍으면서 나는 분명히 세월호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그 영화를 준비하는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에게 아주 중요했던 이름들, 박길래 선생님, 김용균군, 변희수 하사, 이경택군, 외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나는 이들이 분명히 죽은 뒤에도 여기 있다고 믿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니까 아빠, 무서워하지 말고 마지막 시간 아름답게 잘 보냈으면 좋겠어. 소란스러운 일들 잘 정리하고 저도 금방 가겠습니다. 평안하게 잘 자고 있으세요. 사랑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수상 소감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기며 큰 화제를 모았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4일 오전 5시30분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