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여성·남자 중 양자택일? 인터섹스 그대로도 괜찮아

등록 2022-05-27 12:05수정 2022-05-27 20:39

tvN 4부작 드라마 화제
전형적 성별이분법서 벗어난
‘인터섹스’ 성소수자 주인공
부딪히고 고민하는 ‘선택’ 그려

구별짓기 아닌 주변의 이해·포용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메시지
티브이엔 제공
티브이엔 제공

“남자든 여자든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네가 더 행복할지, 선택은 재이 네 몫이야.”

초경을 시작한 열일곱살 재이(안현호)에게, 엄마 수영(심이영)이 건넨 말이다. 재이는 여성과 남성의 생식기를 모두 갖고 태어난 인터섹스(intersex·간성). 지난 9~10일 방영된 드라마 <엑스엑스(XX)+엑스와이(XY)>(티브이엔)의 주인공이다. 재이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고민하며 성장한다. 드라마는 그 과정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이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준다.

인터섹스는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전형적인 이분법적 규범에서 벗어난 성별 특징을 지닌 사람들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매년 세계 인구 중 약 0.05~1.7%가 인터섹스로 태어난다고 추정한다. 드라마 속에서 재이는 초경과 몽정을 모두 겪는다. 대본을 쓴 홍성연 작가는 “산부인과 전문의 자문을 거쳤는데, 재이처럼 2차 성징을 모두 겪은 사례가 의학적으로 보고되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주인공의 성별 선택권을 강조하려는 설정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드라마 내 용어 XXXY는 의학용어 클라인펠터증후군과 무관하다’는 자막도 붙였다.

티브이엔 제공
티브이엔 제공

티브이 드라마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를 등장시키는 등 ‘퀴어(성소수자) 코드’를 활용한 지는 꽤 됐다. 하지만 대부분 조연이나 단역에 머물며 주변적으로 다뤄졌다.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 포용성이 낮아서, 시청자 항의에 부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엑스엑스…>는 씨제이이엔엠(CJ ENM)이 신인 작가를 지원하는 ‘오펜’ 공모전 당선작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단막극·쇼트폼 프로젝트가 기존 드라마보다 실험성이 허용되는 범위가 넓은 편임을 고려하더라도, 드라마와 성적 다양성의 관계 측면에서는 진일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성소수자 가운데서도 잘 다루지 않았던 인터섹스를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엑스엑스…>는 또한 성적 다양성을 ‘보여주기식’ 소재로만 소비하는 대신, 인터섹스 인권을 존중하는 설정을 품었다. 재이의 부모가 자녀에게 성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대표적이다. 이러한 설정은 많은 인터섹스 신생아가 의사 판단과 부모 동의만으로 성별을 정하는 외과 수술을 받는 현실과 다르다.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와 아동인권위원회는 2015년부터 스위스 등 여러 나라에 ‘인터섹스 어린이들에게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수술을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루인 퀴어락(한국퀴어아카이브) 활동가는 “해외에서는 어린 시절 충분한 정보 없이 평생의 건강을 좌우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던 인터섹스 당사자들이 1990년대부터 강제 수술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드라마가 ‘수술 없이 자라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담은 부분이 현실에도 적용 가능한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많은 의사·부모가 인터섹스 어린이에게 수술을 강제하는 이유는, ‘정상적인’ 여성 또는 남성 중 어느 한 집단에 속하지 않았을 때의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재이도 인터섹스를 혐오하는 시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아빠 연오(윤서현)는 “재이 너를 너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이 분명 많이 있을 거”라며, “너를 이해하는 사람들하고만 살아가도 세상은 충분히 잘 돌아간다”고 말한다. 홍 작가는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드라마는 부모 세대와 갈등하는 얘기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자녀의 성소수자성을) 이해하는 부모들도 있다.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소윤 피디.
이소윤 피디.

드라마는 재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재이가 친구 세라(김지인)와 우람(최우성)과 함께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을 탐구하며 성장하는 풋풋하고 청량한 학원물의 형식을 취했다. 연출을 맡은 이소윤 피디는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인터섹스를 내 주변의 친구, 보통의 친구로 느껴지게 만드는 시선이 좋았다. 대본의 톤앤매너가 하이틴 드라마스러운 점을 살려서, 가능한 한 밝게 찍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시청자에게 낯선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만큼, 작가·피디를 포함한 제작진 다수는 “드라마가 지나치게 무거워지지 않았으면” 하는 데 합의했다고 했다. “진입 장벽을 가능한 한 낮추자”는 취지에서다. 티빙 드라마톡에서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 도전적이네”, “한국에서 이런 드라마를 볼 수 있다니” 같은 놀라움을 드러냈지만, 큰 거부감 없이 드라마를 즐겼다. 한 시청자는 “성별이분법에서 좀 더 자유로운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인터섹스 주인공의 고민은 성적 호기심이 넘치는 또래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드라마는 십대들이 ‘나는 무엇을, 누구를 좋아하는가’, ‘내 몸은 어디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는 성소수자 청소년에게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이야기다. 출연 배우들의 과장 없는 연기와 ‘케미’(조화가 맞음)가 시청자의 몰입을 돕는다. 인터섹스 재이 역은 캐스팅 오디션 때 남성과 여성 배우 모두 후보에 올랐는데, 최종적으로 여성 배우가 뽑혔다. 이 피디는 “주인공 연기는 성별 고정관념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집중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다양성에는 수치심이 없다”(No Shame in Diversity). 2019년 국제앰네스티가 아이슬란드 인터섹스 인권과 관련해 내놓은 보고서 제목이다. ‘인터섹스 아이슬란드’ 단체 창립자 키티는 보고서에서 “변이적 성징들이 다른 것처럼 평범하게 여겨지길 바란다. 다양성이 존재하며, 다양성이 좋고 괜찮다는 이해와 포용을 보고 싶다”고 말한다. 인터섹스를 한살이라도 어렸을 때 ‘정상’으로 바로잡아야 하는 ‘비정상’ 상태로 여기지 않는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엑스엑스…>는 인터섹스를 정상과 구별짓기 하는 대신, 다양한 성별 가운데 하나로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홍성연 작가.
홍성연 작가.

아쉬운 점도 있다. 인터섹스의 뜻을 ‘남성과 여성 모두 공존하는 상태’에만 가둘 우려다. 루인 퀴어락 활동가는 “인터섹스 인권 활동가들이 예전에 인터섹스를 지칭하는 데 가장 많이 쓰인 ‘헤르마프로디테’(hermaphrodite·양성구유)라는 말을 인터섹스로 바꾸려고 노력해왔다. 신화에나 등장하는 양성구유와 달리 실제 인터섹스는 남성과 여성 생식기관의 ‘일부’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남성과 여성, 그리고 둘 다를 가진 인터섹스라는 건 상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인터섹스를 ‘남녀 한 몸’이라는 고정관념에 가두지는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더 글로리’ 문동은 엄마 배우 박지아, 뇌경색 투병 중 별세 1.

‘더 글로리’ 문동은 엄마 배우 박지아, 뇌경색 투병 중 별세

뉴진스 팬들 “민희진 해임으로 수백억 피해 예상…배임 고발할 수도” 2.

뉴진스 팬들 “민희진 해임으로 수백억 피해 예상…배임 고발할 수도”

달라진 보컬조차도, 린킨 파크는 여전히 ‘린킨 파크’였다 3.

달라진 보컬조차도, 린킨 파크는 여전히 ‘린킨 파크’였다

민희진 “소송 비용 23억원 집 팔아 충당 예정…남편·자식 없어 감사” 4.

민희진 “소송 비용 23억원 집 팔아 충당 예정…남편·자식 없어 감사”

800년전 이집트 책에 신라가…미 서부는 지금 ‘전시의 바다’ 5.

800년전 이집트 책에 신라가…미 서부는 지금 ‘전시의 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