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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닝 업> 한탕 노리는 여성노동자, 발칙하지만 신선하네

등록 2022-06-11 07:00수정 2022-06-11 11:11

[황진미의 TV 새로침] JTBC <클리닝 업>
제이티비시 제공
제이티비시 제공

<클리닝 업>(제이티비시)은 동명의 영국 드라마 리메이크작으로, 증권회사 청소노동자들이 불법으로 취득한 정보를 이용해 주식으로 한탕 해먹으려는 고군분투를 담는다. 주인공 ‘어용미’(염정아)는 청소노동 등 ‘스리 잡’을 뛰며 두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동료 ‘안인경’(전소민)은 카페트럭을 사기 위해 월급을 모은다. ‘맹수자’(김재화)는 동료들을 감시해 관리자에게 보고하는 닳고 닳은 노동자다. 그는 결혼생활 탈출을 꿈꾸며 1억원을 모으고 있다. 이런 팍팍한 현실을 담는 경우 , 분위기가 너무 우울해질 수 있다 . 가령 <구필수는 없다>는 짠 내 나는 현실 묘사가 갑갑해, 시청을 이어가기 힘들다. 그러나 <클리닝 업 >은 짜증이 아닌 서스펜스를 안긴다 . 케이퍼 무비 장르를 차용해 연출과 카메라 워크에 공을 들인 덕분이다 . 염정아를 비롯한 배우들의 톤 조절도 한 몫 한다.

드라마가 청소노동자를 지능범죄의 주체로 그린 것은 놀랍다. 일찍이 영화 <7급 공무원>에 나오듯, 요구르트 배달원은 어디든 침투가 가능하다. 청소노동자도 어디든 존재한다. 심지어 여성 미화원은 남자 화장실에도 무람없이 드나든다. 미화원 복장은 투명인간의 망토처럼, 있어도 보이지 않거나 없는 존재로 만든다. 아무것도 모르거나 아무것도 아닌 자. 즉 ‘비체’로 취급되는 틈새를 어용미가 파고든다. 어용미의 범죄는 이들에게도 눈과 귀가 있고, 머리가 있으며, 조직을 이룰 수도 있음을 증명하는 행위다. 드라마는 그림자노동자의 ‘비체성’에 주목하고, 이를 ‘청소노동자로 변장한 스파이’ 따위로 써먹는 게 아니라, 청소노동자가 각성하여 지능범죄자가 된다는 설정으로 활용하는 전복성을 보인다.

드라마는 딜레마를 던진다. 요컨대 어용미의 범죄를 응원할 수 있는가. <도둑들> 같은 케이퍼 무비를 볼 때, 관객은 도덕의 딜레마를 겪지 않는다. 이들은 처음부터 도둑들이고, 주인공이나 관객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또한 영화가 현실의 맥락을 지운 채 오직 장르의 문법을 따르기 때문에, 도덕의 문제가 들어설 틈이 없다. 하지만 어용미의 경우는 다르다. 그가 처한 현실의 맥락을 시청자가 안다. 어용미는 ‘스리 잡’을 뛰는 싱글맘이라는 짠한 면이 있지만, 도박벽과 도박빚이 있다. 원작의 도박 설정이 한국판으로 개작될 때, 주인공에 대한 호감을 높이기 위해 혹여 없어지진 않을까 우려했지만, 그대로 살렸다. 도박벽은 어용미가 ‘작전주’에 망설임 없이 빠져든다는 전개에 개연성을 부여하기에 필요한 설정이다. 그렇다면 도박을 하는 청소노동자가 불법행위로 거액을 챙기는 일에 시청자가 아무 거부감 없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가 , 하는 문제가 남는다 .

시청자가 가장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인물은 안인경이다. 그는 착실하게 돈을 모으려 하고, 법을 어기는 일에 두려움과 죄책감을 느낀다. 드라마는 그를 찾하지만 다소 맹한 성격으로 그린다. “넥타이씨들은 아무런 가책도 없이, 걸레 한번 손에 쥐지 않고, 큰돈을 쉽게 버는데”라는 어용미의 주장에 안인경은 반박하지 못한다. 사실 노동소득이 자본소득을 따라잡지 못하는 자본주의 현실에서 어용미의 주장을 반박하기는 불가능하다. 안인경은 지금껏 ‘착한 노동자’의 도덕관념을 지닌 채 살다가, 드라마가 품은 ‘도덕을 뛰어넘는 노동자상’에 놀라워하고 차츰 마음을 여는 시청자를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착하지 않은 노동자’에 대한 묘사를 곳곳에 심는다. 어용미는 야박한 오빠의 외제차를 파손해 분풀이를 한다. 딸의 가난을 모욕한 가게 주인에게 굳이 행패를 부리며 항의한다. 실수한 동료에게 스타킹을 사 오라는 임원에게 미화원의 업무가 아니라고 대신 딱 잘라 말한다. 맹수자도 만만치 않다. 그는 알코올 의존성이 있고, 자기 이익을 위해 친화력과 눈치를 최대로 활용한다. 이런 인물은 보통 착한 주인공을 괴롭히는 반동인물로 그려지기 십상이지만, 드라마는 그가 어용미의 행각을 눈치채고 도움을 주는 것으로 그린다.

드라마가 ‘착한 노동자’상에서 벗어나, ‘법과 도덕을 뛰어넘는 노동자’를 그린 것은 매우 신선하다. 한국 드라마에서 법과 도덕을 뛰어넘는 주인공이 승리하는 서사가 나온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가령 20세기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법을 뛰어넘어 권력을 향한 욕망을 추구하던 태수는 마지막에 법과 도덕을 대변하는 우석의 사형 구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드라마의 마지막은 평범한 사람의 윤리와 준법을 설파하는 우석의 연설로 뒤덮인다. 21세기 들어서야 주인공이 법과 도덕을 뛰어넘어 의지와 욕망을 실현하는 드라마들이 나왔다. 주로 재벌 3가 나오거나, 전문직 주인공이 등장하는 서사였다. 주인공은 대개 남성이었는데, 수년 전부터 <황금의 제국>의 이요원, <하이에나>의 김혜수 등 여성 주인공도 이런 역할을 맡는다. 시청자는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이들과 동일시하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하지만 하류층 여성이 법과 도덕을 넘어서는 서사는 매우 드물다. <나의 아저씨> 전반부에 지안이 도둑질과 도청을 하고 사내 음모에 가담하는 모습은 신선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남자 주인공의 서사와 정서 안으로 흡수되어, 가시가 빠진 채 봉합되었다. 독립영화 <파란 입이 달린 얼굴>에서 ‘도덕을 버린 하류층 여성 노동자의 극한의 생존기’가 괴팍한 형태로 제시되었으나 수습에 실패하여 유의미한 메시지를 남기지 못했다. 그에 비해 <클리닝 업>에선 윤리의 강박을 버린 여성 노동자가 자본주의의 허점을 파고들어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고 , 노동자들끼리 연대한다 . 심지어 원작에서는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나아가니 , 한국판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가 만땅이다 .제목 처럼 싹 쓸어버리는 사이다 서사가 펼쳐지길 바란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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