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와 <나의 해방일지>는 닮은 점이 많다. 둘은 같은 날(4월 9일) 방영을 시작했고 방송국에서 생방송이 나간 후 바로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는 점도 같다. <나의 해방일지>가 얼마 전 먼저 종영하면서 커플 방영은 끝났지만. 극본을 쓴 노희경, 박해영 둘 다 열성팬을 거느린 개성파 작가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누구 하나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고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넝쿨처럼 엮어내는 형식도 닮았다. 오늘 칼럼에서는 또 하나의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우리들의 블루스>와 <나의 해방일지> 모두 도드라지는 음악이 있다.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너바나의 2집 앨범 <네버마인드>가 영화 <기생충>의 수석마냥 떡하니 등장한다. 이 앨범은 조태훈(이기우)이라는 캐릭터의 영혼 안식처인 셈인데 염기정(이엘)과 로맨스를 맺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앨범 재킷도 몇 번이나 등장하고, 두 인물이 음악을 들은 감상을 나누는 장면도 나온다. 너바나라는 밴드가 청춘의 우울과 분노를 대변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드라마와 몹시 잘 어울리는 선택이다. 너바나에 대해서는 필자가 다른 칼럼에서 다룬 적 있으니 (아재음악열전 : ‘아재들의 음울한 신, 너바나’) 이쯤하고 <우리들의 블루스>의 음악으로 넘어가보자.
<우리들의 블루스> 주제가는 최성수의 노래 ‘위스키 온 더 록’이다. 이 노래는 ‘동행’, ‘해후’, ‘풀잎사랑’. ‘남남’ 등의 히트곡들과 달리 발표 후 여태껏 별 인기를 얻지 못하다가 <우리들의 블루스>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 노래가 처음 나온 건 20년 전인 2002년. 앨범 <뉴 앤드 베스트>의 타이틀곡이었는데, 필자가 연출했던 프로그램에 최성수가 출연해 라이브로 열창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당시 아직 20대였던 필자는 이 노래에 담긴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 노래가 <우리들의 블루스>의 주제가가 된 이유와 같다. 이 노래는 철저하게 중년의 감성에 호소하는 노래니까. 등장인물 대부분이 40대 후반으로 설정된 <우리들의 블루스>와 딱이다.
무척이나 공들여 만든 노래여서 지금 들어봐도 20년 전 노래 같지 않다. 악기 편성도 연주도 세련되었다. 게다가 특정 장르에 쉽게 넣기 어려울 만큼 독창적이다. 일반 가요도 아니고 트로트도 아니고 록음악도 아니다. 재킷도 꼭 감상해주기를 바란다. 가요계에서 느끼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가 느와르 영화 주인공처럼 분장하고 처연하게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데, 이렇게 물어보는 것 같다.
“내 노래와 내 눈빛 중에 어느 쪽이 더 느끼하니? 말해봐….”
당시 40대에 막 접어든 최성수가 직접 작사 작곡한 이 노래의 내용은 이렇다.
‘나는 중년 남자다. 오늘이 생일인데 하필 비가 내리네. 누군가와 함께 생일을 축하하는 대신 혼자 찾은 곳은 카페. 위스키 한 잔을 비우자 종업원이 새로 술잔을 건넨다. … 그래.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나쁜 것만은 아니군.’
중간 가사는 왜 다 줄여놨냐고? 차마 옮겨 적기가…. 그 부분은 지금 검색하면 심의를 위해 수정됐다. ‘…내 맘 나도 모르게 차가운 얼음으로 식혀야 했다’고. 상당히 건전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다시 보니 말줄임표가 또 필요하다.
최성수는 원래 가사에 미련이 많이 남은 듯하다. 음원은 비교적 건전하게 가사를 바꾸어 녹음했지만 무대에서는 원래 가사 그대로 부른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끈적이는 창법이 라이브에서는 더 끈끈해지는데 감당되시는 분들은 찾아들어보시길.
노래나 영화 혹은 드라마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줄 리 만무하다. 그래도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게 어딘가. <우리들의 블루스>와 <나의 해방일지> 모두 위안을 받았다는 감상평이 많다. 등장인물들 중 누군가가 꼭 나 같아서 감정이입이 되었다는 얘기들도 많이 하던데, 등장인물 중 누구와도 공통점이나 감정이입이 없었던 필자조차도 묘한 위안을 받았다. 이 감정의 정체가 뭘까 헤아려봤더니 감사함이었다. 그때 내 곁에 있어준, 그리고 지금 함께 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 아직 안 보신 독자님들이 있다면 추천드린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