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궁극적 설계자는 누구인가?”
정진아 건국대 대학원 통일인문학과 교수의 신간 <한국 경제의 설계자들>(역사비평사 펴냄)이 던지는 질문이다. 부제인 ‘국가주도 산업화 정책과 경제개발계획의 탄생’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1962년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뿌리를 보여준다.
사실 ‘경제계획이 박정희 정권의 독창적인 창작물이 아니며 이미 이승만 정부 때 시도되었다’는 것은 이제 상식처럼 알려져 있다. 정 교수의 이번 책도 “경제계획은 1949년, 1952년, 1953년, 1954년, 1955년, 1956년, 1960년에 기획처 등의 관료들에 의해 끊임없이 작성되었다”며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책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더 멀리 더 깊게’ 경제계획의 근원을 찾아 보여준다. ‘더 멀리’와 관련해 정 교수는 ‘1920년대 수정자본주의 이념에 기반한 물산장려운동 등 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 ‘1930년대 이후 일제의 통제경제 정책 경험’, ‘1941년께 좌우 연대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에 토지·대생산기관의 국유화 등을 명시한 점’ 등을 자본주의 계획경제의 ‘역사적 근원’으로 설명한다.
‘더 깊이’의 경우, 저자는 경제 정책의 수행 주체로서 경제부처 장관뿐 아니라 처·국장 등 경제관료들까지 살펴본다. 특히 1948년 초대 내각에서 활동한 조봉암 농림부장관, 강진국 농지국장, 그리고 이순탁 기획처장 등에 주목한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온건 사회주의나 좌우합작파였으며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계획경제론자들이었다. 농림부에서 활동한 세 사람은 농민 중심의 농지개혁법안의 틀을 마련하고자 했고, 이순탁 기획처장은 농지의 국가관리를 비롯한 ‘자본주의 계획경제 체제’를 구상했다.
그렇다면 우파 이승만 정권에서 어떻게 이들 계획경제론자들이 활동할 수 있었을까? 지난 3일 건국대 연구실에서 만난 정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이 정치적 라이벌인 한민당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당시 강력하게 흐르던 ‘민의 사회개혁 욕구’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민이야말로 어쩌면 최종적인 경제 설계자였죠.”
이런 문제의식은 1987년 6월항쟁과 7~8월 노동자대투쟁을 보면서 싹이 텄다. 당시 정 교수는 분출하는 민중 투쟁과 그 결과로서 헌법에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새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이후 정 교수는 민중의 열망과 경제 정책의 변화에 대해 학문적인 접근을 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세대 사학과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가 박사논문의 연구방법론으로 경제사상사적 방법을 택한 것도 “사상은 지도자 개인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 민중의 총의에 기반한 것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정책을 단순히 정책 결정권자의 결단이나 정책 담당자들의 실무적 행위로만 이해하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책을 내고 요즘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움직임과 파업 업무방해죄 합헌 결정 등과 관련된 우리 사회 대응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단다. “이런 구체적 사안들 하나하나에 대한 대응과 결론이 결국 우리 경제를 설계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진아 교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