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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500년 전 한강뷰 ‘타임캡슐’ 열렸다…환수 문화재 즐기는 법

등록 2022-07-17 09:44수정 2022-07-18 16:57

[한겨레S] 신지은의 옛날 문화재를 보러갔다
국립고궁박물관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국외 환수한 문화재 40여점 전시
‘독서휴가’ 산수화, 조선왕조실록 등
환수 과정 담은 인터랙티브 영상도
<독서당계회도>의 그림 부분, 조선, 1531년(중종 26), 2022년 미국 경매를 통해 환수.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독서당계회도>의 그림 부분, 조선, 1531년(중종 26), 2022년 미국 경매를 통해 환수.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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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 속 같던 출근길이 한결 한산해진 것을 보니 휴가철에 접어든 모양이다. 사람들이 몇해 만에 국외로 나갈 계획을 하며 설렐 때, 어떤 존재들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9월25일)은 나라 밖에서 환수한 우리 문화재 40여점을 망라한 전시이다. 국보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보물로 지정된 어보와 국새 등 쟁쟁한 국보와 보물들이 저마다의 사연과 함께 관람객을 맞이한다.

대개 환수 문화재라는 말에서 연상하는 것은 우리 정부가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나서는 방식의 환수이다. 국보인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은 정부가 민간과 힘을 합쳐 일본에서 환수한 것이다. 한국전쟁 때 미국으로 새어 나간 국새들은 미국과 공조해 찾아낸 뒤, 양국 정상회담을 거쳐 돌아와 보물이 되었다. 그러나 각각의 유물들이 어쩌다 외국으로 나가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돌아왔는지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구입과 기증 등 생각보다 다양한 방식이 있음을 알게 된다.

&lt;독서당계회도&gt;, 조선, 1531년(중종 26), 2022년 미국 경매를 통해 환수.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독서당계회도>, 조선, 1531년(중종 26), 2022년 미국 경매를 통해 환수.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왕의 명령 “일하지 말라, 책만 보라”

올해 미국 경매로 사들인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에는 조선시대의 재미난 특별휴가 제도가 담겨 있다. 사가독서(賜暇讀書), 일하지 말고 독서만 하라고 주는 휴가이다. 중종은 연산군이 폐지한 사가독서를 되살리고, 쉬는 동안 독서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독서당(讀書堂)이라는 누각까지 지어준다. 그것도 무려 한강 뷰로. 오늘날 서울 한남동에서 서울숲으로 이어지는 도로 이름인 독서당로가 바로 이 독서당에서 온 것이다.

왕이 능력이 출중한 젊은 문신만 골라서 주던 혜택이니, 그 시대에 사가독서를 했다는 건 평생 자랑거리였던 모양이다. 1531년에 역대 사가독서 선발자 열두명이 한강에 모여, 독서당을 올려다보며 뱃놀이를 즐긴다. 물안개 사이로 독서당이 살짝 지붕을 드러내고 있는 풍경은 오늘날 서울 옥수동 일대와 응봉산의 모습으로, 조선 초기 실경산수화로서 가치가 큰 작품이다.

이 전시는 유물과 사람이라는 두개의 축으로 전개된다. 소장자가 불법 반출된 문화재임을 알고 스스로 돌려준 기증 문화재들은 돌려준 이와 돌려받은 이의 마음을 번갈아 살피게 한다. 특히 이 전시에 소개된 조선시대 분청사기 묘지 한점은, 이런 큰 결정이 성사되기까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의 모습을 함께 비춘다.

빼앗긴 문화재가 돌아올 때, 이야기도 돌아오네

묘지는 혹 비석이 유실되더라도 무덤 주인을 알 수 있도록, 땅 밑에 묻어두는 물건이다. 세종의 아낌을 받던 집현전 학자 이선제(1390~1453)의 묘지는 1998년에 일본으로 불법 밀매되었다가, 2014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발견하며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전시에서는 재단 직원들이 일본의 소장자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마음을 움직인 일화를 소개한다. 이선제 아들 이형원의 이야기이다.

분청사기 상감 이선제 묘지, 조선, 1454년(단종 2), 보물, 일본에서 2017년 환수.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분청사기 상감 이선제 묘지, 조선, 1454년(단종 2), 보물, 일본에서 2017년 환수.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이형원은 성종 임금 때 조선통신사 책임자로서 일본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출발 전 임금에게 한가지 청을 올렸다. 일행 중 일본인 통역사는 부모가 모두 대마도에 있으니, 일을 마친 후 다시 조선에 오지 않고 고향에 남게끔 배려해달라는 것이었다. 실록은 임금이 그 청원을 듣고 “고향이 그립다고 하면 두고 와도 좋다”고 흔쾌히 허락했다고 기록했다. 소장자는 이 이야기에 담긴 한-일 우호의 역사에 감동하여, 이 묘지를 무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반환했다.

말이 아닌 이야기로 현실의 이해가 얽힌 복잡한 상황을 풀어낸 점에서 감탄이 나오는 대목이다. 역사로 남은 실화라도 아는 이가 있고 모르는 이가 있다. 알고 있더라도, 그것이 필요한 알맞은 순간을 포착해내는 것은 역사와 유물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소장자 처지에서도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라면, 소중한 수집품이지만 기꺼이 넘겨줄 수 있겠다는 신뢰가 생기지 않았을까. 한국으로 돌려보낸 뒤에도 전시나 연구 같은 가치 있는 일에 잘 활용되리라고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을 것이다.

생겼다 없어지는 것은 우리의 관심일 뿐, 문화재는 그대로

그렇다면 이런 성과를 거둔 이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지난 10년 동안 국외로 유출된 문화재들을 조사하고 환수하는 일을 맡아온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노력을 전시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때때로 문화재 환수에 대한 뉴스를 볼 때면 서글프고 분한 기분이 들지만, 실질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어떤 과정으로 그 일을 해내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면 눈여겨보면 좋을 부분이다.

&lt;조선왕조실록&gt; 오대산사고본, 조선, 국보, 일본에서 2006년 환수.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조선, 국보, 일본에서 2006년 환수.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2014년 미국에서 돌아온 고종대 국새들, 보물.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2014년 미국에서 돌아온 고종대 국새들, 보물.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문화재가 환수되는 과정을 알고리즘 형태로 체험하게 한 인터랙티브 영상은 환수가 이뤄지기까지 얼마나 다양한 노력과 절차가 따르는지 보여준다.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찾고, 당장 환수를 추진할 수 없는 경우에도 보살핌은 이어진다. 현지에서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게 보존 처리를 지원하고,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한국 문화재의 처우를 챙긴다.

우리가 미처 지키지 못해 나라 밖으로 나간 문화재들의 여행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슈가 끓다 식길 반복하는 동안에도,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나라 밖 문화재들의 여정을 돕는 이들이 있다. 게임 속에서 주인공을 도와 스토리 전개를 돕는 엔피시(NPC, 인간이 직접 조작하지 않는 캐릭터)들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 덕분에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계속 발견되고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마음은 슬프지만 든든하다.

국외 소재 문화재는 현실에 실재하는 물건들이라 생겼다 없어졌다 하지 않는다. 생겼다 없어지는 것은 우리의 관심이다. 그러나 유물들이 각각 지닌 의미와 가치는 사람 마음속에 있는 것이어서, 영원히 잊히고 지워질 수 있다. 그러므로 문화재가 세월을 버텨낼 힘을 보태는 것은 바로 귀히 여기고 기억하는 것이다. 이 전시는 먼 길을 돌아와 모여 앉은 문화재들의 존재감으로 말한다. 그 귀중함을 알아보고 지켜보는 시선들이 그들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길을 닦았노라고.

문화재 칼럼니스트

박물관과 미술관의 문화재 전시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우리 문화재를 사회 이슈나 일상과 연결하여 바라보며, 보도자료에는 나오지 않는 관람 포인트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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