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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ESC] ‘물리면 끝장’ 무더위 쫓는 좀비는 못 참지

등록 2022-07-30 14:31수정 2022-07-31 11:16

[특집] 납량 공포 만화

좀비 세상 속 외유내강형 영웅
더위 가져갈 ‘아이 앰 어 히어로’
가장 무서운 건 어쩌면 인간
‘리턴 서바이벌’ 등 호러도 눈길
리턴 서바이벌(왼쪽), 위킹데드.
리턴 서바이벌(왼쪽), 위킹데드.

나는 무서운 것이 싫다. 아닌가? 무섭다. 세상에 없는 ‘쫄보’이므로 무서운 일은 만나기 전에 피한다.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납량 특집으로 방송되는 <전설의 고향>은 곧잘 보았다. 그것도 포기하면 볼 것이 별로 없던 시대였다. ‘이야기’가 고팠다. 다행히도 그 시대의 어설픈 분장과 세트 때문에 현실감이 떨어져서 공포는 희석되었고 ‘이야기’는 즐길 만했다. 돈을 제법 들였을 텐데도 분장기술, 특수효과 등이 미숙해서 자세히 보면 코미디 같았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웃기려고 만든 ‘귀신의 집’과 큰 차이가 없던 시절이었다. 사람이 달고 있는 구미호의 꼬리 아홉개 같은 것들이 무섭지 않았다. ‘이야기’도 인간미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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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책임질 22권의 좀비 이야기

찾아보니, 여름에 공포물을 읽고 보면서 더위를 이기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특색이라고 한다. 공포물이 더위를 반짝 잊게 해주긴 하려나? 요즘 같은 열대야를 이기기엔 역부족이 아닐까? <전설의 고향>의 성공이 우리나라에서 납량 특집을 공포 장르에 집중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되었던 것 같다. 더위를 피하는 ‘피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찬 것을 찾아 나서는 ‘납량’으로 사람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택하는 것이 한동안 유행이었다. 하지만 10여년 전부터는 이런 유행도 시들해졌다. 이젠 사람들이 허술한 분장이나 효과에 만족하지 못하니, 투자는 많이 들어가야 하는데 취향은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들로 바뀌었다. ‘미신 또는 비과학적 생활 태도를 조장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조항 때문에 제재를 받기도 하니 납량물은 시들해졌다.
아이 앰 어 히어로
아이 앰 어 히어로

젊은 사람들이 한여름의 구미호나 저승사자를 그리워하지는 않지만, 철을 가리지 않고 잘 만든 공포물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크다. 특히 좀비물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오티티(OTT) 드라마 <킹덤>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한국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고, 그 이전에 시즌을 거듭해서 만들어진 <워킹 데드> 같은 미국 드라마도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여전히 스크린을 통해서 만나는 것이 두렵다. 그것은 <아이 앰 어 히어로>의 주인공 스즈키 히데오의 마음과 같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으로 겁이 많아서 중학생 이후로 한번도 심령사진이나 티브이(TV)의 공포 특집도 보지 않았던 내가, 자신의 코 고는 소리에 놀라 수면 부족에 빠지는 내가, 보고 말았습니다.”

진짜 같은, 무서운 영상을 보는 것은 자신이 없다. 그런데 만화라면 볼 수 있다. 아무리 정교하게 그려도, 만화로 보면 사실과 ‘이야기’를 잘 구분할 수 있어서 두려움을 뒤로하고 ‘이야기’에 빠져드는 데 문제가 없다. 찌르는 스크린의 빛에 눈이 피로하거나, 혹은 그 속의 사실적인 분장과 세트에 진저리 치는 쫄보라면 만화책 읽기를 권한다. 겁이 많은 히데오가 마주친 세상을 <아이 앰 어 히어로>에서 만나면 ‘평범한 나도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덤으로 얻게 될지도 모른다.

히데오는 데뷔한 적이 있지만, 청탁이 없어서 다른 만화가의 조수 생활을 하고 있다. 일은 많고 벌이는 적다. 성공은 멀고 주변 사람들과도 원만하게 지내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써내는 만화 시나리오에는 모두 주인공이 희미하다. 자존감이 낮고 위축된 작가의 반영이다. 이런 주인공이 좀비에 포위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대부분의 다른 이야기에서라면 초반에 좀비에게 당해서 좀비가 되었을 찌질하고 허약한 주인공이 끝까지 살아남는 이야기다. 주인공의 이름이, 그리고 책의 제목이 ‘영웅’(英雄·히데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영웅이 아닌 주인공의 생존기는 복더위 며칠을 책임져줄 수 있다. 나중에 앞에 던져둔 복선을 회수하는 데 난항을 겪지만 22권에 이르는 긴 이야기이고, 한국이나 대만 같은 아시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전세계의 상황이 긴박하게 진행된다.

좀비가 등장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어쩌면 주인공보다는 좀비라는 존재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마다 좀비가 되는 이유와 방법, 그리고 좀비가 보여주는 특성이 다르지만 좀비는 바이러스와 같은 매개체에 의해 전염이 된다. 공기나 물을 통한 전염으로 설정한 몇개의 사례를 제외하면 대부분 물리면 옮는다. 이것은 광견병 바이러스의 전파와 유사한 설정이다.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개, 여우, 너구리, 박쥐, 코요테 등에게 물리면 걸리는데, 증상이 나타나면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그런데 좀비는 외부에서 등장한 괴물이 아니고 매개체가 사람이고 되돌릴 방법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어떤 존재에 대해서 총칼을 휘둘러야 내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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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데드’ 작가의 현실 경고

‘우리’가 ‘적’이 되는 설정, 이것이 만화가들이 좀비를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게 하는 매혹적인 장치가 된다. <워킹 데드>를 그린 만화가 로버트 커크먼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좀비는 우리가 얼마나 엉망진창인지를 보여주고, 우리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주며 (…)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이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까지도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사회의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는 영화를 사랑한다. <워킹 데드>에서는 사람들이 극단적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또 그러한 상황이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탐구한다.”

워킹데드.
워킹데드.

<워킹 데드>는 경찰관 릭 그라임스의 생존기이다. 릭은 히데오보다는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범죄자와 총격전을 벌이다 총상을 입어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보니, 세상은 좀비들에게 점령당했다. 경찰관이니 완력도 좋고 무기도 잘 다룬다. 전형적인 영웅이 될 자질이 있다. 하지만 작가도 이야기했듯이 이 만화의 본령은 좀비들과 싸움이라기보다는 인간들 사이의 배신과 싸움이 더 중요한 이야기이다. 시시껄렁한 술자리 농담 중 하나로 ‘본판 거의 불변의 법칙’이라는 이야기를 가끔 하는데, 일말의 진실도 담겨 있다. 사람의 외모나 성격은 시간이 흘러도 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변하지 않는 것은 환경인지도 모른다. 변하지 않는 환경에서 사람도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으로 환경이 극단적으로 바뀌면, 감추어져 있던 문제들이 드러난다. 알고 있었던 사람들도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고, 모든 질서가 바뀐다. 실제로는 모든 것이 잘 바뀌지 않는 상황에 살지만, 이런 전복적인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본다는 의미에서 좀비 이야기는 한여름 밤의 망상을 펼치기에 좋은 재료가 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타래를 푸는 데는 그냥 좀비 아포칼립스보다는 회귀물이 제격이다. 웹툰 <리턴 서바이벌>의 주인공 요한은 3년간 좀비들과 처절한 생존의 전투를 벌인다.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살아남았는데, 결국 가장 오래된 동료에게 물려 눈을 감았다.

리턴 서바이벌.
리턴 서바이벌.

엉뚱하게 빨간 머리 요한은 다시 살아나서 좀비들의 세상이 오기 6개월 전으로 돌아갔다. 요한은 요새로 삼을 집을 사고, 연 40% 복리 이자로 대출을 최대한 받아서 준비물들을 갖춘다. 그리고 좀비들과 벌일 전쟁을 상상하면서 체력과 근력을 끌어올린다. 준비를 하고 종말을 맞으면 어떻게 달라질까?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이런 질문들과 함께 만화를 읽으면 좀 더 재미나다. 개인적으로 회귀물의 전지적 시점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좀비가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다루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준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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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

지구에 좀비가 등장할지는 모르지만 지난 3년간, 아직도 끝나지 않은 팬데믹을 겪으면서 ‘서로를 사랑하라’는 성현들의 말씀을 거스르고 ‘서로에게 거리 두면서’ 살아야 했던 우리는 지금보다 더 비관적인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간단히 기각할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19가 인간의 개발로 인해 서식지를 잃은 박쥐가 인류에게 접근해 옮긴 것이라면, 계속되는 개발의 결과가 더 큰 재앙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세계가 유례없이 더운 여름을 지나고 있는데, 이런 기후변화는 인간이 문명을 세운 이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좀비 만화들은 급격한 변화 때문에 허술한 사회 시스템이 붕괴하고 급격한 변화 속에서 숨겨진 인간성이 드러난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딸린 예언들을 겁주기로만 여겨 애써 무시할 것인가? 아니면 요새를 짓고 무기를 준비할 것인가? 지금이 멸망 6개월 전이라면, 미래가 바뀌어 좀비가 출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 놓고 있어도 좋은가?

주일우(만화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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