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싫어한다는 남성들의 수다 ‘넘버원’은 뭐다?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 웃자고 하는 말들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티브이(TV) 예능으로 만든 용감한 프로그램이 있다. <티브이엔>(tvN)에서 매주 월요일 저녁 8시40분에 방영하는 12부작 <전설이 떴다-군대스리가>다. 2002년 월드컵 국가 대표로 구성된 ‘레전드 팀’이 군부대를 돌며 군인들과 축구 시합을 한다. 진짜다! 남성들이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다.
이건 시작부터 여성 시청자를 포기하고 간다는 뜻인가? 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어디서? “하하하. 여성 시청자를 배제하고 프로그램을 만들 순 없죠. 티브이 시장의 주중 시간대는 여성들의 공간인걸요. 남녀가 함께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아이템을 생각했어요.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이지만, 2002년 월드컵 레전드 선수들이 나오니까 서사와 추억이 있어서 남녀 모두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최근 서울 상암동 씨제이이엔엠(CJ ENM) 사옥에서 만난 손창우 피디가 말했다.
<군대스리가>는 유튜브에서 저예산으로 만들어 방영한 콘텐츠를 티브이로 가져와 <티브이엔>이 규모를 키워 제작했다. 유튜브에서는 중계 형식이었다면, 티브이에서는 경기 전후 모습과 작전타임 등 생생함을 살리는 볼거리를 더했다. 워크숍, 선수 섭외 모습 등 ‘레전드 팀’의 일상도 엿볼 수 있다. 월드컵 당시 숨은 일화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덕분인지 11회가 방영된 5일 현재 시청률 2%대(닐슨코리아 집계)를 유지하면서 선방 중이다.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프로그램 성격을 고려하면 반응이 좋은 편이다. 월요일 예능프로그램 총 14개 중에서 시청률 순위 7위(최근 회차 기준)다. <무엇이든 물어보살>(케이비에스 조이, 0.9% 10위)처럼 화제성 높은 프로그램보다도 앞선다.
제작진에 따르면 주요 시청층은 남녀 40~50대로, 여성한테도 통했다. <군대스리가>는 서사가 있다는 점에서 스포츠 선수들이 출연하는 다른 예능프로그램보다 눈에 띈다. 이제는 40~50대가 된 ‘2002년 월드컵 영웅’들이 체격 좋은 20대 군인들과 몸을 부딪치며 전·후반 약 40분씩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재미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해병대 선수들이 골대를 향해 달려오면 과거보다 몸이 느려진 이운재 선수가 막아낼 수 있을까, 보는 이들의 가슴도 콩닥콩닥 뛴다. 정경호 선수는 방송에서 “2002년 월드컵 당시 젊은 형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럴 때는 시청자들도 그때로 돌아가 있다. 30분을 뛰고 힘들어하는 최진철 선수를 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함께 느낀다. 최진철 선수는 우리의 부모, 지금의 내 모습이기도 하다.
손창우 피디는 “선수들은 개인 훈련도 하고 체중 관리를 하며 프로그램에 진심으로 임한다. 은퇴 11년차인 이을용 선수는 첫 경기를 치른 뒤 쉬는 2주 동안(격주 촬영) 근력을 기르려고 계단 오르기를 무한 반복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레전드 선수들이지만 2002년 월드컵 영웅을 섭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김남일, 박지성, 황선홍, 설기현 등 현재 학교 축구팀을 맡거나 국외에 있는 등 사정이 있는 선수들은 참여하지 못했다. 이천수, 이운재, 김태영, 최진철, 송종국 등 현 출연진도 한번에 출연 결정을 하지 않았다. 손창우 피디는 “여러번 만나 설득했다. 유튜브 <군대스리가>에 출연한 분도 있지만, 이 프로그램에 처음 나온 이을용, 이운재 선수는 1~2주 고민했다”고 말했다. 올해가 월드컵 20주년이고, 2002년 선수들이 ‘원팀’으로 뛸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등 축구에 대한 진심이 마음을 움직였다. 프로그램이 초반부터 관심을 끌고 레전드 선수들의 호흡이 재미를 주면서 출연을 고려하는 선수도 있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계속되면 더 많은 영웅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커진다.
<군대스리가>는 군부대에도 일상 속 활기가 됐다. 그동안 해군 특전단, 미군 부대 등을 방문했다. 한두달 전부터 연습하는데, 1회는 해병대사령부가 전국 해병대에서 선수를 차출해 팀을 꾸릴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제작진한테는 군부대 촬영이 쉽지는 않다. 스태프 약 150명의 명단과 코로나 검사 결과를 보내야 한다. 하루 전날 촬영이 취소되기도 한다. 부대에서 선수 명단을 보내오면 “너무 아니다 싶은 선수”를 빼야 할 때도 있다. 어떤 선수? “투스타가 경기를 뛰겠다 그러면 이건 좀….” 쇼트폼 콘텐츠가 유행하면서 티브이 예능프로그램도 시즌제가 일반화됐다. 전후반 합쳐 약 80분 동안 진심을 다해 축구하는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잠깐!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를 여성들이 싫어한다는 것도 이젠 바뀌어야 하지 않나.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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