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
헌트
올여름 극장가 대작 영화 4파전
한국형 누아르 계승한 ‘헌트’ 등
동시대 작품 자기참조 성격 띠어
팬덤 바탕 세계관 구축 경향도
헌트
올여름 극장가 대작 영화 4파전
한국형 누아르 계승한 ‘헌트’ 등
동시대 작품 자기참조 성격 띠어
팬덤 바탕 세계관 구축 경향도

영화 <헌트>.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이순신 유니버스’와 익숙한 캐릭터성 이 중에서 최동훈의 <외계+인>과 김한민의 <한산>은 감독이 전작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시킨 케이스다. 여기에는 두 감독이 흥행사로서 가지고 있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외계+인>은 <전우치>(2009)를 직접적으로 인용한다. “도사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현대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펼쳐냈던 판타지물이, 마찬가지로 “도사란 무엇인가”를 읊조리는 청년을 모티프로 시간을 넘나드는 에스에프(SF) 재난물로 둔갑한 작품이 바로 <외계+인>이다. <한산>은 한국 영화 최고의 흥행 기록을 자랑하는 <명량>(2014)의 후속작이다. 김한민은 <명량> 성공 이후 다큐멘터리 <명량: 회오리 바다를 향하여>(2015)를 기획, 공동연출했다. 여기에서 감독은 <명량>에 출연한 몇몇의 배우들과 함께 이순신의 궤적을 따라 여행한다. 그리고 2022년 <한산>을 지나 2023년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를 그리는 <노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로서 김한민의 ‘이순신 유니버스’가 완결될까? 그건 또 두고 봐야 할 일이겠다. 한편, <비상선언>이 참조하는 것은 한국의 대표 배우들이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이라는 화려한 출연진으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항공 재난물이라는 한국에서는 다소 낯선 장르의 위험을 상쇄하는 완충지대로 각 배우들이 오랜 작품 활동 안에서 구축해온 익숙한 캐릭터성에 기댄다. 덕분에 송강호의 얼굴을 한 소시민적 영웅-가장, 이병헌의 얼굴을 한 혼란에 빠진 (어른의 몸을 한) 소년, 김남길의 얼굴을 한 냉철한 엘리트는 일종의 배우-장르로서 <비상선언>에서 반복된다. 임시완의 캐릭터만이 ‘똘똘한 청년’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비틀며 다른 방향으로 변주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 <헌트>.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팬덤이 쌓아 올리는 세계관 한국 상업영화가 감독, 배우, 제작사 등 다양한 방면으로 자기참조적이 되는 이유는 그만큼 한국 영화가 쌓아온 성취와 자신감 덕분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2010년대 이후 영화가 점차 보편적인 매체의 자리에서 벗어나 팬덤이 먹여 살리는 시장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경향은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이 확장되면서 완성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팬덤을 유혹하는 ‘유니버스/세계관’의 구축은 점점 더 중요해질 텐데, 과연 어떤 세계관들이 열리게 될지 궁금하다. 다만 오로지 ‘세계관’만이 남은 나태한 제작 관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건 그 세계관에 포함되지 못하는 존재들을 적극적으로 배제하면서 한국 영화 다양성을 죽이는 일이 될 테니까 말이다.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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