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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들…‘호스피스 의료’가 던지는 질문

등록 2022-08-20 10:00수정 2022-08-20 22:52

[황진미의 TV 새로고침] KBS2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
한국방송 제공
한국방송 제공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한국방송2)은 호스피스 병원을 배경으로 한 휴먼드라마다. 드라마는 봉사단체 ‘팀지니’가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에피소드를 그리며, 이를 통해 윤겨레(지창욱)가 치유되고 성장하는 과정을 담는다. 봉사반장 역할을 맡은 성동일이 안정적으로 극을 이끄는 가운데, 지창욱의 공허하고 불온한 눈빛이 시청자를 잡아끈다.

윤겨레는 온몸에 문신한 전과자다. 건달들에게 쫓기다가 팀지니의 앰뷸런스를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사회봉사명령을 수행하러 호스피스 병원에 온다.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보육원에 갔다가 소년원과 교도소를 전전하게 된 그에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에게 집착하는 여자와 죽기 위해 번개탄을 피웠다가 교도소에 갔고, 유일한 가족인 애견 ‘아들’도 안락사를 권유받은 상태다. 그는 ‘아들’과 함께 바다에 빠져 죽으려다 강태식(성동일)에게 구조된다. 그에겐 행복했던 기억이 없다. 팀지니의 사람들이 행복하게 어울리는 모습이 그에겐 너무 낯설고 어색하다. 하지만 그도 행복을 갈구한다. 단 한번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 그의 소원이다.

드라마는 죽음의 문제를 다소 낭만적으로 다루지만, 완전 판타지는 아니다. 팀지니는 네덜란드의 ‘앰뷸런스 위시 재단’을 모델로 한다. 2007년에 만들어진 이 단체는 1만4천명이 넘는 말기 환자들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한국에도 2021년에 창립된 ‘앰뷸런스 소원재단’이 있다. 현재 호스피스 병원과 이를 위한 건강보험 제도가 운영된다. 물론 병상 수가 턱없이 부족하고 서비스 질도 드라마와 차이가 있다. 사실 드라마에서 판타지는 필요하다.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고발보다 더 큰 역할을 수행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노인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생애 말기 돌봄 제도를 체계화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 호스피스 의료의 개념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키는 드라마의 의미가 각별하다.

드라마는 호스피스 병원의 돌봄과 팀지니의 활약을 보여주지만, 모든 사례가 모범적이진 않다. 첫번째 죽음은 삐걱거림이 있다. 팀지니는 할아버지가 원한 임종 장소인 할머니의 산소로 모시기 위해 차를 몬다. 차 안에서 할아버지의 심장이 정지하자, 심폐소생술을 한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한 할아버지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건 잘못이다. 할아버지의 소원을 완수하기 위함이지만, 이런 무리함은 의사와 팀지니의 불화를 일으킨다. 또한 병원 밖 임종은 물론이고, 항암치료중단이라는 호스피스 의료의 대전제를 환자의 가족들과 충분히 상의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이는 장례식장에서 유족과 팀지니의 다툼으로 이어진다. 드라마는 할아버지를 찾지 않은 유족들이 자신들의 불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오히려 큰소리를 낸다는 강반장의 대사로 상황을 갈무리 짓지만, 이런 일 처리는 옳지 않다. 호스피스 의료는 가족의 치유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팀지니의 활동을 긍정하면서도, 지나친 열정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간과하지 않는다. 수녀님들이 서연주(수영)에게 ‘무리하지 말고, 특별한 것을 해주겠다는 강박을 버리라’고 차분히 충고하는 장면은 이런 균형감을 말해준다.

반면 두번째 죽음은 모범적인 임종 사례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살던 옛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어 한다. 팀지니는 집주인을 설득해 집을 빌리고, 외국에 사는 할아버지의 딸을 부른다. 할아버지와 딸 가족과 팀지니가 모여 정성스러운 식사를 나누고, 할아버지는 잠들듯 떠난다. 전세계 보편으로 ‘좋은 죽음’(웰다잉)의 요소로 ‘집에서 가족과 함께 고통 없이 죽는 것’을 꼽는다. 할아버지의 임종 과정에서 무언 가족으로 살아가던 집주인 가족도 치유를 얻는다.

드라마는 호스피스 의료의 핵심인 통증 치료에 대해서도 다룬다. 말기암 환자의 통증을 관리하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가 필요하다.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인식 부족과 참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 탓에, 한국의 사용량은 국제기준에 비해 매우 적다. 고통 없이 평온한 죽음을 맞기 위해 적극적인 통증 관리가 필요하다.

드라마는 자살에 대해서도 중요한 언급을 한다. 윤겨레는 집주인(김신록)의 자살 시도를 목격하고 “아줌마도 살고 싶잖아”라고 말한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자살 시도자들이 누구보다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자살자들은 죽음을 ‘선택’한 게 아니라, 죽음으로 내몰린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윤겨레는 애견 ‘아들’의 입장을 빌려 안락사에 대해서도 말한다. “고통스럽지만 살고 싶을지 어떻게 알아?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을지 어떻게 알아?” 그의 말은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환자의 안락사 결정에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짚어준다.

지금 국회에선 ‘조력 존엄사’ 허용 법안을 발의 중이다. ‘조력 존엄사’는 기실 의사조력자살로, 엄밀한 의미에서 존엄사가 아닌 안락사에 속한다. 노인 자살률이 부동의 세계 1위이고, 간병 살인이 빈발하며, 특이하게도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을 ‘좋은 죽음’의 요소로 꼽는 한국에서 의사조력자살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걱정이 앞선다. 사회적 돌봄 체계의 구축 없이, ‘죽음을 선택할 자유’를 내세워 섣불리 안락사를 논하는 것은 자칫 복지와 인권에 대한 책무를 다하지 않은 국가에 주는 신자유주의적 면죄부가 될 수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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