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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현장] 웃음 1번에 500원, 안 웃으면 ‘공짜’…난 134번 빵 터졌다

등록 2022-08-26 09:00수정 2022-08-26 20:45

‘부코페-쇼그맨’ 공연 중 ‘개그페이’ 체험
IT기술로 웃음횟수 측정 관람료 정해
옆사람과 웃음격차 또 다른 재미 제공
‘쇼그맨’ 공연 모습. 부코페 제공
‘쇼그맨’ 공연 모습. 부코페 제공

지난 20일 오후 부산 대연동에 있는 부산예술회관에서 특별한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코미디언 박성호·정범균·김원효·김재욱·이종훈이 출연하는 <쇼그맨>이었는데요. 올해로 10회를 맞은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BICF, 이하 ‘부코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공연의 특별함은 공연 내용보다 관람 방식에 있었습니다. ‘부코페’가 아이티(IT) 기술을 활용해, 관객이 공연을 보며 실제로 웃은 만큼만 관람료를 내는 방식을 처음 도입해본 겁니다. 만약 공연을 보며 한 번도 웃지 않으면 관람료는 0원. 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관람료의 상한선을 정해두었습니다. ‘웃음 부자’들이 파산하면 안 되니까요. 100번, 1000번을 웃어도 관람료는 최대 2만원만 냅니다. 상한액은 ‘부코페’ 다른 공연 관람료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부코페’는 이러한 색다른 공연 관람 방식에 ‘개그페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개그페이 전용석’에 태블릿피시가 마련되어 있는 모습. 부코페 제공
‘개그페이 전용석’에 태블릿피시가 마련되어 있는 모습. 부코페 제공

이날 저는 다른 기자들과 함께 개그페이를 체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공연장에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스태프로부터 ‘개그페이 전용석 관람객 이용가이드’와 투명 마스크 1장을 받았습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쓰는 마스크는 대부분 불투명하잖아요.

하지만 ‘개그페이’를 위해서는 얼굴이 드러나야 합니다.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관객석은 ‘개그페이 전용석’과 일반석으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개그페이 전용석’에는 태블릿피시(PC)가 1대씩 거치되어 있습니다. 태블릿 화면에 ‘관람객 등록’ 버튼을 누르고, 개인정보 수집 및 초상권 사용동의서에 동의해야 합니다.

공연 시작 시간은 오후 3시로 공지됐지만, 개그페이 안내와 관객 등록 등에 시간이 걸려서 실제 시작은 10분가량 늦어졌습니다. 태블릿피시에 얼굴을 등록하고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데, 무릎 조금 위 높이에서 제 얼굴을 향하고 있는 태블릿 카메라가 은근히 신경 쓰였습니다. 가이드는 ‘뒷좌석이나 옆좌석 관객 얼굴이 함께 인식되지 않도록 유의해달라’고 했는데, 뒷좌석에 앉은 분의 얼굴이 함께 잡히는 걸 피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태블릿피시 화면에는 카메라가 비추는 제 얼굴 아래, 저의 웃음 횟수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어색한 헛웃음이 나왔는데, 바로 그때, 저의 웃음 횟수가 ‘0’에서 ‘1’로 올라갔습니다. 공연 시작 전에 벌써? 주변을 둘러보니, 웃음 횟수가 이미 두자릿수를 기록한 사람도 보였습니다.

‘개그페이’는 얼굴인식 기술을 이용해 웃음 횟수를 계산한다. 투명 마스크를 쓰고 태블릿피시에 관객 등록을 하면, 화면 아래 웃음 횟수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빨간 네모 상자 참조). 김효실 기자
‘개그페이’는 얼굴인식 기술을 이용해 웃음 횟수를 계산한다. 투명 마스크를 쓰고 태블릿피시에 관객 등록을 하면, 화면 아래 웃음 횟수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빨간 네모 상자 참조). 김효실 기자

‘태블릿피시와 웃음 횟수가 신경 쓰여서 공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고민을 했었는데요. 코미디언 정범균이 무대에 올라 관객 인터뷰로 공연장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런 고민은 금세 날아가 버렸습니다.

개그 경력을 모두 더하면 75년이라는 <쇼그맨> 출연진의 내공과, 이들의 공연을 즐길 준비가 된 관객 기운이 어우러진 공연 현장은 후끈했습니다. 공연은 춤, 노래, 연기, 마술 등이 어우러진 버라이어티 쇼로 진행됐고, 태블릿피시에 신경을 쓰기는커녕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길 수 있었습니다.

공연 중간 코너와 코너 사이, 잠시 정신을 차리고 제 웃음 횟수를 확인했습니다. 어느새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었는데요. 주변을 둘러보니 웃음 격차가 꽤 크게 벌어진 상황이더군요. 제 왼쪽에 앉은 기자는 저보다 3배 이상 웃은 상태였고, 제 오른쪽에 앉은 기자는 공연 절반을 넘겼는데도 웃음 횟수가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진짜 안 웃으신 건가요?” 100분 가까이 이어진 공연이 끝난 뒤에도 웃음 횟수가 한 자릿수로 기록된 옆자리 기자에게 물어봤습니다. “아닌데요. 많이 웃었는데….”

개그페이 시스템이 집계한 저의 최종 웃음 스코어는 134회. ‘부코페’가 정한 웃음 1회당 단가가 500원이라서, 제 웃음 횟수 134회를 곱하면 6만7000원이라는 가격이 나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관람료 상한은 2만원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2만원만 결제하면 됩니다. 웃음 횟수가 700회를 넘긴 ‘웃음 부자’ 기자도 돈 걱정은 없습니다. 웃음 횟수가 한 자릿수에 머무른 기자는 관람료가 1천원대로 계산됐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태블릿피시에서 ‘정산하기’를 누르면 큐알코드가 나온다(왼쪽). 큐알코드를 이용해 스마트폰에서 관람료를 결제하면 된다. 김효실 기자
공연이 끝나고 태블릿피시에서 ‘정산하기’를 누르면 큐알코드가 나온다(왼쪽). 큐알코드를 이용해 스마트폰에서 관람료를 결제하면 된다. 김효실 기자

제가 제 실제 웃음 횟수를 직접 헤아리지는 못해서, 개그페이 시스템의 안면인식 기술 ‘정확도’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는데요. 웃음 횟수가 지나치게 낮게 나오는 경우를 목격하니, 기술 발전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광식 ‘부코페’ 부집행위원장은 공연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그페이 도입을) 3년 전부터 준비했기 때문에 원래는 마스크를 안 쓴 상태를 전제하고 준비했다. 코로나로 투명 마스크를 쓴 상태도 인식할 수 있도록 업데이트했지만, 투명 마스크가 빛에 반사되거나 하는 부분은 감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부코페’는 개그페이에 대한 특허출원 절차를 밟는 중입니다. 개그페이와 비슷한 시스템이, 2014년 스페인의 한 코미디극장에서 광고 대행사에 의해 실행된 적이 있답니다.

‘쇼그맨’ 공연 모습. 부코페 제공
‘쇼그맨’ 공연 모습. 부코페 제공

웃음 단가는 왜 1회당 500원일까요? ‘부코페’ 쪽에 물어봤습니다. “개그맨 허경환씨 유행어 ‘궁금하면 500원’ 아시죠?” 2012년 <개그콘서트>(한국방송)에 등장해 큰 사랑을 받았던 ‘꽃거지’ 캐릭터가 떠올랐습니다. 설마? “농담이고요. 하하.” ‘부코페’ 쪽에서는 이번 개그페이 도입이 수익을 목적으로 한 건 아니라서, 적정 관람료를 찾는 과정에서 웃음 단가도 정한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꽃거지’를 기억하는 분들이, 단가를 보고 한 번 더 웃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 반응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개그페이 전용석에서 ‘쇼그맨’ 공연을 관람한 설숙경(47)씨는 <한겨레>에 “(개그페이 같은) 발상 자체가 재미있었다. 사실, 재미없는 공연을 돈 많이 내고 보기는 아깝다. 그런데 웃은 만큼 돈을 내라고 하니, 개그에 얼마나 자신이 있어서 그런 걸까 싶어 기대감이 더 생기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공연도 재미있었지만, 이(개그페이) 자체도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재미있었다”고 했습니다. ‘부코페’의 새로운 도전이 관객의 흥미를 끌었던 겁니다.

관람료와 연결시킨 만큼, 시스템이 더 정교화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한 관객은 관람료 정산 때 태블릿피시 화면에서 확인한 웃음 횟수보다 더 많은 횟수가 기록돼 관람료가 올라갔다고 했는데요. 다행히(?) 이 관객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계산이 잘못됐다고 (주최 쪽에) 문제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며 ‘쿨하게’ 넘어갔지만, 모두가 그렇진 않을 테니까요. ‘웃자고 하는 일’인데, 얼굴 붉힐 일이 생기지 않아야겠죠.

‘쇼그맨’ 공연 모습. 부코페 제공
‘쇼그맨’ 공연 모습. 부코페 제공

처음에는 취재를 위한 신기술 체험으로 가볍게 여겼는데, 막상 공연 관람을 끝내고 나니 ‘코미디란 무엇인가’ 같은 진지한 질문까지 떠오르더군요. 코미디가 웃음이 전부는 아닌 것 같거든요. <쇼그맨> 공연이 그랬듯이, 코미디 공연에는 묘기도 있고 드라마도 있지요. 신기해서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감동을 느끼기도 하고요. 또 코미디 공연의 관객은 공연의 일부나 마찬가지여서,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 같은 자세로는 좋은 공연을 함께 만들어내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부코페’ 기간에 만난 한 희극인은 “코미디언들은 관객들이 ‘잘한다 잘한다’ 응원하면 할수록 기량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연자와 관객이 합심해서 웃기고 웃는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도록, 개그페이가 관람료 대신 인센티브로 연결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웃음부자상’으로 다른 코미디 공연 티켓을 주는 방식은 어떨까요. 아직은 보완할 점이 많지만, ‘부코페’에서 시작한 개그페이 시스템이 웃을수록 복을 주는 코미디를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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