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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원칙 있는 농사’ 도전중이죠”

등록 2022-09-07 14:29수정 2022-09-08 02:22

[짬] 귀농 분투기 낸 이꽃맘씨
귀농 6년차 분투기를 펴낸 이꽃맘씨가 지난 6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9층 옥상 정원에서 책을 소개하고 있다. 최성진 기자
귀농 6년차 분투기를 펴낸 이꽃맘씨가 지난 6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9층 옥상 정원에서 책을 소개하고 있다. 최성진 기자
이꽃맘(44)씨가 쓴 책 <우리나라 시골에는 누가 살까>의 부제는 ‘어느 청년 활동가의 귀농 분투기’다. 부제가 말해주듯 이씨는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노동 전문 매체 <참세상>에서 노동 담당 기자로, 기자를 그만둔 뒤에는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에서 활동가(교육부장)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현장을 오갔다. 그랬던 그가 귀농이라니. 전직 기자 및 노조 활동가이자 전업 6년차 농부인 이씨를 지난 6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이씨가 아무 연고도 없는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을 찾아 26㎡(8평)짜리 집을 짓고 1983㎡(600평) 남짓한 논밭을 일구기 시작한 때는 2017년 겨울이었다.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난 건 그보다 4년 앞선 2013년 겨울, 첫 아이 유하가 태어난 지 11개월이 됐을 때였다. 마침 지인이 운영하는 경기도 포천의 펜션을 빌릴 수 있었다. 그곳에서 버려진 채 아무도 찾지 않는 산 중턱을 밭으로 일궈 볕 없이도 잘 자라는 곰취며 열무를 심었다. 그 시간이 그에게는 ‘귀농 연습’ 기간이었다.

“처음에는 육아를 어느 정도 하고 일터로 돌아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서울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니 맞벌이를 하며 육아를 하는 삶이 답이 아니란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지 않고 가족이 24시간 함께 놀면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무작정 포천으로 내려간 거죠.”

이꽃맘씨의 둘째 딸 세하(왼쪽)와 첫째 딸 유하가 지난봄 텃밭에 쌈 채소를 심고 있다. 이꽃맘씨 제공
이꽃맘씨의 둘째 딸 세하(왼쪽)와 첫째 딸 유하가 지난봄 텃밭에 쌈 채소를 심고 있다. 이꽃맘씨 제공

노동 전문 기자·노조 활동가 ‘치열’
2013년 첫 아이 육아 위해 포천으로
“내 자신 삶부터 바꿔야겠다고 결심”
2017년부터 원주 600평 논밭 ‘전업농’

‘우리나라 시골에는 누가 살까’ 펴내
“비료·기계로는 농부 살릴 수 없어”

기자와 활동가의 일을 그만둔 것도 귀농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자로 일할 때나 노조 활동가로 일할 때 이씨는 늘 ‘현장’을 고집했다고 한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길이 곧 현장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다만 그는 “세상이 과연 달라지고 있기나 한 건지, 어느 순간 갑갑해졌다”고 말했다. 자신이 말하고 쓰는 그대로, 자신의 삶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곧 노동이 있는 삶, 농부의 삶이었다.

농촌으로 간 이씨가 ‘원칙있는 농사’, ‘자연스러운 농사’를 선택한 건 어쩌면 당연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스러운 농사짓기는 단순히 유기농법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이씨와 그의 가족은 유기농을 넘어 아예 화학연료로 굴러가는 기계 자체를 거부한다. 그의 집에 있는 농기계라곤 귀농 선배가 물려준 10년 된 관리기와 예초기, 기계식 분무기 등 세 개가 전부다. 밭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제초매트와 이랑을 덮는 비닐도 거부한다. 책에서 그는 “겉으로는 깨끗하게 보이는, 더 많은 농산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땅이며, 물이며 다 죽이는 것이 아니라 느리더라도 땅을 살려 더불어 사는 농사를 짓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씨가 키워낸 딸기와 블루베리, 애호박, 토마토는 그래서 건강하고 깨끗하다. 다만 소출은 떨어진다. 그가 목표 수확량을 제초제며 농약, 화학비료를 쓰는 관행농 대비 30% 수준으로 잡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학비료를 뒤집어쓴 덕분에 탱글탱글 예쁘게 자란 일반 작물과 달리 알이 작은데다 못생겼다. 상품성도 떨어진다.

고민 끝에 그가 낸 아이디어는 ‘농산물 가공식품 꾸러미’였다. 도시 소비자와 연간 단위 계약을 맺고 정성껏 재배한 1차 농산물로 가공식품을 만들어 매달 보내주는 식이다. 그런 꾸러미 가족이 25~30가구 정도 생겼단다. 아무리 그래도 직업이 농부인데, 이 정도론 생계나마 제대로 꾸려갈 수 있을까. ‘어떻게 먹고 사냐’는 질문에 대해 이씨는 간단하게 “우리는 가난하기로 했다”고 대답했다.

“책에는 ‘자발적 가난’이라고 표현했는데, 통장 잔고와 소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으면 더 이상 돈을 위해 나를 갈아 넣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길이 열리더라고요. 특히 도시에서는 가난하면 비참해지잖아요. 시골에서는 가난해도 괜찮아요. 예컨대 교육비만 해도 서울에서는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수업을 보내도 돈이 드는데, 농촌에서는 무상으로 진행되거든요. 이래저래 돈이 적게 들어요.”

스스로 농부의 삶을 선택한 이씨이지만, 그가 바라보는 농촌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평생 유기농을 고집하던 칠순에 접어든 선배 농민이 ‘나 올해부터 약 친다. 이제 더 이상 힘들어서 손으로 풀 못치겠다’며 힘들게 고백할 때, 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피부로 느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농촌 고령화를 극복한다며 각종 첨단 기계들을 선전”하는데, 그는 “화석연료를 팡팡 쓰며 땅을 죽이는 기계들을 늘리는 것으로 농부들을 살릴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청년 농부를 위한 제대로 된 농업정책이다.

“농업정책이라면 정부는 ‘스마트팜’ 이런 걸 이야기하는데, (방식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런 시설 짓는 데에만 몇억이 들어요. 그러면서 농민수당이라고 가구 단위로 연 70만원(강원도 기준)을 주잖아요. 현실은 우리 같은 청년 소농이 원칙을 지키며 살아남기 힘든 구조인데, 이런 부분에 대한 정책이 정말 아쉬워요.”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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