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엔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친지들이 반갑기도 하지만, 서로를 향한 다양한 걱정(?)들이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를 선사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이 불편하다면 잠시 스마트폰을 켜고 판타지의 세계로 도피해보는 건 어떨까? 이번 추석 연휴에 볼만한 웹툰을 추천한다.
요즘 국내 웹툰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주인공이 과거나 미래로 가는 ‘타임슬립’과 온라인 게임의 서사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상남자>(글 하늘소, 그림 도가도/네이버웹툰)는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출발해 굴지의 전자회사 사장 자리에 오른 한유현이 주인공이다. 자신밖에 모르는 냉혹함과 탁월한 능력으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정작 주변에는 가족도 친구도 없다. 그 누구의 축하도 받지 못한 사장 취임식 날, 한유현은 우연히 들어간 바에서 술 한잔 마신 뒤 입사 직전 청년 시절로 되돌아간다.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은 제대로 ‘먼치킨’(비현실적으로 강한 캐릭터)의 면모를 보여준다. 수십년간 회사생활을 하며 사장에까지 오른 역량에, 미래가 어떻게 변해갈지도 이미 알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한유현은 능력을 적절히 숨겨가며 과거 성공과 맞바꿨던 가족·친구·동료들과 함께 다양한 장애물을 헤쳐나간다. 특히 기업이라는 조직이 돌아가는 모습을 실감 나게 그려내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한성전자 상품기획팀 주변 인물들에게서 익숙한 기시감을 느낄 수도 있다.
<안개무덤>(글·그림 김태영/네이버웹툰)은 부산의 한 여관에서 기이한 주검 한구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문대영 경감, 프로파일러 이청옥 경위를 비롯한 경찰들은 짙은 안개와 수많은 벌레들이 잇따르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쫓기 시작하고, 그 끝에 과거 한 산골 마을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안개무덤>은 한국형 오컬트 웹툰의 걸작으로 꼽을 만하다. 독자 평점이 무려 9.93점에 이른다. 무속에 기반한 초자연적 현상과 사이비 집단, 사건의 실체와 진실을 좇는 경찰들의 모습이 높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어둡고 건조한 모노톤으로 그린 인물과 배경을 비롯해 거대한 부적과 기괴한 형상 등의 이미지도 인상적이다. 최근 연재가 마무리되어 다음 편을 손꼽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프로야구생존기>(글·그림 최훈/카카오페이지)는 국내 프로야구팬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웹툰이다. 트라이아웃을 통해 천신만고 끝에 신생 구단 나이츠에 입단한 주인공 노영웅의 프로야구 생존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노영웅이 새로운 구단과 포지션을 거치며 성장하는 스토리가 중심이지만, 여러 회가 지나도록 주인공이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가 다반사일 만큼 다양한 선수들이 활약한다.
여느 야구 만화와 달리 훈련이나 경기뿐만 아니라 트레이드와 연봉협상, 구단 운영 등에 대한 스토리도 흥미롭게 담았다. 웹툰에 나오는 선수나 에피소드와 비슷한 실제 국내 프로야구 사례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30년 이상 정기적으로 만화방을 다닌 직장인 아저씨입니다. 다니던 만화방들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모두 문을 닫아 충격과 공포에 빠졌으나, 웹툰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뒤 열심히 탐독 중입니다.
차경모/만화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