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우리 미술관이 문을 열 때 한국 대통령 영부인을 초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소장품 중 한국 미술품이 단 한점도 없었어요. 내부 관계자들끼리 이건 말이 안 된다고 해서 한국 작품을 수집하고 기증도 받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뒤로 60년이 지났고, 이젠 한국 미술품이 우리 미술관 역사상 중요한 전시회의 주인공이 됐지요.”
미국 서부 최대 미술관인 로스앤젤레스카운티뮤지엄(라크마·LACMA)의 마이클 고반(59·사진) 관장은 지난 8일(현지시각) 신관 앞 광장의 야외 카페에서 만나 감개무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1897년부터 1965년까지 한국 근대미술 대가들의 명작 130여점을 사상 처음 미국 현지에 대규모로 선보이는 기획전 ‘사이의 공간’의 언론 설명회가 열린 이날 오전, 라크마 경내의 레스닉 파빌리온을 돌아본 기자를 광장 카페에서 웃으며 맞아준 그는 “한국 근대미술을 새롭게 보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 미술관의 한국계 미국인 큐레이터 버지니아 문이 한국 미술 아카이브를 철저히 조사하고 애써서 만든 역작 전시라고 생각해요. 당대 복잡한 시대와 한국인들의 삶을 담아내면서 유럽, 일본의 미술과 구별되는, 그 자체로서의 매력과 개성이 있다는 것을 이번 전시로 분명히 알게 됐어요. 보통 전시를 입체파 같은 특정 사조나 추상화 같은 특정 장르 중심으로 기획하곤 하는데, 이번 전시는 식민지시대와 전쟁 등 한국의 복잡하고 다양한 시대적 요소들이 회화, 조각, 사진 등 여러 장르를 통해 풀려 나오는 양상들이 매우 낯설게 다가왔어요. 아름다운 작품들도 많았지만, 당대 한국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그들의 내면이 비쳐서 공감하는 바가 컸습니다.”
미국 윌리엄스 칼리지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그는 출품작 중 장우성 작가가 일제강점기 말인 1942년 그린 <화실>을 예로 들어 한국 근대미술 특유의 내면적 면모를 분석하기도 했다. 신여성과 양복을 입은 남성이 함께 등장해 친밀감을 표시하면서 당시 근대의 분위기를 전해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면서 ‘사이의 공간’전은 작품들마다 근대의 도래와 정착에 얽힌 무수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평했다.
고반은 지난 2006년 라크마에 부임한 이래 무려 16년 넘게 재임하면서 미술관 경영 혁신의 귀재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25살에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부관장(1988~1994)을 지내며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개관을 이끌어냈고, 뉴욕 디아 아트파운데이션 디렉터(1994~2006)를 맡은 동안 폐공장을 예술 산실로 바꾼 디아비콘 미술관 개장 작업으로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이런 이력을 안고 라크마 관장으로 왔을 때 그는 현지 다민족 커뮤니티에 부응하는 미술관을 구상했고, 코리아타운의 한국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에 맞는 컬렉션과 전시를 해야겠다는 생각부터 했다고 떠올렸다. 실제로 그는 일찍부터 고미술품 등 한국 문화유산 탐구에 힘을 쏟아 2009년 한국관 재개관전으로 반가사유상을 비롯한 한국 불교미술 전시를 한국 건축가들이 만든 특설 전시장에서 열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열정적으로 라크마의 틀 바꾸기를 시도하고 있다. 1960년대 지은 본관을 헐고 2008년부터 스위스의 세계적인 건축거장 페터 춤토르와 10년 이상을 협의하면서 2019년 이래로 아메바 모양의 대형 본관 건물을 신축하는 공사를 벌이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700만달러 이상의 재원을 컬렉터와 후원자들로부터 기부받고, 명확한 형태가 없는 파격적 개념의 춤토르 건축안을 이사회와 로스앤젤레스시 당국에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인터뷰 말미에 후원자들을 끌어들이는 미술관 경영자의 비결을 묻자 “인내심과 긴 안목”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미술계 컬렉터들을 비롯한 후원자들과 오랜 기간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대화를 지속하고 그들이 운영의 중요한 주체가 되고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은근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고반이 말한 미술관 경영론의 요체였다.
로스앤젤레스/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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