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저드가 1992년 만든 미니멀리즘 계열 설치조각 <무제>. 2014년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저드의 회고전을 열었을 때 전시됐다. 국제갤러리 제공
무려 2억4000만원을 변상하라고? 고작 손가락 지문 얼룩 때문에?
현대미술을 모르는 일반인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물음을 던졌을 듯하다. 한국 미술 시장을 대표하는 대형 화랑으로 꼽히는 국제갤러리가 1960~80년대 미국 미니멀리즘 사조를 이끈 거장 도널드 저드(1928~1994)의 조형물을 판매 목적으로 보관하면서 미지의 지문을 묻힌 게 빌미가 되어 최근 도널드 저드 재단으로부터 거액의 배상소송을 당한 사실이 알려졌다.
지난 주말 <아트넷뉴스> <아트포럼> 등의 서구의 온·오프라인 미술 매체들은 저드 재단이 미국 뉴욕 맨해튼 법원에 국제갤러리(회장 이현숙)와 미국 뉴욕에서 이현숙 회장의 딸이 협업 화랑으로 운영하는 티나킴 갤러리를 피고로 작품 훼손 책임을 물어 17만달러(한화 2억4000만원)의 배상소송을 냈다는 사실을 속보로 전했다. 두 화랑이 2015년 재단한테서 작가가 1991년 만든 알루미늄제 수직 서랍장 모양의 채색 조형물 <무제>의 판매를 위탁받아 보관한 뒤 2018년 돌려줬는데, 재단 관계자들이 살펴보니 지문 얼룩 자국이 발견됐고 그 부분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질돼 이후 판매할 수 없을 만큼의 피해를 봤다는 게 소장의 내용이다. 재단 쪽은 작품값으로 당시 책정됐던 85만달러(12억1000만원) 중 80%인 68만달러(9억6000만원)는 보험사로부터 받았지만 나머지 17만달러는 화랑이 보상액으로 내야 하며 여기에 더해 별도의 이자와 손해배상금까지 따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적인 현대미술 거장의 작품을 팔아주겠다고 맡았다가 부실하게 보관해 판매를 못하고 작품에 지문까지 묻히는 큰 훼손사고를 일으켰으니 총체적으로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2014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렸던 도널드 저드 회고전 전시장. 국제갤러리 제공
이 사건은 일반인의 상식과 다른 현대미술과 미술 시장의 두가지 요지경 같은 면모를 잘 보여준다. 첫째는 작품 보존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다. 지문이 작품에 묻는 것은 일반인들의 상식과 달리 미술계, 특히 화랑가에서는 민감하게 인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명이거나 인지도가 낮은 소장 작가들의 경우 작가나 여러 관계자들의 지문이 화폭, 액자, 조형물 등에 묻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점당 가격이 억대를 넘는 대가들은 다르다. 보존 상태가 작품 가격의 근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화랑가의 한 중견 화상은 “외국 대가들의 그림이나 조형물의 경우 누가 손대고 지문을 묻히는 것은 순식간이어서 잠을 못 잘 정도로 가장 많이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도널드 저드는 평생 단정하게 색칠한 금속제 상자 큐브를 배열하고 붙이고 확대하는 데 상상을 초월한 공력을 쏟은 정통 미니멀리스트였다. 그에게 상자의 채색된 표면은 단순한 조형물의 외관이 아니라 미세한 화폭처럼 완전한 상태에서 보존하고 관리해야 하는 미묘한 세계였다. 저드는 서랍장을 연상시키는 금속제 상자를 그의 문화적 영지로 일컬어지는 텍사스주 소도시 마파의 거대 전시장에 늘어놓은 거대 규모의 미니멀한 설치작업으로 유명하다.
그는 작품 구상과 제작 과정에서 까다로운 완벽성을 추구했고, 금속 상자의 표면 일체를 미세한 회화적 표면으로 간주했다. 먼지가 앉는 부분은 미세한 털로 터는 것 외엔 닦는 것이나 어떤 방식의 접촉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완벽한 상태의 표면이 되어야 했다. 이런 원칙은 작가가 타계한 1996년 이후에도 재단 쪽에 의해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고, 전세계 화랑에 대여하는 저드의 작품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이물질·풍화·습기 등을 타지 않는 보존 조건 아래서 관리되어야 한다. 문제가 생길 경우 보상 협상과 소송 외에 다른 타협책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2017년 스위스 바젤에서 국제미술장터로 열린 아트바젤 전시장에 나온 도널드 저드의 서랍 모양 설치조형물. 아트바젤 제공
또 하나는 미술계 내부 맥락이란 측면에서도 이례적인 소송 사건이라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작가나 화랑의 지명도와 신뢰도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웬만하면 쉬쉬하며 내부적으로 보상액을 정하고 타협안을 정해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 이번에는 지문 소송이 불거졌을까? 화랑이 오랫동안 팔아치우지 못하고 갖고 있다가 모종의 사건이나 경위로 감정이 틀어지고 갈등이 깊어져서 결국 금전 소송에 이르러 외부로 알려진 게 아니냐는 추정이 나온다. 갤러리가 사들이든, 재단이 거액의 보상을 비공개로 받든 협의를 할 수 있는 사안인데도 갈등이 표면화한 것은 단순한 훼손 이상의 간단치 않은 곡절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사실 작품에 손괴가 있다고 가치가 무조건 반감되는 건 아니다. 작가의 대응에 따라 작품의 성가와 세간의 평가가 훨씬 높아지는 경우도 있다. 2007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서 아이웨이웨이가 중국 청나라 시대의 문짝과 가구들로 만들어 선보인 거대 설치조형물 <템플레이트>가 그런 사례다. 당시 폭풍으로 작품이 무너졌으나 그는 별도의 복구를 요구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결국 역사와 시대의 상흔을 의미하는 멋진 설치작품으로 재해석됐고, 반체제 개념미술의 거장이란 명성은 더욱 올라갔다. 작품은 그 뒤로 아이웨이웨이의 작품 이력을 설명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표작이 되었다.
한국도 비슷한 사례가 최근 있었다. 지난해 3월 한국화 화단의 대가 박대성 작가의 특별전이 열린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가족 관객이 데려온 아이들이 작가의 대작 위에 올라가 눕고 문지르며 돌아다니는 사건이 일어났다. 길이 19m 넘는 이 작품은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를 본떠 재해석하면서 쓴 역작으로 1억원대까지 호가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박 작가는 “아이라면 그럴 수 있다”며 관객에게 보상을 요구하거나 항의하지 않았고, 언론 등에서 미담으로 보도되면서 작품 세계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현대미술의 세계에서 작품의 손괴는 결국 작가가 어떤 성향과 사조를 지닌 인물인지, 시장의 역학관계는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따라 각기 다른 파장을 낳는다고 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