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삶은 없다. 부족한 것을 채워가며 살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것이 인생이다. 물론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재벌가를 다룬 드라마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결핍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나 욕망은 삶의 만족도를 올리는 추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결핍 해소 방식이나 과정이 공정하다는 전제하에 그렇다는 말이다. 만약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원칙이나 상식에서 어긋나는 수단을 동원한다면 불행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시간문제일 뿐, 편법과 탈법은 반드시 발각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편법과 탈법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여 호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예술과 문화에 관한 지식, 취향과 선호, 학위 등의 문화자본을 비정상적으로 획득한 상류층일수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진실을 은폐한다. 머리를 감추고 꼬리를 숨기는 꼴이지만, 과도한 정치공세라고 믿는 사람도 적지 않다. 720억원의 비자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을 다룬 드라마 <작은 아씨들>(티브이엔)의 원상아(엄지원)도 아버지가 개발독재시대에 축적한 경제자본으로 문화자본을 획득하고, 이를 이용한 편법과 탈법의 범죄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원상아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모든 것을 가졌지만, 가장 원하던 배우로 인정받지 못했다. 연기력이 형편없다는 대중의 비난 때문에 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아내’라는 배역을 하루 24시간 연기하며 살고 있다. 상대역은 엘리트 변호사 출신으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남편 박재상(엄기준)이다. 남편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여자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아내’ 역할을 포기하기 싫어서 운전기사 아들을 남편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원상아의 실체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그의 모든 것을 연기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의 아내라는 배역은 그의 진짜 역할이 아니다. 베트남전쟁에 참여했던 장군 출신 남편의 무차별적인 살인 행위를 저지하던 어머니가 목숨을 잃은 뒤 원상아는 정신적 외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을 유폐시켰다. 미국 뉴욕연극학교 무대미술과 졸업 작품으로 완성한 ‘닫힌 방’은 화려하지만 황폐한 그의 내면을 형상화한 연극 무대였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생긴 정신적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이 캐스팅한 주인공들에게 인형처럼 연기를 시켰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비밀 연극의 연출자가 원상아의 진짜 역할이었다.
성장 과정의 결핍이 특정 대상을 향한 과잉 집착으로 변질할 경우, 인간관계가 왜곡되고 사랑으로 포장한 폭력이 행사될 수 있다. 연인 사이에 발생하는 사이코패스 범죄가 대표적이다. ‘닫힌 방’에서 자신이 만든 연극 무대에 함몰된 원상아의 심리적 장애는 ‘가진 자’에 의해 자행되는 사이코패스 범죄에 해당한다. 원상아가 어머니의 죽음에 연루된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연극의 주인공들이 차례로 죽어 나가기 때문이다. 원상아 연극의 주인공이 “가난한 주제에 희망차 보이는” 사람들이라는 점도 문제가 있다. 그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욕망하는 이들을 캐스팅하여 무대에 올린다. 박재상은 물론, 오키드건설 경리 진화영(추자현)과 오인주(김고은)가 원상아의 인형들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연극의 주인공인지도 모른 채 원상아의 지시(연출)에 따라 선거에 나서고 비자금을 만들어 관리하다가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거나 죽음으로써 무대에서 퇴장한다.
그러나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인경 기자(남지현)나 사랑의 진정성을 깨달은 최도일 본부장(위하준)은 달랐다. 이들은 박재상의 추악한 실체를 폭로하면서 화려한 외양에 감춰진 원상아의 가식과 허위를 드러냈다. 원상아가 자신이 인형이라고 생각했던 오인경과 최도일에게 심한 모멸감을 느꼈던 것도 그래서이다. 원상아가 연출한 비밀 연극은 결국 자본에 조종당하지 않고 부패한 현실에 맞서는 정의와 양심 그리고 사랑의 힘에 밀려 막을 내렸다.
원상아는 박재상의 아내라는 배역을 연기하면서 세상을 속였다. 더 나아가 성장 과정에서의 결핍을 ‘비밀 연극’의 주인공들을 조종하면서 해소하려 했다. 그는 아버지의 질서가 지배하는 폭력과 살인의 세계에서 최고의 킬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후계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연극의 주인공처럼 사라졌다. 원상아의 연극 무대는 결국 진실과 정의 앞에서 막을 내렸다. 편법으로 획득한 문화자본을 발판 삼아 더 많은 경제자본을 축적하고 상징권력까지 장악하는 현실과 사뭇 다른 결말이다. 권선징악의 시적 정의가 드라마를 벗어나 현실 세계에서도 구현되기 바랄 뿐이다.
충남대 국문과 교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