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개봉하는 스릴러 영화 <자백>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소지섭. 피프티원케이 제공
소지섭이 달라졌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스릴러 영화 <자백>에서 그가 맡은 배역은 불륜을 저지르고 살인 누명을 쓴 용의자 유민호라는 인물. 배우 스스로도 “내가 봐도 낯선 모습,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유민호는 우리가 본 적 없는 소지섭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지난 1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소지섭은 “오랜만에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대중 앞에 나서게 됐다”며 반색했다. <자백>은 그가 출연한 올여름 개봉작 <외계+인>(감독 최동훈)보다 먼저 촬영했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개봉 시기를 미뤄 이번에 관객과 만나게 됐다. 캐릭터 비중 면에서도 <자백>이 본격적인 주연 복귀작이라 할 만하다.
26일 개봉하는 스릴러 영화 <자백>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유민호는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 전화를 받고 한 호텔을 찾았다가 자신의 내연녀 세희(나나)의 살인사건 용의자로 내몰리게 된다. 하루아침에 성공한 사업가에서 살인자로 몰린 그의 알리바이를 정당화할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황. 살인 용의자 누명을 쓴 그는 이제 스스로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야 한다. 어떤 관객도 유민호의 이야기에 선뜻 귀 기울이기 어려울 것이다. 노골적으로 못된 남자의 이미지를 풍기기 때문이다.
이전과는 조금 다른 작품을 선택한 데 대해 소지섭은 “이전에 맡았던 역할과 비슷한 결을 지닌 작품들에서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불륜을 저지른 남자라는 설정도 연기한 적 없었고 개인적으로도 첫 스릴러 장르 도전이다.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본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앞으로 악역 연기만 들어오면 어쩌지?(웃음)”
26일 개봉하는 스릴러 영화 <자백>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소지섭. 피프티원케이 제공
<마린 보이>(2009)를 연출한 윤종석 감독의 신작 <자백>은 스페인 범죄 스릴러 <인비저블 게스트>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의문의 습격을 당한 남자가 살인사건 용의자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자신을 변호해줄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한다. 변호사와 대면하는 과정에서 자꾸만 새로운 범죄 정황 의혹이 불거지고, 남자는 완벽한 알리바이로 무죄를 입증해야만 한다. 영화 전체 방향을 좌우하는 스토리의 큰 뼈대는 동일하지만,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의 세부 묘사, 캐릭터 각자의 과거 사연을 보여주는 방식 등 서스펜스를 만들어가는 디테일한 요소들이 조금씩 다르다.
“스릴러 장르 안에서 연기해보니 캐릭터가 명확하고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뚜렷해서 재미있었다”는 소지섭은 사실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누구에게 쫓기고 있거나 혹은 내가 누군가를 때리고 있는 장면이 떠오르는 꿈을 계속해서 꿨다. 안 좋은 상황을 연기한 날에는 어김없이 악몽을 꿨다.”
26일 개봉하는 스릴러 영화 <자백>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릴러 영화로서 <자백>의 장점은 여럿 있지만 그중 으뜸은 영화의 구조에 있다. <자백>은 마지막 엔딩 직전까지 반전을 꽁꽁 숨겨두었다가 한방에 터뜨리는 영화가 아니다. 진실이 하나둘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에서 오는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된다.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를 유추해내는 변호사 양신애(김윤진)의 놀라운 추리력, 한쪽에서는 밀실살인사건의 트릭을 밝혀내려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감추려고 하는 진실 공방이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승률 100%의 변호사 양신애는 유민호의 말만 듣고서 그를 변호할지 말지를 판단해야 한다. 유민호의 말 속에 담긴 피해자 세희는 과연 어떤 여자일까. 관객은 선뜻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26일 개봉하는 스릴러 영화 <자백>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가 결말에 이르기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건 김윤진과 소지섭의 놀라운 연기 호흡 덕분이다. “김윤진 배우가 대본을 통으로 외우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받았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우더라.” 소지섭을 놀라게 한 배우는 또 있다. “모든 스태프들이 영화 개봉하면 나나를 새롭게 보게 될 거라고 확신에 차서 말하곤 했다. 나나 배우의 눈빛 연기가 굉장히 좋아서 나 역시 빠져들어 연기했을 정도다.”
1996년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MBC)으로 데뷔한 이후 올해로 27년차 배우인 소지섭은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결혼하고 나니까 안정감이 생기더라. 불면증이 없어지고 심리적으로 조금 더 성숙해졌다”며 변화하는 자신의 삶의 방향에 잘 적응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최근 에스엔에스(SNS)도 개설했다. “팬들에게 너무 무심한 것 같다. 아이디도 ‘소간지’인데 부끄러웠던 그 별명이 이젠 재미있게 느껴진다. 내가 나이 들어서 그렇다.(웃음)” 그는 더 자유롭게 악역과 아버지 연기를 하기 위해서라도 “더 빨리 나이 들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김현수 전 <씨네21> 기자·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