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임료 천원만 받고 사건을 해결해주는 변호사. 그것도 통쾌하게! 이런 변호사가 현실에 없을 것 같아서일까. <에스비에스>(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극본 최수진·최창환, 연출 김재현·신중훈)는 지난 9월23일 첫방송부터 화제였다. 1회 시청률 8.1%에서 시작해 3회 만에 10%를 넘어서더니, 지난 29일 10회(13.7%)까지 줄곧 두 자리를 유지했다.(닐슨코리아 집계). 화제성을 가늠하는 콘텐츠 영향력 지수에서도 상위권이다. 지상파 드라마가 화제성과 시청률을 다 잡은 건 오랜만이다.
그런데 뜬금없는 ‘조기 종영’ 소리가 들려온다. 애초 14부작을 계획했는데, 12부로 끝낸다고 한다. <천원짜리 변호사>는 시작할 당시 총 몇 부작인지 언급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14부작으로 진행해왔다고 한다. 반응 좋은 드라마가 연장이 아니라 회차를 줄여 끝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천원짜리 변호사>의 이른 종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드라마톡’ 평가단이 작품을 정리하며 이 문제를 함께 짚었다.
정덕현 평론가 = 시청률도 잘 나오고 화제성도 좋은 드라마가 회차를 줄인다는 게 의아하긴 하다. <천원짜리 변호사>는 유치할 수 있는 내용이, 시원시원한 전개와 천지훈(남궁민), 백마리(김마리), 사무장(박진우) 같은 인물이 만들어가는 코미디의 힘으로 추진력을 얻는다. 각종 패러디와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재미 요소가 다소 느슨한 스토리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최근 드라마들이 개연성만큼 실제 효능감을 주는 사이다 전개로 시청자들을 잡아끄는데 <천원짜리 변호사>가 바로 그 사례다.
남지은 기자 = 분명 과장된 장면인데 얼굴 찌푸리지 않고 편안하게 볼 수 있다. ‘경비실 갑질 사건’처럼 배우의 감정과 행동이 선을 넘은 장면이 많은데, 연출과 배우의 합이 잘 맞아서인지 과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걸리는 것 없이 잘 흘러가는 작품이라 좋았다.
정덕현 평론가 = 마블 코믹스의 슈퍼히어로 탄생기처럼 ‘천원짜리 변호사’의 탄생기를 중간에 넣은 구성도 흥미롭다. 다른 드라마도 주인공의 과거를 보여주지만, <천원짜리 변호사>는 아주 긴 시간을 할애했다. 이런 구성은 시청자들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힘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웃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중간에 천지훈의 과거사가 등장하면서 절절한 비극을 보여줬다. 향후 전개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
남지은 기자 =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몰입한 중요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남궁민이다. <천원짜리 변호사>는 천지훈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천지훈이 살아야 드라마가 산다. 남궁민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천지훈을 만들어냈다. 천지훈 캐릭터가 좀 더 진지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중요한 건 남궁민표 천지훈에 시청자들이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정덕현 평론가 = 남궁민은 이 드라마의 ‘원톱’답게 시청자들을 웃기다가도 진지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 그의 비극을 연민하게 하면서 끌고 나간다. ‘쥐락펴락’, ‘자유자재’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배우다.
남지은 기자 = 남궁민의 누르는 연기가 제대로였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절제하며 감정을 표현했다. 천지훈은 대놓고 웃기지 않는데도 웃긴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눈빛, 표정 변화로 감정을 보여준다는데, 남궁민은 여기에 목소리를 더한다. 그는 호흡으로 소리를 조절한다. <천원짜리 변호사>에서도 과거 냉철한 검사 시절과 현재 천지훈일 때의 대사톤 등이 다르다. 부족한 부분을 메모지에 쓰고 공부하며 다음 작품에 적용하는 등 노력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그 노력이 지금의 남궁민을 만들었고, 그 남궁민이 ‘천원짜리 변호사’가 됐다.
정덕현 평론가 = 한껏 기대감 높여 놓은 드라마가 이를 편성하고 방영하는 운용에서는 엇박자를 보이는 점은 안타깝다. 21일 갑작스러운 한 회 결방은 그러려니 했지만, 12부작으로 ‘조기 종영’을 하겠다고 한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제작진은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중계 때문이라고 밝혔는데 지금껏 인기 드라마가 야구 중계로 결방된 적은 있어도 회차를 줄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남지은 기자 = 시청률이 안 나온다고 조기 종영되어서 시청자들이 반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드라마는 그런 사례도 아니다. 제작비가 부족해서도 아닐 것이다. 간접광고(피피엘·PPL)도 신나게 하지 않았나. 노출 방식이 드라마 성격과 잘 맞아서 비판 목소리가 약했을 뿐이지, 굉장히 노골적이었다.
정덕현 평론가 = 이런 행위들이 모처럼 나온 드라마의 작품성을 떨어뜨린다. 초반에 가벼운 사건들을 5회까지 다루며 이 ‘천원짜리 변호사’라는 캐릭터를 세워놓았고, 그 후 6회부터 8회까지 3회분에 걸쳐 이 변호사의 탄생기를 그려놓았다. 나머지 9회부터 12회까지 4회 안에 그 탄생기에 얽힌 복수극 서사를 완성한다고 해도 드라마가 압축도 있는 완성도를 만들기보다는 어딘가 앙상한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6회에서 8회까지 탄생기를 넣어 기대감을 높인 구성의 묘가, 후반부가 짧아지면서 높은 완성도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남지은 기자 = 어느 순간부터 관계자들이 결방이나 하이라이트를 내보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제작진은 빠듯한 제작 일정에 하이라이트를 내보내며 시간을 번다. 그것을 시청자들이 이해해주는 것이지, 당연한 게 아니다.
정덕현 평론가 =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었던 오락물이고 활극이지만, 잘못된 운용으로 용두사미가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남지은 기자 = 이유가 뭐든, 결정 과정에서 시청자를 고려하지 않았던 건 확실해 보인다. 드라마를 사랑해 준 시청자를 생각했다면, 처음 약속은 지켜야지.
정덕현 평론가 = 재미있게 봐준 시청자에 대한 예의니까.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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